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초등학교 6학년 때 가르쳤던 분인데 지금은 70대 중반의 연세라고 하는 얘기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들이 선생님을 찾아 갈 거라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그걸 보다가 무심코 "국민학교 때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벌써 70대 중반이야" 그랬더니 집사람이 " 아니, 초등학교로 바뀐 지가 언젠데 아직도 '국민학교'란 말을 쓰느냐" 고 한마디 했습니다.
말은 맞는 말인데 괜히 화가 났습니다. 말 실수 한번 한것 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국민학교라고 하면 어때? 나는 초등학교란 말보다 국민학교란 말이 더 좋아" 하고 쏘아 붙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지루한 말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국민학교' 가 그리 좋은 말은 아닙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 진 말인데 '황국신민'으로 교육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몇 년 전에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이런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국민학교'란 말을 양보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괜한 고집이라면 고집입니다.
전에 이력서를 쓸 기회가 있었는데, 첫 줄에 'ㅇㅇ 초등학교 졸업' 이라고 쓴적이 있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나는 ㅇㅇ 국민학교'인데 하면서도 할 수 없이 초등학교란 표현을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면 꼭 뭔가를 잃어 버린 것처럼 서운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물론 평상시에는 초등학교란 말을 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면 국민학교란 말이 쑥쑥 튀어나옵니다. 얼마 전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로보트 태권 V' 주제가가 나오는 겁니다.
'날아라 날아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브이,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처음엔 '무슨 애들도 아니고 이게 뭐야' 하면서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좋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만화 영화가 참 재미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 그리고 '유성가면 피터'와 '바다의 소년 마린보이' 등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만화 주제가들를 대충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TV 만화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포켓 몬스터' 나 '드래곤 볼' 같은 만화도 별로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무슨 내용인지도 혼란스러울때가 있습니다. 이런걸 세대차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참고로 저의 핸드폰 소리는 '유모레스크'입니다. 국민학교 시절의 체육시간 혹은 아침 조회때 들었던 음악이지요. 이 음악을 듣다보면 다시 국민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제 4개월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 살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게 부담스러워 지고 있습니다.
가끔씩 주변 분들이 '야, 너두 눈가에 주름이 잡혔구나' 하는 말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제가 늙어간다는 얘기입니다.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뒤는 돌아 보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머리 벗겨지고 배가 나온 아저씨들 그리고 덩치 좋고 목소리 큰 아줌마들의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해 보는 것도 인생의 활력소가 될 겁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보니까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내가 속해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생겼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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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출간하면서 머리말에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이라는 말이 들어갔습니다. 제가 다니던 시대에는 국민학교였으니까, 국민학교라고 한 건 당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에선 요즘은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초등학교로 바꾸긴 했지만,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라는 말이 좋아서가 아니라, 국민학교라는 말에는 그 시대를 대변하는 정서가 들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한 번 깃들인 정서를 벗어버리기란 쉽지가 않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