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가 물고 온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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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가 물고 온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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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희성 산문집 <나는야 '지금 사랑'이 더 좋다> 펴내

 
   
  ^^^▲ <나는야...>의 표지
ⓒ 서지원^^^
 
 

무릇 이루어진 사랑에는 '옛'을 붙이지 않는 법이니, 옛사랑은 결국 풋사랑과 닮아 있다. 다시금 그 시절이라면, 그 어떤 불구덩이라도 헤쳐 '삼단 같은 네 머리채' 놓치지 않으련만, '하는 일이 그저 어리기만 한' 시절의 일이라 아뿔싸 '옛'이 되고 만다." ("나는야 '지금 사랑이' 더 좋다" 몇 토막)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인 정희성이 아니라 20여 년 동안 '잡지쟁이'로 살아온 시인 정희성(동국대 문창과 외래교수)이 산문집 <나는야 '지금 사랑이' 더 좋다>(서지원)를 펴냈다. '희망을 나누는 좋은 생각, 정희성의 파랑새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시인의 소원처럼 '햇빛 있을 때 집 찾기'다.

'햇빛 있을 때 집 찾기'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구? 이 말은 곧 표제 속 '지금 사랑이'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시인은 안다. 스스로 걸어가는 길이 곧 수도원이라는 것을. 그래서 시인은 "상실의 아픔에 급기야 눈까지 멀고, '겨울은 지나갔지만, 봄도 없구나!'라고 노래하며 기다림으로 한 세월을 다 지워버린 '솔베이그'"가 되지 말자고 속삭인다.

"'그대들은 옛사랑이나 뒤적거리며 사세요, 나는야 '지금 사랑'이랍니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지금 사랑'이랍니다' 라고 입을 앙다물면서 옆 사람 손을 꼬옥 잡자. 그리곤 복사꽃처럼 붉은 열정일랑 아껴둘 일 아니니, 지금 서로의 가슴을 활짝 열어놓고 다 주거니받거니 할 일이다. 사랑은 '지금 사랑'이 더 좋다." ("나는야 '지금 사랑'이 더 좋다" 몇 토막)

<나는야 '지금 사랑'이 더 좋다>는 모두 3부 속에 79편의 비밀한 글들이 마치 희망을 물고 오는 파랑새처럼 포로롱 포로롱 날고 있다. 시인은 고이 접은 연애편지 같은 이 글들 속에서 물신화 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사랑법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진정한 사랑은 휴(休)와 정(情)과 선(善)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휴(休)와 정(情)과 선(善)이라니? 결코 어려운 말이 아니다. 휴(休)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일정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정(情)은 말 그대로 사람살이에 있어서 반드시 서로 나누어야 하는, 비타민 같은 속내 깊은 정을 말한다. 선(善)은 서로를 감싸안고 도와주는 지렛대 같은 착함이다.

글쓴이는 이 셋이 회복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 '지금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글쓴이가 이 셋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관철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마구 높이거나 선동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른 새벽, 홀로 이 세상을 향한 무언의 기도처럼 그렇게 조용히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둔 미인이 있더라도 코앞에서 얼쩡거리면 껄떡쇠로 외면당하는 법이다. '네 자랑이 크면 얼마나 크더냐? 난 일 없다!'하듯 은근한 수작이어야 미인의 콧대도 조금은 수그러드는 법이다. 그런 의연함으로 일출봉의 속살까지를 훔치려 해보라! 일출봉의 치맛자락에 쑤욱 허연 손목을 디미는 파도의 수작질이며 앵돌아앉아 금방 '바다 이내'를 피워 올리는 일출봉의 토라짐마저 보일 것이다." ("섭지코지, 한 발 비껴섬의 여유" 몇 토막)

이 책에는 기행형식에 가까운 글들이 제법 눈에 띈다. 한계령과 섬진강, 제주 용눈이오름, 서빈백사,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소록도 등. 글쓴이는 그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나름대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의미 부여는 사람과 자연을 하나로 이어주는 징검다리이자,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파랑새 편지'이다.

"파도와 오름과 풀잎들, 벌레들과 번민과 증오, 그리고 너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외로움을 처절히 세울 때, 내 비로소 자유와 예술의 등 굽은 몸뚱아리에 향유를 바를 수 있었노라고, 결국 제주도는 사랑이었다고, 소름 끼치는 그리움이라고…." ("섭지코지, 한 발 비껴섬의 여유" 몇 토막)

정희성의 <나는야 '지금 사랑이' 더 좋다>는 수도원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혹은 여행길에서 수없이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그리고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글들에게 새로운 젖꼭지를 물린다. 또한 물신의 시대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샘물 한 바가지를 퍼서 나뭇잎 한 장 띄워서 건네주는 그런 책이다.

한편,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제주도 풍경을 담은 김영갑의 컬러사진들도 보는 이로 하여금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 무지개 뜨는 언덕
ⓒ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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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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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2003-08-19 11:48:47
무지개 뜨는 언덕 사진 정말 좋읍니다. 내용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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