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3선 개헌'과 '2009년 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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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3선 개헌'과 '2009년 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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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를 위한 투쟁'

 
   
     
 

지난 주 미디어법 변칙통과를 본 나는 40년 전의 3선 개헌을 되돌아보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도 발췌개헌, 4사5입 개헌 등 변칙적 개헌이 있었지만 그 시절의 상황에 대해선 책으로 알고 있는데 비해, 1969년 3선 개헌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어난 일이라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1969년 3선 개헌

1967년 총선에서 각종 불법선거운동으로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공화당 정부는 예상했던 대로 대통령 3선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안을 1969년 가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했다. 서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에선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발생했고, 야당인 신민당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9월 14일 밤, 국회 건물 건너편 별관에서 여당의원들 122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안이 변칙적으로 통과됐다. 한 달 후 국민투표를 통해 3선 개헌안은 확정되었다.

당시에는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앞장섰던 동아일보의 기자가 개헌안을 변칙으로 처리하고 나오는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플래시를 터트려서 당황하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의원들의 모습을 찍어 크게 보도했다. ‘부끄러운 줄은 안다’는 설명을 붙인 그 사진은 희대의 특종이었다.

당시 야당은 국회가 국회법을 위반해서 개헌안을 처리했다는 이유로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국회 내부의 사안에 대해 법원이 심리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심리를 거부했다. ‘통치행위’(Regierungsakt) 또는 ‘정치적 문제’(political question)임을 들어 의회 내부의 절차에 대한 심리를 거부한 것이다. 의회의 의사절차, 대통령의 대외정책 같은 사안은 사법부가 적법여부를 판단하기에 부적절하며, 이러한 정치적 사안에서 사법부는 권력분립의 취지를 살려서 심리를 자제(self-restraint)해야 한다는 논리를 당시 법원이 수용한 것이다.

1969년 미국 대법원의 파월 대 매코맥 판결

그러나 같은 해에 미국 대법원은 우리 법원과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Powell v. McCormack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의회의 절차가 정당한가 아니한가는 사법부가 정당하게 심리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을 대표한 얼 워렌 대법원장은 그 사건이 “사법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justiciable’)”이며, “사법부가 판단을 회피해야하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고, 단지 헌법을 해석하면 되는 사안”이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7대1이란 압도적 다수로 이루어졌다.

해당 사건은 미국 하원이 징계절차에 의하지 않고 비리 스캔들이 있던 애담 파월 하원의원을 직위에서 배제한 데서 비롯됐다. 파월 의원은 자신에 대한 하원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미국 대법원은 의회의 의사(議事) 결정을 사법부가 심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해왔던 종래의 입장을 번복해서 헌법을 위반한 하원의 결정을 무효로 판결했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를 위한 투쟁’

파월 판결은 논란이 되고 있는 미디어법의 효력을 다투게 될 헌법재판소에게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3선 개헌안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내리기를 거부했던 1969년과 지금이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의 수준에서 같을 수는 없다. 40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우리의 사법부도 국회의 의사절차에 대해서도 심사를 할 수 있다고 판결한 파월 사건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를 달성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의 기본권도 절차적 정의에 관한 것이다. 절차적 정의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는 민주적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은 검찰이나 경찰이 인신보호에 관한 절차를 위반하고서 인신구속을 할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국민들은 의사규칙을 위반한 국회의 의결이 불법임을 잘 알 것이다. 미디어법의 무효여부를 다룰 헌법재판소가 ‘상식’을 존중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미디어법 변칙 통과로 시끄러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괴산의 한 여학교를 방문해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그 기념사진에 대해 여학생들이 불만을 늘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9년 3선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나는 대학입시를 몇 달 앞둔 경기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당시 경기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3선 개헌과 영구집권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읽고 시위에 나서려다 그것이 여의치 못해서 교실에서 농성을 했었다. 단 하루 만에 끝난 농성이었지만 그것은 큰 사건이었다.

학교는 얼마동안 휴교를 했고, 학교장은 문책 사임했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480명 졸업생 중 300명 이상이 그 해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시위를 주동했던 학생들에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성적이 우수했던 모범생들인 학생회 임원들이 시위를 주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 대표는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합격해서 4년 후에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모교 물리학과 교수로 있는 아무개였다.

대통령과 사진을 같이 찍은 괴산의 여학생들의 사연(?)을 전해 듣고 40년 전의 우리들의 모습이 생각이 나서, 사사로운 사연이지만 몇 글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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