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 소설은 듣는 자세가 되어 있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상, 역사, 심리, 사회, 그리고 인생을 들여다 보고 나름대로 해석해 나간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여러번 멈추게 했다. 잠시 책을 내려 놓고, 나를 돌아다 보고, 창 밖을 바라 보고, 세상에 대해 또 삶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했다.
모모의 귀기울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절대 밝히지 않는 사람마저 진실을 말하게 할 정도였다. 모모가 이 소설의 주인공일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이끌고 우화적인 권선징악적 결말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거기서 기인한다. 모모처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소설처럼 엄청난 일을 실제로 이룰런지도 모른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Ende, Michael. 1999. MOMO. 한미희, 역. 비룡소. p.23) "모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문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p.23) 모모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p.24)될 만큼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하여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상대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화자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깨닫게 될 것이고, 자신의 개성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심성의껏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혹은, 스스로 터득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침을 튀어가며 눈에 힘을 주고 눈물도 약간 고이고 온몸은 살짝 떨리게 되면서 머리카락도 조금 긴장을 유지하고 때로는 주먹을 꽉 쥐고 때로는 입을 꼭 다물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모모의 듣는 힘은 대단한 것이었고, "나직하지만 웅장한 음악"(p.32), 즉 우주가 운행하는 소리이며 동시에 시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 모모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둘 있었는데, 매우 상반되는 캐릭터였다. 한 명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p.49)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거짓말이 대부분인 달변가였다. 이 두 사람에겐 공통되는 것이 있는데, 이야기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소설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한 사람은 철학자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둘 다 갖출 수 없다면, 이렇게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섭고 두려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둘 다 전혀 가지지 못하거나 어설프게 둘 다 흉내만 내고 있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제 이 소설의 또 다른 축, 드러나 있는 부분을 바라보자. 시간 도둑에 관한 것이다. 시간 도둑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 시간을 저축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자.
자신의 일을 기쁜 마음을 갖고 또는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은 방해가 되었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p.96) |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시인하든 부인하든.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같은 사고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이 사고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고를 강요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사실, 경제적이라는 단어의 뜻이 위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경제적이라는 단어의 노예가 되었다. 무엇을 하든지 경제적으로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무엇에 도둑맞았는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바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정이나 현재에 충실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 도둑들에게 시간을 저축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언젠가 보상받을 시간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처럼 그저 도둑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서 시간 도둑의 정체는, 無였다.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시간들을 無化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너무 바쁘게 살면서.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고, 바깥 세상을 쳐다볼 여유도 없고,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시간을 벌어다 無에 저축하고 있는 것은 제발 아니었으면 한다. - 2002.10.28. © http://my.dreamwiz.com/o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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