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의 스타팅포인트 베를린(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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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시를 가다(12)

^^^▲ 로렐라이 언덕에서 바라본 라인강
ⓒ 박선협^^^

불사조의 정신왕국

'신神은 프랑스에 땅을 주었다. 영국에는 바다를 주었고, 독일에는 정신의 왕국을 주었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독일은 정신왕국이다. 게르만 민족은 탁월한 정신적 덕성德性을 지녔다. 문학에 괴에테, 음악에 베토벤, 철학에 칸트, 종교에 루터, 자연과학에 엘리히 등 문화의 어느 영역을 보더라도 정신의 최고봉을 차지하고 있다.

게르만민족은 무서운 저력을 지닌 민족이다.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나라별로 보면, 독일이 제1위를 점한다. 독일은 근대사의 무대에 늦게 등장했지만 급속한 템포로 문화의 후진성을 성을 극복하고 영英, 불佛과 백중을 겨루게 되었다. 제1차 대전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4년반 동안이나 싸우다가 패망하여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와신상담으로 권토중래, 제2차 대전에서 연합군과 다시 5년 반을 싸웠다. 제1차 대전에서 항복한 것이 1918년 11월, 제2차 대전을 개시한 것이 1939년 9월, 21년만에 다시 일어선 셈이다.

제2차 대전에 패망했지만, 독일은 또다시 부흥했다. 마치 불사조처럼 라인강의 기적이 일어났다. 유럽공동 시장에서 프랑스와 서로 막상막하인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1990년 10월 굳게 닫혔던 브란덴부르그 문을 열고 독일통일의 깃발을 들었다. 무서운 민족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게르만의 피가 우수한가, 또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탓일까?

건실한 실속파 베르리너

베르린은 독일의 심장이다. 동서냉전의 한 시대를 가르고 데탕트의 휘장을 열었다. 통일독일의 대화를 이끌어 낸 20세기 지구촌의 종점이자 스타트 포인트다. 폴란드 가까이에 위치한 시프레Spree강을 마주한 인구 약 350만의 도시다.

1년을 통하여 비교적 강우량이 적어 연간 550밀리 정도다. 여름은 건조기로서 맑은 날씨가 계속되나 햇살이 부드러워 우리나라의 초가을 같은 기후. 겨울은 추워 아침이면 영하 15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다만눈은 별로 내리지 않으며, 연간 월평균 기온이 가장 덥다는 7월이 19도, 가장 추운 1월이 영하 1도.

베를린의 역사는 13세기부터 시작된다. 그때까지 시프레 강변에 있던 쾰른, 베를린의 두 마을이 13세기 초두에 도시권을 획득하여 14세기에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일원이 되었다.

1470년 브란덴부르그 선제후選帝侯가 베를린을 선제후국의 수도로 정했고 1701년에는 프리드리히 1세가 프러시아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며 1871년, 독일제국의 성립과 동시에 그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1918년의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의 제정帝政은 붕괴, 다음 해 1월에 독립사회당 및 독일 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크스단團이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국민의회는 한때 바이마르로 옮겼으나, 제2차 대전 전에 나찌스 독일의 수도로서 세계적 대도시가 되었다.

곧이어 벌어진 제2차 대전에 패한 후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의 각 점령군의 점령으로 베를린은 네 개의 통치국역으로 분활 통치되었다. 소련은 브란덴브르그 문門에서 포츠담 광장을 잇는 동선의 동쪽을, 다른 세 나라는 그 이서以西를 통치, 4개국으로 구성되는 베를린 관리이사회가 관리했다.

그러나 1948년, 소련이 이사회의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에 각각 동서 두 베를린으로 갈라졌던 것이다. 1961년 8월, 소련은 동서 베를린의 경계에 길이 45.1킬로에 걸친 벽을 쌓아 동서 베를린의 교통을 봉쇄함으로써 민족분단의 비극을 부각시켰던 것이니 이것이 저~ 유명했던 <베를린의 장벽>이다.

숨돌릴 사이도 없이 되풀이 되던 공습과 치열한 시가전市街戰. 무쇠도 녹이는 불과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유럽 제 1의 번영을 자랑하던 베를린시는 완전히 폐허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전후의 복구상도 놀라워서 현재는 다시 유럽굴지의 면모를 갗추기에 이르렀다.
<장벽>은 자유와 민주주의, 사랑하는 육친과 친구, 애인을 찾아오다 목숨을 잃은 베를린 동쪽 시민들의 비극을 조용히 지켜보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유천지와 뮤직의 베르리너

베를린은 이제 자유의 천지다. 거리의 쇼윈도우 마다 아름다운 꽃이 있다. 레스토랑을 포도鋪道까지 내어 짓고 모두 유유히 차와 맥주를 마신다. 퇴폐와 데카당의 그림자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동물원에는 우거진 숲속에 수백개의 테이불과 의자가 있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심포니를 듣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

전면 음악당에는 수십 명의 악사가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서 심포니를 연주한다. 베르리너들은 음악과 더불어 생을 즐길줄 안다. 마음의 여유가 있다. 달관일까, 신앙일까, 맑은 하는 아래서 시원한 대기를 마시며, 꽃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원에서 맥주를 들면서 심포니를 즐기는 베르리너들의 여유에서 우리는 독일을 본다.

베를린은 음악의 도시다. 라디오를 틀면 언제나 클라식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바하, 헨델, 베에토벤, 브람스, 슈우만, 멘델스존 같은 음악의 거장들은 한결같이 독일사람이다. 특히 그들은 성악보다도 기악에 능하다. 프랑스 사람이 시각에 뛰어난 것만큼 독일사람은 청각에 탁월하다.

프랑스에는 화가가 많아도 음악가는 드물다. 독일은 그와 반대로, 음악가는 많아도 화가는 적다. 화가라고는 뒤러와 홀바인 정도가. 베를린에서 CD라도 사러 악기점에 들러보라. 온통 클라식 뮤직이지 재즈판은 보아지 않는데에 감탄할 것이다. 미국인의 재즈음악은 독일에서는 멸시와 빈축의 대상이 된다. 베르리너들의 음악애호심은 부럽기 한이 없다.

음악은 그들의 피부와 혈관 속에 맥맥히 배어있다. <베르린 필>을 자랑하는 까닭을 알만하다. 동서독으로 나란히 세계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 그들은 선수가 입을 모아 베토벤의 <제9교향곡>의 코러스를 불렀다.

제2차 대전 때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이 대패했을 때, 나찌당국은 라디오를 통하여 전 독일에 베토벤의 <운명>을 방송했다. 그들은 이 <운명>을 듣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가다듬었다. 승리를 향해서 개선장군처럼 씩씩한 전진을 다시 계속하자는 결의의 표상이었다. 베토벤의 운명은 제1악장서 운명에게 호되게 얻어맞는다.

이내 새로운 기상을 세워 다시 힘을 일으켜 운명에 용약 도전하고 대결한다. 마침내 제4악장 피날레에 가서는 4분의4박자의 '알레그로프레스토'가 운명을 정복한 거인의 행진곡이 되어 우렁찬 멜로디가 나온다. 운명에 승리한 것이다. 위대한 음악을 가진 민족은 참으로 행복하다. 우리가 국민적인 수난을 겪고 심기일전의 재기를 호소하는 음악을 연주할 경우 과연 무슨 곡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아리랑 회상곡? 가야금단조? 그리운 금강산? 선구자? 봉선화? 아,아 대한민국?
베를린을 보면서 줄곧 우리도 위대한 음악을 창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가락다운 가락, 멜로디다운 멜로디, 음악다운 음악이 한없이 그리움을 느꼈다. 물질이 뒤진 것 이상으로 정신이 가난한 우리의 정경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이 사람을 보십시오. 이 음악을 들으십시오. 이 그림을 구경하십시오. 이 철학을 읽어보십시오. 이 건물을 감상하십시오. 우리가 자신을 가지고 온 인류를 향해서 내어 놓을만한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베르리너는 건실한 실곡파들이다. 생활용품 어느 것 하나이건 견고하지않은 것이 없다. 디자인에서 아름다운 멋이나 산뜻한 미美는 없다. 반면에 건실성의 미와 덕德을 갖추고 있음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집의 구조도 그렇다. 특히 만년필의 모양이 그렇다. 디자인은 투박하다. 파아커나 파일럿의 맵시에 비하면 독일 만년필은 꼭 시골뜨기 같아 세련미가 없다. 그러나 잉크가 많이 들어가고 또 샘처럼 잘 나오기 때문에 쓰기에 편하다.

그들은 디자인이나 형식미보다 실용과 내용을 중요시 한다. 멋 보다도 실속, 이것이 베르리너들인 것 같다. 점쟎은 신사들이 양복의 팔꿈치에다 가죽을 대고, 깃과 소매가 닳지 않도록 튼튼한 천을 대어서 입는 것을 보고 고개가 절로 수그러진다.

여성들은 별로 화장을 하지 않는다. 해도 가볍고 엷게 한다. 립스틱을 새빨갛게 진하게 바르지 않는다. 착실한 주부형이요 모성형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맛이 도무지 없는게 독일여성이다. 사랑을 속살일 상대가 아니고 같이 일하고 애쓸 상대다. 큼직하고 트박한 손을 보더라도 <일하는 손>이다. 백옥같은 섬섬옥수가 아니다. 어루만져 쓰다듬고싶은 섬섬옥수가 아니다. 베르리너의 외모는 매우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여도 속마음은 무척 참되고 친절한 것 같다. 그들은 교언영색할 줄 모른다.

인생의 의무를 고집하고 규율을 강조한다. 게르만적 기질은 그 의지에 의해서 대표된다. 그들 얼굴의 가장 큰 특색은 그 입에서 잘 나타난다. 한일자로 꽉 다문 입은 그들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의지, 철저성, 견실성이 그릇된 정치적 판단과 짝하여 침략적 전쟁행동으로 전개되었으나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와 영국적인 커먼센스가 있었기에 통일의 위대한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적인 왕국다운 면모가 약여躍如한 것에 다름 아니다.

베르린의 명소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은 전화戰禍 속에서 불사조와도 같이 부흥된 상징적인 명소 중의 하나다. 광장의 동쪽은 대통령 관저인 벨레뷔 궁전이 있는 엥글리셔 가르텐(영국정원)과 '6월17일'가街를 지나 브란덴부르그가, 북동쪽은 오토쉬르가로 뻗어 나가서 문자 그대로 사통팔달, 교통상 요지가 되어 있다.

광장 한가운데는 커다란 못池이 있는데, 거시서 수많은 분수가 힘차게 물 줄기를 뻗어올려 일대장관을 이룬다. 템벨호프Tempelhof 공항은 1948년 6월 서방측과 대립한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했을 때, 고립된 서부 베를린 시민은 기아로부터 구제하기 위하여 서방측 수송기가 구호물자를 싣고 착륙했던 곳.

이 비상한 공수작전으로 당시 서부 베를린 시민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났으나 31명의 미국 비행사가 순직하는 등 고귀한 인명의 희생을 치뤄야 했다. 공항입구광장에는 그때 희생된 비행사들의 갸륵한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대공수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다음은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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