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 이상돈 교수
  • 승인 2009.04.13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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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보수' 와 '진보'는

지난 4월 2일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열린 한 세미나에서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좌파의 이중성을 비판하면서, 좌파가 ‘진보’라는 좋은 명칭을 점용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좌파가 과연 진보인가?’라는 문제를 던졌다. 그러면서 부정확한 ‘진보’와 ‘보수’ 대신 ‘좌파’와 ‘우파’라는 명칭을 쓰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논의는 지난 정권 시절에도 많이 있었던 것으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명칭에 관한 이런 논의가 별다른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기왕에 이런 말이 나왔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용어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좌파와 우파

알다시피 좌파(Left)와 우파(Right)라는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후에 나왔고, 보불(普佛)전쟁 후 등장한 프랑스 제3공화국 의회에서 의장석에 볼 때 왼쪽에 공산당과 사회당 의원을 앉히고 오른쪽에 왕당파 의원을 앉힌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용어는 자신을 지칭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지칭할 때, 특히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지칭할 때 많이 사용한다. 사실 “나는 좌파다”, “나는 우파다” 하다가는 볼세비키나 네오 나치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인하는 정당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세력을 ‘좌파’로 규정짓는 것은 조금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국가”였고, “북한정권이 보다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을 ‘친북좌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북한의 인권침해는 직접 보지 못해서 알 수 없다” 거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식(式)의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이나 집단은 ‘좌파’ 또는 ‘극좌’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자유경쟁적 경제질서에 대한 태도, 성장과 분배에 대한 관점,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 낙태와 동성애 허용 같은 사회경제적 사안에 대한 이념과 정책의 스펙트럼의 차이를 두고 말하는 경우에는 ‘진보’와 ‘보수’가 ‘좌파’와 ‘우파’ 보다 적절하지 않은가 한다.

‘진보’ 라는 용어

박효종 교수 등은 ‘진보’라는 용어가 좋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진보’는 문자 그대로 본다면 “진전하고 발전하는 것” 이니 좋은 의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는 모두 정치적 뉘앙스를 갖고 있는 용어다. 정치적 용어로서 ‘진보’가 과연 그렇게 좋은 용어 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점이 적지 않다.

미국에선 ‘진보’를 의미하는 ‘liberal’이 그렇게 좋은 의미로 받아 드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의 보수단체와 보수지식인들이 벌린 ‘문화전쟁’(culture war) 덕분이다. [‘문화 헤게모니’가 좌파 용어라면, ‘문화전쟁’은 우파 용어다.] 만일에 “힐러리 클린턴 장관한테 당신이 리버랄이냐?”고 물어 본다면 그것은 실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존 매케인, 뉴트 킹리치, 루디 줄리아니, 미트 롬니 등 공화당 중진에게 “당신이 보수주의자냐?”고 물어 본다면 그들은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남긴 위대한 유산(遺産)이 아닐 수 없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에서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에 이르는 민주당의 노선을 흔히 ‘liberalism’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진보주의’라고 번역할 수밖에 없다. 이와 대립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의 경제철학인 ‘libertarianism’을 ‘자유주의’로 번역해서 부르기 때문이다.

‘진보’ 라고 부를 수 있는 ‘리버랄’ 이란 용어가 오늘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한 된 것은 196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1960년대에는 신좌파(New Left)라고 불리는 반체제 운동(anti-establishment movement)이 성행했는데, 이런 운동이 웨더맨 등 지하폭력조직의 테러행위로 발전하자 대중의 지지를 상실해 버렸다.

그러자 신좌파 운동을 했던 세대는 자신들을 ‘리버랄’, 즉 진보주의자로 부르게 되었다. 신좌파 행동파였던 빌 아이어스(Bill Ayers)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리노이 대학(시카고 캠퍼스)에 자리잡았는데, 커뮤니티 운동을 하던 젊은 시절의 오바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리버랄’ 이란 용어에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 것은 뉴레프트의 잔영(殘影)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폴 크루거만 교수가 2007년에 ‘The Conscience of a Liberal’를 펴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한 진보주의자의 신조(信條)’ 정도가 될 것이다. 크루거만의 책 제목은 1960년에 나온 배리 골트워터의 ‘한 보수주의자의 신조’(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을 뒤집은 것으로, 이제는 보수주의 시대가 저물고 진보주의 시대가 닥쳐왔음을 설파한 것이다. 크루거만은 미국에서 말하는 ‘진보주의’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와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진보’라는 명칭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금기(禁忌)였던 용어가 여럿이 있는데, ‘진보’, ‘혁신’, ‘사회주의’가 그러하다. 자유당 말기에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은 간첩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됐다. 5-16 후에는 혁신세력이 모진 박해를 받았다. 1967년과 1971년 대선 때에는 김철씨가 사민당 후보로 출마해서 상징적인 표를 얻었지만 유신 후에는 그나마 없어져 버렸다.

유신정권과 5공 정권 시에는 ‘민주화 운동’이 있었지 ‘진보 운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적 사회적 운동이 발생했는지는 연구해 볼 과제이지만, 내 기억으로 그 기점은 1988년 총선과 1990년 3당 합당이 아닌가 한다.

1988년 총선 결과 제1야당으로 등장한 DJ의 평화민주당이 모든 면에서 진보적 정책을 천명했다. 반면 민주화 세력의 또 다른 축인 YS의 통일민주당은 제2야당으로 전락했을 뿐더러 요새 말로 하면 정체성 마저 불분명하게 됐다. 그러다가 1990년 봄 YS가 노태우의 민정당 및 김종필의 공화당과 합당했고, 그렇게 태어난 민자당이 스스로를 ‘보수대연합’ 이라고 부르자, 이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진보’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한국의 ‘진보’가 과연 ‘progressive’ 인지, 또는 ‘liberal’ 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많지만 ‘liberal’도 어차피 ‘진보’라고 밖에 달리 번역할 방안이 없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는 논의의 실익이 없다.

우리나라의 ‘진보’가 ‘progressive’ 인지 ‘liberal’ 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논의가 있었는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박효종 교수와 윤창현 교수 등은 ‘진보’를 ‘progressive’로 보고 있지 않은가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의 우리나라의 ‘진보’도 ‘liberal’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progressivism’은 20세기 전반부의 산물(産物)이기 때문이다. 나라에 따라 특별한 정치적 사회적 사정이 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용어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띠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Progressive’ 라는 용어

보기에 따라서는 ‘progressive’는 ‘개혁’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1912년 미국 대선 때 대통령을 이미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공화당을 탈당하고 개혁을 표방하면서 ‘The Progressive Party’를 만들어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사회주의 기운이 팽배한 가운데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대기업 규제 같은 필요한 개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새 정당을 만들어 출마했던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떨어져 나가자 공화당으로선 골치 아픈 당내 진보파가 사라져 버린 셈이 되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추종했던 진보세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지지하고 민주당에 흡수되어 버렸다.

미국에선 ‘The Progressive Party’가 한번 더 있었다. FDR의 행정부에서 농무장관과 부통령(1941-45)을 지낸 헨리 월러스(1888-1965)는 1948년에 소련과 우호관계 수립, 흑인에 대한 투표권 보장, 국가 의료보험 도입 등을 내걸고 민주당을 탈당하고 ‘The Progressive Party’로 1948년 대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그는 의미있는 득표를 하지 못했다. 사회주의자를 넘어서 공산주의자라고 할 정도의 친소(親蘇)주의자인 그는 소련의 간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1990년대에 일부 공개된 미국과 옛 소련의 기밀문서는 루스벨트 행정부의 해리 홉킨스. 앨저 히스 등이 소련 간첩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으나 월러스에 대한 기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루스벨트가 1944년 대선 때 헨리 월러스를 젖히고 의외의 인물인 해리 트루먼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이 서유럽과 대한민국을 구했다고 생각한다. 루스벨트가 사망한 후에 월러스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서유럽과 한반도의 운명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1980년대-90년대 초까지 미국 공화당 및 영국 보수당 정권과 보조를 이루었던 캐나다의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의 소속 정당의 공식명칭이 ‘The 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였는데, 번역을 하자면 ‘개혁보수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9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의 정책 브레인 역할을 했던 연구소는 ‘The Progressive Policy Institute’ 였다. 이 연구소는 ‘변화에의 소명’(Mandate for Change)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일종의 ‘제3의 길’(The Third Way)을 천명했다. 따라서 이 연구소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진보정책연구소’가 아닌 ‘개혁정책연구소’가 적절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정책을 개혁하자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월가(街) 출신의 루빈 재무장관 등 친(親)기업적 인사들이 주도해서 레이건-부시 행정부의 틀을 그대로 답습했다.

‘보수’ 라는 용어

‘보수’라는 용어는 원래 매우 안 좋은 것이었다. 영국에서 왕당파를 ‘토리’(Tory)라고 불렀는데, ‘토리’는 아일랜드의 무장 폭도를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보수’(conservative)는 문자 그대로 현상(status quo)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철학으로서 ‘보수주의’는 에드먼드 버크(1729-1797)가 1790년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을 펴낸 것을 기점(起點)으로 삼아야 한다. 제임스 매디슨, 알렉산더 해밀튼 등이 기초한 미국 헌법이 포퓰리즘 민주주의의 위험으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한 반다수적(反多數的) 장치(counter-majoritanian appartus)를 갖춘 것은 보수적 혜안(慧眼)이었다. [20세기 초 진보적 개혁주의(progressive reform)가 미국을 풍미할 때 그런 성향의 역사학자 찰스 버드가 “미국 헌법은 토지소유자와 상공자본가들이 만든 경제적 문서(economic document)다”고 주장한 사실은 유명하다.]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전성기는 1920년대 였다. 멜런 은행과 알코아, 걸프 석유 등 기업군(群)을 일으킨 앤드류 멜런 재무장관이 3명의 대통령(하딩, 쿨리지, 후버)을 거느리고 추구한 작은 정부와 감세(減稅) 정책은 1920년대의 번영을 이루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으로 ‘번영의 1920년대’는 막(幕)을 내리고 말았다.

다시는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보수주의가 미국에서 되살아난 것은 배리 골드워터와 로널드 레이건, 그리고 러셀 커크와 윌리엄 버클리 2세 덕분이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반대하고, 시장자유주의와 작은 정부 그리고 감세(減稅)를 주창하는 새로운 보수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러셀 커크와 윌리엄 버클리는 도덕주의와 자유주의를 결부시킨 ‘미국 보수주의(American Conservatism)’를 지적 운동(intellectual movement)으로 발전시켰다. 유럽에서는 멸종되다시피 한 보수주의가 미국에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맺는 말

불과 3년 전인 2006년 여름, 뉴라이트에 참여하던 교수들이 “깊은 성찰과 획기적 전환이 없다면 진보개혁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진보진영을 걱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보수신문에는 ‘위기에 처한 진보좌파’라는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절멸위기에 처한 ‘진보’를 걱정해 주는 친절한 칼럼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보수정권’이 들어섰고, 뉴라이트는 정권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진보’라는 가짜 간판을 내건 ‘좌파’를 규탄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분명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가 위기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좌파 때문이 아니라 우파 스스로의 한계와 실책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좌파 반대를 넘어서 긍정적인 모델을 제공하지 못했을 뿐더러, 스스로의 모순과 이중성의 함정에 빠져 버렸다 ‘도덕성’은 윤리선생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대운하가 ‘나라를 살리는 뉴딜’ 이라고 주장하고, 안보를 이유로 ‘좌파 정권’도 불허한 잠실 제2롯데를 초고속으로 허가하는 정권에 침묵한 ‘보수’가 정당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 그리고 최근에 들어 난 금품수수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진보’도 위기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보’는 ‘보수’에 비해 노조 등 조직과 저변(底邊)이 넓다. 또한 젊은 세대는 문화적으로 진보에 경도되어 있다. 더구나 ‘보수’를 표방한 현 정권은 취약하기가 이를 데 없다.

박효종 교수 등이 새삼스럽게 ‘진보’를 좌파라고 부르자고 하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박효종 교수 등이 주장하는 ‘진보 좌파’의 문제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이중성’을 들어 남을 비판하는 것도 좋으나 그런 비판이 자신들에게는 해당이 없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좌파’가 ‘진보’ 같은 ‘좋은 간판’을 내걸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뉴라이트’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뉴라이트’ 자체가 정직하지 않은 간판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2006년에 여러 차례에 걸쳐 글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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