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유감, 지난 10년은 그들만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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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유감, 지난 10년은 그들만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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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이 서울에 만들려던 '조선인민공화국' 김일성이 평양에 리메이크

 
   
     
 

1945년 8월 15일 정오 왜왕 히로히또(裕仁)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美. 英. 中. 蘇 연합국에 무조건항복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1910년 8월 29일 국치를 맞은 이래 일제식민지배 36년 만에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공간에서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 여운형은 1945년 8월 15일 이른 아침 6시 엔도 (遠藤柳作) 총독부 경무총감을 은밀히 만나 일본 패망과 항복소식을 전해 듣고 패전국 일본인의 안전철수를 위한 치안유지에 협력키로 약속했다.

그런데, 여운형은 독립운동가로서, 사회주의자로서, 공산혁명운동가로서 알려진 것 외에 1944년에 발간 된 '반도학도출진보'에 실린 "반도 이천 오백만 동포에게 호소함"이라는 학병지원을 독려하는 글을 1943년에 쓰기도 한 '친일'의 얼굴도 가지고 있었다.

해방당시 민족진영에서는 '이승만 박사와 김구선생 등 '해외 독립운동 지도자와 임시정부'가 환국하기를 기다리는 입장인데 반하여 여운형은 일본 총독부로부터 치안유지에 대한 권한을 이양 받는 것을 전제로 서둘러서 '건국치안대'를 조직하고 '조선인민공화국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에 선수를 쳤다.

여운형은 좌파 중심의 정부를 만들기 위해 1945년 9월 2일 건국준비위원회 선언과 강령을 발표하고 9월 6일에는 '조선인민공화국' 조각명단까지 발표했으나 1945년 9월 7일 '맥아더사령부 포고 제 1호'에 의해군정이 선포되자 여운형의 '조선인민공화국'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인민당' 여운형의 꿈은 1948년 9월 9일 '조선노동당' 김일성에 의해 평양에서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리메이크 재등장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5년 8.15해방으로부터 만 53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으로부터 만 50년 되던 해인 1998년 8월 15일 김대중은 김정일이 남북회담의 전제로 고집해온《통일운동 환경 보장과 통일인사 석방》이라는 요구를 들어 주기 위해 《간첩 죄》로 복역 중인 30여명을 포함하여 공안사범 103명을 일시에 사면 석방하였다.

1998년 8.15 특사로 사면 또는 석방 된 자들은 김낙중(전 민중당대표), 황인오(조선노동당 사건), 박노해(사노맹 사건), 서경원(밀입북 사건) 등이며 1999년에는 고정간첩 고영복(전서울대명예교수), 안재구 류낙진(구국전위 사건), 최호경 조덕원(조선노동당 사건), 이화춘이 2000년에는 무하마드깐수(정수일), 심정웅(고첩), 우용각 등 미전향장기수 17명 잔여형기 면제 석방 되는 등 그야 말로 매년 8.15는 그들의 해방일이 되었다.

1998년 8월 15일 이후 우리나라에는 간첩과 '빨갱이'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통일운동가와 민주화 인사》가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다.

특히 2000년 1월 12일 제정 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에 근거 해 과거 좌경운동권출신 인사 중심으로 구성 된 11명의 위원이 밀실에서 《특별사면과 복권, 전과기록 말소》는 물론, 각급기관과 지자체 등에 《복직을 권고》하는 결정을 남발하여 우리사회를 초기공산혁명시대를 방불케 했다.

그 결과로 서울 등 16개 시/도에서 13,348명이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 및 상이, 유죄판결 전과삭제, 해직자 복직, 학사 징계 무효화 등 보상과 명예회복 심의 신청을 하여 대다수가 민주화 인사로 결정됨과 동시에 상당액의 보상금까지 챙겼다.

심지어는 '민보상법' 이라는 위장막 뒤에서 중요 간첩사건 연루자는 물론이요 경찰관을 7명씩이나 태워 죽인 동의대 방화 살인범 46명도 '민주화인사'로 결정하는 탈법행위 여파로 친북반역세력이 득세하여 사실상 점령군 행세를 하며 대한민국 정치사회문화 전 분야를 주름잡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05년에는 남북친선축구경기가 개최된 상암 월드컵축구장은 '한반도기'로 뒤 덮이고 관람객이 소지한 소형 태극기를 경찰이 압수를 하는가하면 경기장 입구에서 노무현 정권이 나눠 준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소형 태극기를 나누어 주던 시민이 테러를 당하고 3시간씩이나 연금을 당하는 《태극기 수모의 날》이 되기도 했다.

이제 며칠 후면 2009년 8월 15일 제 64주년 광복절과 제 61주년 건국기념일을 맞게 된다.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정부 탄생으로 친북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긴지 10년 만에 되찾아 온 우익 정부의 8.15는 어떤 모습의 8.15가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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