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환장 한 北, 대화에 목마른 체
스크롤 이동 상태바
$에 환장 한 北, 대화에 목마른 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일이 대화에 열을 올리는 것은 UN제재 돌파와 돈가뭄 해소 노림수

 
   
  ^^^▲ 북한 김정일 위원장^^^  
 

적십자회담 유감

김정일이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발사와 10월 9일 1차 핵실험에 이어, 2009년 4월 5일 대포동2호 ICBM 발사에서 5월 25일 2차 핵실험 자행에 이르기까지 초강경 대결자세로 인하여 한반도비핵화국제적협의의 틀인 6자회담을 사실상 파탄 낸 상태에서 8월초 미국 클린턴 방북에 이은 현대 현정은 방북을 계기로 급작스럽게 대화모드를 취하고 있다.

김정일은 8월 18일 김대중 사망을 계기로 중앙당비서 김기남과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을 특사조문단으로 파견,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면서 '정상회담' 소식을 흘리고 북으로 돌아간 특사조문단 일행은 "잘 됐다"고 떠벌여대는가 하면, 평양시민 여론(?)도 "모든 것이 장군님의 뜻" 이라며 "잘 됐다."분위기 연출에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16일 김정일이 대한민국정부가 아닌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에게 약속한 대로 26일부터 28일까지 금강산에서 '추석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2007년 10월 이후 중단 됐던 적십자회담이 개최 되고 2008년 11월 13일 끊겼던 판문점 적십자 직통전화가 복원됐다고 대단한 경사라도 난 듯 부산을 떨고 있다.

개인 간에도 주먹다짐보다는 말로 하는 게 낫고 국가 간이나 심지어는 교전상방 간에도 무력 대결보다는 대화와 타협이 낫다는 것을 모를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엄청난 음모와 술수를 모른다면 그 보다 더 불쌍한 바보, 한심한 멍청이도 없을 것이다.

남북대화의 역사를 보면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인도주의적 이산가족 찾기 적십자회담》을 제안하자 8월14일 김일성이 평양방송을 통해서 이에 동의하면서 5차례의 파견원 접촉과 25차례의 예비회담을 거쳐서 1972년 8월 29일 평양에서 제 1차 본회담이 열린 것이 적심자회담의 시작이다.

그 후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어져오다가 노무현 정권, 정동영 통일부장관 시절, 2005년 8월 15일 남북 이산가족 40쌍이 화면을 통해서 얼굴만 비치는 '화상상봉' 이란 것이 도입되어 인도적 이산가족상봉이 꿈에 떡 맛보듯 하는 《퍼주기 분위기 띄우기용 이벤트 성 生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의 談談打打 술책

1972년 7월 4일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 되자, 이 땅에 곧 평화가 오고 통일이 되는 양 환호에 들떠있을 즈음, 김일성은 이미 적십자 예비 접촉이 진행 중인1971년 9월 25일 대남담당비서 김중린과 인민군총참모장 오진우를 불러 놓고 《속전속결기습전략에 대한 교시》를 하달하여 《남침 땅굴》을 파기 시작 했다.

1992년 1월 20일자 남북비핵화선언을 담보로 1992년 2월 19일 발효키로 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긴 이름의 합의는 1993년 3월 12일 김일성이 NPT탈퇴를 강행함으로서 단 반 발자국도 못 나가 보고 휴지 쪽이 되면서 1차 핵 위기를 맞고 말았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5억 달러나 되는 뇌물을 바치고 평양에 가서 발표한 6.15망국선언은 김정일의 답방거부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으로 갈가리 찢겨버리고 2007년 10.4 매국합의는 2009년 5월 25일 김정일의 2차 핵실험으로 6자회담과 함께 공중분해가 돼 버렸다.

2차 핵실험 이후 UN결의 1874호로 숨통이 막힌 김정일이 서부 갱영화에서 술 취한 무법자가 무턱대고 총질을 하듯 미사일을 마구쏘아대고 기존합의 무효화와 통행 통신차단에 이어 미국여기자와 개성공단 현대직원을 납치 인질로 삼고 우리어선 '800 연안호'와 선원 4명을 억류하는 등 온갖 '蠻行과 發作'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런 만행과 발작이 무위로 끝나자 김정운 후계작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150일 전투가 돈 가뭄으로 차질을 빚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게 됨은 물론이요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코앞에 닥쳐 또 다시 200만 내지 300만 명을 굶겨죽일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되자 또 다른 '꼼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김정일이 이런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내키지는 않는 '대화'를 들고 나온 것에 불과하며 남북대화를 통해서《금강산과 개성공단 현금 빨대》를 복원 재가동하고 UN제재에 구멍을 뚫어 미국 등 국제사회와 이간책으로 한국을 '왕따'로 만들어 보려는 다목적 談談打打 카드를 꺼낸 것이다.

남북대화의 조건

전쟁을 해도 휴전과 강화회담이 병행 되듯 남북관계가 아무리 험악해도 대화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위수김동과 친지김동에 충성을 맹세하고 무조건 복종해온 촛불폭도와 '우리민족끼리' 呪文에 세뇌당하고 감상적 평화통일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얼간이들이 주장하는 대화지상주의는 절대로 금물이다.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것은 《大韓民國은 統一을 指向하며, 自由民主的 基本秩序에 立脚한 平和的 統一 政策을 樹立하고 이를 推進한다.》고 규정한 대한민국헌법 제 4조이며 대화의 대 전제는 6.25남침 시인사과와 재 남침방지, 핵의 즉각적이고도 불가역적(不可易的)인 폐기이며 상호주의와 당국자우선 원칙이다.

김정일은 2008년 12월 17일 인민군 총참모부대변인성명과 2009년 1월 30일 노동당 통일전선부 대남모략선전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서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남북 간 모든 합의사항들에 대한 무효선언》을 함으로서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는 물론이요 위헌과 불법논란이 끊이지 않던 6.15와 10.4합의 역시 《無效》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에 의해서 이미 폐기 된 '기존합의'에 구애 받지 말고 원점(原點)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와 결의로 대한민국 헌법 제 4조의 정신에 입각해서 북의 남침과 도발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핵 위협을 제거하는 것을 전제로 상호주의 당자우선 원칙에 충실한 남북대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李 대통령이 역대정권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화에 환장을 하다시피 하는 '통일부' 아이들에게 끌려 다니지만 말고 대한민국헌법정신과 대화의 대전제인 남침시인사과와 비핵화 그리고 상호주의와 당국자우선 '룰'만 제대로 지킨다면 '不可易的 '이고도 의미 있는 남북관계에 진전을 이룰 好機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나참 2009-08-26 11:40:46
백가야 넌 대화자체도 못하게 하는 너는 구구냐?
이놈아 이정도라도 진척돼야 우리 국민들이 그나마 안심하고 살수 있는 법. 맨날 다투고 총겨누고 그래서 국방비 왕창 늘려 전쟁준비나하고 살란말이냐?

이명박 정부 그럴 돈 있으면 이놈아 삽질하는데 쓰지 왜 국방비에 쓰겄냐. 몰러도 너무 모르는 작자이구만.

엠비생각 2009-08-26 11:43:10
남쪽은 4대강 삽질 왕창 돈쓰기로 이미 확정됐고....
이제 북한의 대동강, 청천강 등 삽질해서 남북한 강의 연결 사업을 하면 안성맞춤이겠지.. 흐흐흐 MB 생각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