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총장과 박근혜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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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총장과 박근혜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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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이 대통령 된다면 정치학 교과서 고쳐 쓸 상황

 
   
  ▲ 정운찬 전 총장과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신랄한 비판의 소리를 냈고, 경향 등 진보신문은 비판적이면서도 평소의 소신을 펴줄 것을 부탁했다.

반면 보수신문들은 총리의 임무는 대통령에 대한 협력임을 강조하면서 총리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충정어린 사설을 내보냈다. 보수신문은 또한 정 전 총장의 총리 후보지명을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악재(惡材)로 부각시키는 기사를 내보냈다.

진보 신문이 배신감을 표출하면서도 평소의 소신을 펴기를 부탁했다면, 보수 신문은 정부내 불협화음을 경계하고 박 전 대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또다시 드러낸 셈이다.

정운찬 전 총장의 경우

케인즈 학파 경제학자인 정운찬 총장을 진보와 보수라는 스펙트럼으로 구태여 구분한다면 아무래도 온건한 진보, 또는 중도적 진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 총장은 경제 등 내정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자주 피력했지만 대북정책 등에 대한 그의 의견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정도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02년에 정운찬 교수가 서울대 총장으로 선출된 데는 “그래도 정운찬 정도는 되어야 정부에 맞설 수 있다”는 공감대가 교수들 사이에 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또 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자 다음 번 정권은 서울대를 폐교하거나 대학원급 한림원 정도로 만들지 않겠나 하는 추측이 많았다.

실제로 ‘서울대 망국론’이 일부 언론과 정부 주변에서 회자(膾炙)되었으니, 정운찬 총장의 가장 큰 업적은 서울대를 지킨 것이다. 그런 연유로 정 총장은 ‘대통령에 항명한 국립대 총장’ 이란 ‘화려한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서울대 총장으로서 정운찬 씨의 또 다른 업적은 황우석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한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조작 의혹을 파헤친 매체는 MBC다. MBC의 PD수첩의 기획취재는 결국 진실로 밝혀졌고, 정 총장은 황우석 교수를 징계 해직하는 일을 마무리 했다.

황우석 사건을 파헤친 MBC의 기획특종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벤 존슨의 약물 복용을 폭로한 조선일보의 특종과 더불어 언론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MBC의 PD 수첩이 황우석을 파헤치는 보도를 할 때 조선일보는 그것이 일종의 ‘음해’라는 논조의 기사와 사내칼럼을 내보냈다.

별다른 대권 주자가 없었던 당시 여권이 총장 임기를 끝낸 정운찬 씨를 대권 후보로 영입하고자 할 때 보수신문들이 비판적 사설을 내보낸 것은 황우석 사건의 앙금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총리 자리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리 같은 관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을 만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운찬 총장이 이명박 정권의 속성과 본질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독주 정권’이란 말을 듣는 MB 정권의 속성을 모르고 총리직을 맡았다면 그는 매우 아둔한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4대강 사업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일체 다루지 않는다는 양해를 하고 총리를 맡기로 했을 수도 있다.

이회창씨가 대통령 감으로 갑자기 부각한 계기는 총리직 사퇴였다. 총리로서 이회창은 민주진영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환경단체가 반대하던 우이령 도로 개설을 그만 두라고 지시해서 ‘환경총리’로 불리기도 했다. 총리를 그만 둔 이회창을 대선후보로 만든 집단은 당시 여당 내의 개혁세력이었다.

당시 야권에는 김대중이란 거목이 버티고 있었지만, 여권 내에 김대중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이회창이 유일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과 일정한 선(線)을 그은 이회창은 대권 후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야권에는 아직 특별한 주자(走者)가 없지만 여권에는 박근혜 전 대표 외에도 잠재 후보가 여럿이 있다. 만일에 정운찬 씨가 총리를 그만 둔다면 이회창이 아닌 고건 씨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선거 경험 없이 대통령이 된다 ?

몇몇 보수신문은 정운찬 씨가 총리가 되어 “대권 구도가 소용돌이친다”고 써댔다. “더 이상 박근혜 대세론은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만일에 정운찬 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치학 교과서를 고쳐 쓸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대통령은 선거를 거치는 공직을 경험한 사람이 하기 마련이다. 선거라는 ‘민심의 바다’를 헤엄쳐 본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52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으로부터 대선 후보 제의를 받아 공화당을 택해 당선된 아이젠하워의 경우는 극히 드문 예외에 속한다.

1991년 걸프 전쟁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콜린 파월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토군 사령관으로 코소보 전쟁을 지휘했던 웨슬리 클라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분위기만 잡다가 그만 두었다. 대학총장->국무총리->대통령이란 ‘환상적인 행로(行路)’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나라 총리를 ‘2인자’ 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 이지만 부통령이든 총리든 2인자가 대통령직을 계승하기는 독재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2차 대전 후 미국에서 부통령이 직접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는 조지 H. W. 부시뿐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국민들한테 워낙 인기가 좋아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처럼 국민들한테 인기 없는 대통령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런 정부에서 2인자가 대통령이 될 확률은 코끼리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과 비슷하다.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전 대표 ?

정운찬 총장이 총리로 지명됨에 따라 박근혜 전 대표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운찬 총리 지명에 앞서 ‘심대평 사태’가 발생했다. 심대평 대표의 탈당은 예상되었던 일이다. 이회창 총재가 대권 4수(修)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심 대표는 자유선진당에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충청도를 무시해서 대선에서 두 번씩이나 떨어진 이 총재가 충청도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우습지만, 어렵게 다시 가꾸어 놓은 충청당(黨)의 안방을 이 총재에게 내어준 심대평 대표의 모습도 우스운 것이었다. 여하튼 이번 사건으로 이회창 총재는 쇠락(衰落)의 길을 갈 일만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충청을 껴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정운찬 총장을 총리후보로 지명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왔다갔다 하면서 청와대에 사실상 협력해 왔던 이회창 총재를 열 받게 했으니, 잠재적 우군을 없앤 꼴이다. 이 총재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충청이 혼란에 빠져든 현재의 상황은 충청이 두 번째 고향인 박 전 대표에게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작용할 것이다.

정운찬 총장을 총리로 지명함으로써 이명박 정부가 ‘중도’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부분도 주목할 부분이다. 현정은 회장의 방북이 보여 주는바와 같이,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심복이라는 중도실용주의자들은 그저 그런 유화주의자들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태생적으로 현대-아산에 불리한 조치를 절대로 취하지 못한다.

이제 실질적으로 햇볕정책을 답습할 일만 남은 이명박 정권은 정운찬씨를 총리로 지명함으로서 극단적 보수세력과 선(線)을 그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보수신문도 원래는 보수단체를 백안시했었다. 그러다가 촛불 사태가 일어나자 위협을 느낀 정권과 보수신문이 보수단체를 은연중 이용했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

2007년 경선 때 보여준 바와 같이, ‘안보보수 세력’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었다. 이재오 같은 ‘운동권 출신’이 포진하고 있던 이명박 진영을 불신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촛불사태라는 전에 없던 위기를 맞았고, 무언가 ‘속죄양(贖罪羊)’이 필요했던 정권과 보수언론은 이를 ‘배후세력’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는 여권과 보수언론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미디어 법, 용산사태 등에서 박 전 대표가 ‘민심’의 편에 서자 이제는 박 전 대표를 ‘좌파’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황당한 여론몰이를 주도한 이른바 ‘보수세력’은 특정 연령층과 특정집단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뒤로하고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를 표방하고 나섰다. 극단적 보수세력은 나름대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보기 보다는 크지 못하다. 하지만 MB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던 폭넓은 ‘보수민심’이 박근혜 전 대표로 돌아올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극단적인 보수를 제외한 폭넓은 보수층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명박 정권의 ‘아킬레스 건(腱)’인 4대강 사업은 정운찬 총리로선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박 전 대표는 여기서 차별화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환경과 국토를 유린하고, 국가재정을 파탄에 빠뜨리고 멀쩡한 공기업을 부도위기로 몰아넣는 ‘참 나쁜 정책’인 4대강 사업을 박 전 대표가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에 박 전 대표가 강 본류에 댐을 주렁주렁 세우는 4대강 사업에 동조한다면 그것은 MB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운찬 총리’가 박 전 대표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선택은 박 전 대표의 몫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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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2009-09-06 14:47:45
좀 색다르지만 곰곰히 생각해볼 만한 분석이네요.

힉슨 2009-09-11 14:37:26
존경하는 이상돈 교수님 다른 말은 다 맞지만 황우석 박사 관련 부분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황박사는 무고하며, 1번 줄기세포는 진짜임이 최근 밝혀 졌습니다. 정운찬은 황박사를 생매장 시킨 장본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한 막대한 국부창출의 원동력이 될 줄기세포 특허를 포기하려고 하였던 사람입니다. "정실련" 게시판에 오셔서 진실을 파악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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