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와 명예훼손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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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죄와 명예훼손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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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상의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 MBC PD 수첩^^^  
 

10여 년 전부터 법학계는 형법의 몇몇 조항은 삭제해서 비범죄화(非犯罪化)해야 한다는 논의를 해오고 있다.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주목할 만한 논의가 아닐 수 없다. 간통죄와 명예훼손죄가 이런 범주에 속하는 범죄이다. 간통과 명예훼손은 사법(私法)의 영역이지, 국가가 형벌로써 다룰 형사문제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간통죄 폐지에 대해선 과거에는 여성단체가 반대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간통죄가 여성을 차별하는 제도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명예훼손죄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이를 폐지하면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의 명예가 취약해 진다는 것이다.

매춘죄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에선 매춘이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매춘이 범죄가 아닌 서유럽 보다 매춘을 범죄로 규정한 우리나라, 대만, 태국에 매춘이 훨씬 많은 것을 보면 법이 만사형통(萬事亨通)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인(私人)간의 문제인 간통과 명예훼손을 검찰이 수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검찰의 수사를 근거로 해서 당사자가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관행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겠다. 사인(私人)이 자신의 사법적(私法的) 권리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국가권력을 이용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범죄로서의 명예훼손

한때 명예훼손은 중대한 범죄였는데, 그것은 주로 국왕 같은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극형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권과 시민적 자유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언론자유가 보장되어 감에 따라 명예훼손을 범죄로 처벌하는 경우는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특히 기자를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는 나라는 유럽에선 러시아가 있을 뿐이다. 러시아에선 기자가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으니 기자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이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명예훼손죄가 없어 졌다고 해서 언론이 마음 놓고 오보(誤報)를 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민사소송은 가능하고, 그런 소송은 기자들에게 악몽과 다름이 없다. 거액의 소송을 우려한 기자들은 탐사취재나 기획취재를 주저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에는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공공사안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지 않게 되어 그 사회가 더 불행해 지고 만다.

명예훼손 민사소송 : ‘실질적 악의(惡意)’의 원칙

그런 점에서 1964년에 미국 대법원이 NYT v. Sullivan 사건에서 정치인, 공무원, 그리고 공적 인물은 자신에 대한 보도가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미국 언론에 최대의 선물을 안겨준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언론이 ‘실질적 악의’가 아닌 단순한 잘못에 기인한 기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면 언론자유에는 위협적 효과(chilling effect)가 생길 것이며, 그로 인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고 했다.

1982년 이스라엘 군이 남부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아랍 난민촌에서 발생한 학살사건에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이 관련되었다"고 타임지가 보도한 적이 있었다. 장관에서 물러난 사임한 샤론은 타임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타임지의 기사에 오류가 있었지만 타임지가 실질적 악의를 갖고 보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이 탐사취재와 특종에 강한 것은 이 같은 사법적(司法的)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신문 방송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최소한 미국에선 이제 발생하지 않는다. 사실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어떠한 보도가 잘못된 것임을 효과적으로 논박할 수단을 갖고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그것이 부시 백악관의 음모인 것으로 각색한 ‘화씨 911’ 이란 논픽션 스타일의 영화가 상영됐지만, 백악관은 아예 논평도 내지 않았다. 2004년 선거를 앞두고 CBS 방송이 부시 대통령의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는 뉴스를 내 보내도 백악관은 부인하는 성명만 내 보냈을 뿐이다. 나중에 그 뉴스가 가짜 문서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서 CBS의 간판 앵커 댄 래더가 조기은퇴하고 CBS는 사과방송을 했다.

노무현 정권의 명예훼손 소송 남용

우리나라에서도 김대중 정부까지만 해도 정부 당국자들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 정부기관이 조선, 동아, 문화, 월간조선 등 당시의 ‘비판언론’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부쩍 증가했다.

나는 그것이 노 정권의 ‘말기현상’으로 생각했다. 또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몇몇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남발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현상이 잘못된 것이라는 시론을 신문에 쓰기도 했다.

다소 경우는 다르지만, 1999년도 법조비리 사건 보도와 관련해서 MBC 기자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되는 일이 발생하자, 조선일보는 그것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사설(2003년 6월 23일자)을 내 보내기도 했다.

‘PD 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검찰은 ‘PD 수첩’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정운천 전 장관 등 피해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데 따른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정운천 전 장관 등은 민사소송을 제기할 능력이 없는 이른바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또한 사건이 있은 후 반년이 지나서, 그리고 그것도 "무슨 근거로 언론을 수사 하느냐"는 비난이 일자 고소를 했으니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승수 총리가 제주도에서 한 발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 총리는 지난 27일 제주 서귀포 칼 호텔에서 열린 외신 세미나에서 "‘PD 수첩’이 광우병에 대해 완전히 조작된 거짓말을 해 국민을 혼란시키고 사회를 어지럽게 한 만큼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고 한다.(프레시안 3월 29일자 기사)

검찰은 현재 ‘PD 수첩’이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정운천 전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했나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죄 수사는 원래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고소를 해서 수사가 부득이 하다고 해도 수사는 어디까지나 명예훼손 여부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국민을 혼란시키고 사회를 어지럽게 한 만큼 법의 심판을 받는 것" 이라는 대목이 나오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PD 수첩’이 "조작된 거짓말을 해 국민을 혼란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고,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해서 국민을 혼란시키고 사회를 어지럽게 한" 행위인지 어떤지에 대한 판단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인들은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공약을 내세워 사회를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수사하거나 처벌하지는 않는다.

명예훼손에 대한 약간의 첨언(添言)

1. 미국에서 ‘실질적 악의’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유는 신문 방송 같이 뉴스를 다루는 경우에 사실 확인에 만전을 기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이다. 따라서 그런 법리는 언론에 국한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미국의 언론이 대단한 특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어느 일반인이 다른 일반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실질적 악의'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2. 나는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데 찬성한다. 반면 검찰은 위증, 범인은익 같은 사법방해 사안을 보다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이다. 일반 출반물과는 달리 익명으로 발표하는 인터넷 댓글 등은 그 필자를 알 수가 없다. 이 경우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려고 해도 상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면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이 무분별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사이버 명예훼손을 일종의 경범죄로 규정해서 과태료를 부과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의 인터넷상에서의 인신공격성 글은 이미 도(度)를 넘은 상태이지만, 그것을 국가가 강제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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