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농촌, 사람과 자연의 하나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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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정홍, 동시집 <우리 집 밥상> 펴내

 
   
  ^^^▲ <우리집 밥상>의 표지
ⓒ 창작과비평사 ^^^
 
 

"산밭에서 고구마싹을 심다가 잠시 쉴 틈에 쓰기도 하고, 논에 모를 심다가 바람이 하도 시원하고 고마워서 쓰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쓰기도 하고, 소 팔고 난 다음날 정자나무 아래 혼자 앉아 울면서 쓰기도 하고, 동무들과 하루 일을 끝내고 밥을 나누어 먹으면서 쓰기도 했습니다."

90년대 중반 첫 동시집 <윗몸 일으키기>(현암사)를 펴낸 시인 서정홍(45)이 두 번째 동시집 <우리 집 밥상>(창작과비평사)을 펴냈다. 이번 동시집에는 시인이 지난 7여년 동안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농촌과 환경을 살리는 일을 하다가 스스로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쓴 시편들로 가득하다.

<우리 집 밥상>은 모두 5부로 나뉘어져 있다. 표제가 된 제1부 '우리 집 밥상'에 이어 제2부 '순영이 소원', 제3부 '장날', 제4부 '나무가 된 순철이', 제5부 '누렁이' 연작이 그것들이다.

이번 시집의 주된 배경은 경남 함양군 덕유산 자락에 있는 '우전 마을'이다. 그 마을에서 시인은 도시 사람들에게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산 먹거리를 나누어 주기 위해 함께 산밭을 일구었던 성우, 재원, 기문, 시현 그리고 상록이 아우와 윤석이 형이 되기도 하고, 힘겨운 농삿일에 지칠 때면 노랑나비와 흰나비, 잠자리, 할미꽃, 정자나무가 되기도 한다.

우리 집 밥상에 올라오는 밥은
황석산 우전 마을
성우 아재가 보낸 쌀로 지었다

밥상에 하루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김치는
진해 바닷가 효원 농장
이영호 선생님이 가꾼 배추로 담갔다

맛있는 무말랭이는 황매산 깊은 골짝에서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르고
옛날 사람처럼 살아가는
상평이 아저씨가 만든 것이다.

매우 고추는 함양 월평마을
박경종 아저씨가 준 것이다
일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절뚝거리며 딴 고추다.

('우리 집 밥상' 몇 토막)

그렇다. 우리들이 끼니 때마다 먹는 그 많은 음식들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음식들 또한 아이가 먹는 밥과 반찬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음식일 것이다. 단지 그 음식이 아이가 먹는 음식처럼 무공해 음식이 아니라 농약에 찌든 음식일지도 모르며, 누가 지었는지 모르고 먹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아이의 어머니는 "고마운 마음 잊지 않으려고" 그 음식을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된장찌개 할 때마다 넣는다"(우리 집 밥상)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집 밥상 앞에 앉으면/ 흙 냄새 풀 냄새 땀 냄새 가득하고/ 고마우신 분들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긴, 요즈음 농사 실명제를 한다고 해서 수퍼마켓이나 백화점 식료품 매장에 가서 쌀과 야채를 사면 그 쌀과 야채를 생산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찍혀있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얼굴과 이름은 미처 확인할 틈도 없이 싱크대에서 금새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앉아서 기도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맨날 무엇을 달라고 저러는지
하느님도 머리가 아프시겠다

저 많은 기도
다 들어주시려면.

('기도' 모두)

이처럼 제1부에 실린 시편들은 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이 세상의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는 '텔레비전 위에 놓인 아버지 지갑"을 바라보며 "천원만 빼낼까"(알 수 없는 내 마음) 하며 고민하는 아이가 나오기도 하고, 심부름을 갔다가 "거스름돈이 이천칠백 원 남"은 것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지 못하고 "도둑이 된 것처럼 가슴"(걱정거리)을 두근거리는 아이의 여린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버지 공장 달력에는
토요일 일요일이 없다.

쉬는 날도 없이
기계처럼 일만 하는 아버지

나는 어른이 되면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일 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어른이 되면' 모두)

제2부는 "기름때 눌어 붙어서/ 손빨래해야만 하는"(아버지 일옷)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이의 걱정스런 시각이 담겨 있다. "눈만 빠끔 내놓고 일하던 사람들 생각만 하면/ 내가 땀이 날라 한다"(펌프 공장 견학을 마치고)처럼 아이는 종종 아버지의 고된 하루를 떠올리며, 미래의 꿈을 펼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가 돈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랑싸움도/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이라며 자기의 입장을 제법 또렷하게 밝힐 줄도 안다. 그래서 "누가 잘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싸울 때는 똑같다"(사랑싸움)고 생각한다.

아버지 따라 산밭 가는 길
논두렁 밭두렁 작은 언덕마다
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제발, 나 좀 보고 가라고
쳐다보는 꽃들에게
나는 발목이 잡혔습니다.

아버지는 괭이 메고
산밭으로 자꾸 올라가는데…

('산밭 가는 길' 모두)

제3부 '장날'부터 제5부 '누렁이'까지는 모두 농촌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소롯이 담겨 있다. 그 중 "내 몸에서 소똥 냄새 난다고/우리 반 철호가 자꾸 시비를"(그 말씀 때문에) 걸지만 참을 줄 아는 사람이 곧 이기는 사람이라는 아버지의 그 말씀을 떠올리는 아이를 바라보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요즈음 도심의 아이들이 학교 폭력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새긴 채 학교에 가는 것조차 싫어하는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렇다. 농촌의 아이들은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늘상 대자연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늘 마음이 넉넉하고 포근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참을성을 배울 줄도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을 들머리
큰 정자나무는
우리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 생겨도
끄떡 없는 할아버지처럼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끄떡 없이 서 있습니다.

('정자나무' 모두)

그렇다. 아이들의 마음은 한번도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도화지와도 같다. 그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그려진 그림에 무슨 색깔을 어떻게 칠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마음도 시시각각으로 바뀌며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마악 솟은 샘물이 깊은 골짝과 시내를 거쳐 강에 닿았다가 마침내 드넓은 바다가 되듯이.

마을 입구에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오래 된 정자나무를 바라보며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 생겨도/ 끄떡없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힘에 부치는 일이 생겨도 어릴 적 마을 앞 정자나무를 떠올리며 끄덕없이 헤쳐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정홍의 <우리 집 밥상>에는 도시와 농촌, 환경과 자연을 동시에 아우르는 시편들이 시골 아이들처럼 까만 눈동자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어른들의 편협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런 도시와 농촌이 아니라 아이들의 티없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도시와 농촌, 환경과 자연의 하나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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