초가을에 가볼만한 고궁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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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에 가볼만한 고궁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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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함께 가벼운 나들이로 가볼만한 곳

^^^▲ 덕수궁을 찿은 시민들.덕수궁 입구 대한문.
ⓒ 뉴스타운 이인석^^^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게 되었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광해군 3년(1611)에 행궁을 경운궁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이었으나, 시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1906년에는 화재로 불탔던 중화전이 복구되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고. 1907년 7월 20일에 일본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하여 고종이 순종에게 제위를 전위 하자 선제가 거처하는 궁이 되어 덕수궁이라 하였다.

^^^▲ 덕수궁 중화문.
ⓒ 뉴스타운 이인석^^^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었다. 중화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 단층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이다. 1902년(광무 6) 창건 당시에는 2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고 1906년 단층으로 중건되었다

^^^▲ 덕수궁 중화전 어좌.
ⓒ 뉴스타운 이인석^^^
중화전 내부 중앙간 뒤편에 마련된 어좌이다. 어간 고주 사이에 단을 마련하고 그 위 중앙에 용대를 놓았으며 용대 뒤편에는 투각곡병과 일월오악병풍을 놓았다. 어단에는 앞면과 좌우 측면에 보계가 있고 난간을 설치했다. 어좌 위에는 보개를 마련하였는데 적주에 낙양각하고 그 위로 닫집을 얹어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 덕수궁 품석.
ⓒ 뉴스타운 이인석^^^
중화전 앞에 있는 품석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의 높낮이순으로 관계(官階)의 품(品)을 새겨 세워둔 돌이다. 정일(1)품부터 종구(9)품까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으며, 맨 앞 줄에 있는 정일품이 최고의 품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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