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는 백제인 사택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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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는 백제인 사택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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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전설을 확대 재생산!

요즘 무왕과 선화공주 간의 로맨스가 시중의 화제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과정에서 사찰 및 석탑 창건 내력을 담은 금판(金版)에서 기존의 서동요 전설을 뒤엎을 귀장한 자료가 나왔다. 명문 해석에 의하면, 미륵사는 “백제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무왕의 왕후가 기해년(己亥年-639년)에 지은 것”이라 기록되어있어 전설의 비밀을 한 꺼풀 벗기는 기폭제가 됐다.

이에 필자는 고대사 전공자로서 선화공주가 실제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이 아니라, 사실은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셋째 딸 사택선화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싶다. 그러나 근거가 될 만한 자료 입수가 완전치 못한 상태에서 논문까지 쓰기에는 시간이 걸리기에 일단은 선화가 서동과 같은 백제 인이라는 주장부터 풀어간다.

우선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서동요부터 보자!

-선화공주님은 / 남몰래 얼려두고 / 맛둥서방님을 / 밤에 몰래 품으러 가네. (善化公主主隱 / 他密只嫁良置古 / 薯童房之 / 夜矣卯乙抱遺去如) -

역사 속 서동의 출생은 어떠한가?

제 30대 무왕의 이름은 부여장(璋)이다. 어머니는 사비성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다가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았다한다 그러나 가난하여 마를 캐어 팔아 생업을 삼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 이름이 서동이었다고 전한다.

이 전설 내용은 서동이 정실 왕비 소생이 아닌 서자 출신이요, 그것도 왕과 정식으로 결혼하여 왕궁에 사는 후비도 아니고 길가다가 왕의 눈에 들어 정을 통한 어머니를 둔 것 같다.

여기서 전설 속 용(龍)은 왕을 의미하고 서동의 모친이 왕궁에 살지 않고 서울 남쪽에 살았다함은 그곳이 남궁지 주변을 뜻하는지 아니면 그곳에서 살다 아이를 왕 몰래 낳고 익산(금마)으로 옮겼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겠으나 자란 곳은 분명 사비성은 아닌 것 같다.

왕과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왕자를 낳음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려왕조를 창업한 왕건은 조기에 안정된 정권을 확보하기 위해 잠자리를 함께할 여인의 인물은 뒤로하고 나주, 청주 등 전국 각지의 호족 딸들과 인연을 만들어 많은 자손을 두었다. 이는 그들 지방 호족들과 장인 사위 관계를 맺어 힘 있는 그들로부터 적극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왕건이 생각할 때 일부 호족의 딸들은 간혹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상대 여인으로부터 자식을 원치 않았음인지, 즐기되 비상한 수단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호족의 딸들 중 몇 명은 왕의 씨앗을 받아 넣어 나중에 왕자나 공주를 낳고 개성 왕궁으로 들어가 살게 됐다는 야사도 많다.

그러나 서동의 모친은 워낙 비천한 가문이었는지 왕의 행차 시 마음에 들어 정을 통한 후 애를 낳고도 사비성(부여) 왕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 같다.

이에 서동은 모친과 마를 팔며 어렵게 살면서도 자신이 왕족임을 알고 피나는 노력과 빠른 머리회전으로 결국 배 다른 형제들을 물리치고 백제 대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가 사용한 전략은 바로 상기 <삼국유사>가 전하는 향가가 아닐까?

즉, 백제의 귀족으로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사택적덕의 셋째 딸 선화(善花)가 착하고 아름다워 전 지역에 소문이 자자한 것을 듣고 마침내 사택씨 가문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희망의 끈을 갖게 되면서 궁리와 궁리 끝에 사비성으로 출발한다.

그리고는 어린아이들에게 이 동요를 부르게 한다.

-사택선화님은 / 남몰래 얼려두고 / 맛둥서방님을 / 밤에 몰래 품으러 가네. (沙宅善化主隱 / 他密只嫁良置古 / 薯童房之 / 夜矣卯乙抱遺去如) -

이처럼 백제 내에서 이루어진 서동의 사택선화와의 로맨스가 통일신라 후 또는 고려시대에 들어 확대 윤색되어 신라 진평왕 셋째 딸로 둔갑된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아무래도 백제 내의 이야기로 묶어 두기보다는 삼국통일이나 새로운 고려왕조를 열어감에 있어 전 백성의 화합을 위해 기존의 백제 서동요를 이용했을 것 같다. 궁리 끝에 역사책을 보니, 무왕 시대에 과연 인접 신라에서는 신기하게도 여왕이 두 명이나 연달아 나왔기에 선화를 진평왕 셋째 딸이라 꾸미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얼마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역사 자료인가. 하여 백제 귀족의 딸 사택선화가 신라 진평왕 셋째 딸로 둔갑되는 구성이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을까? 마치 의자왕이 3천 궁녀를 거느리고 살았다고 이야기 되듯.

실제 의자왕의 3천궁녀 이야기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민제인(閔齊仁:1493~1549)에 의해서 널리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가 지은『입암집』총 6권 중에 ‘백마강부’라는 시가 있다. 그 시에 처음으로 ‘3천궁녀’란 단어를 사용했다. 시를 쓰면서 처음으로 ‘궁녀 수 3천’이라고 근거 없이 과장하여 쓴 한 문구가 이후 낙화암과 3천궁녀로 자가발전 하여 수많은 문인들이 즐겨 시작(詩作)의 대상으로 삼았고, 애닮은 하나의 또 다른 전설이 되어 일제시대 광복을 염원하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와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 되면서 부지불식간에 화석이 되었다.

이처럼 비록 왕족이지만 거들 떠 보지도 않는 평민이거나 그 이하일 수 있는 모친으로부터 출생한 서동의 한계와 이를 뛰어넘고자 부단히 노력한 끝에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 선화를 만나 그 뜻을 이루게 됐다는 전설이 원형이지 않을까 한다.

실제 당시 백제와 신라는 사이가 좋지 않아 전쟁이 잦았으며, 지금도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억양이 틀리는데, 어찌 익산에서 자란 서동이 경주에 가 어린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전파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랬다면 당장 백제 간첩으로 몰려 잡혔거나 서동요처럼 선화공주와 결혼에 극적으로 성공했다하더라도 <삼국사기> 등의 정사 기록에 남을 큰 외교적 사건이다. 그런데 그러한 흔적이 전혀 없으니, 더욱 신라 진평왕 셋째 딸 선화공주라는 것은 후일에 보태지고 덧칠된 것이라 생각되는 연유다.

선화라는 이름과 그 부친 사택적덕이라는 이름에서도 일관성이 엿 보인다. 즉, 적덕(積德)이란 이름은 매우 불교적인 냄새가 나는 용어로 ‘덕을 쌓아라!’라는 그 부친의 희망사항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택씨는 대대로 백제 귀족이자 이름에서도 나타나듯 돈독한 불교신도로써 사서삼경에도 밝은 엘리트 가문으로 보이는바, 선화(善花)라는 성명도 ‘착하고 아름다운 꽃처럼 성장하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할아버지나 부친이 직접 지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선화공주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설화로 고구려 평원왕의 딸이라는 평강공주 얘기가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평강공주는 부왕의 강력한 반대를 뿌리치고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 그를 훌륭한 장수로 키워 큰일을 하게 만들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다.

평강공주 설화가 일방적인 공주의 헌신으로 바보 온달이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면, 거꾸로 서동은 왕자이면서도 행세를 할 수 없었던 서자출신으로 귀족인 사택 가문의 예쁜 선화를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대왕의 자리에 오른다는 해피엔딩 구조다.

어찌되었든 사택가문과 인연을 맺은 후 실권을 쥔 귀족 사택적덕도 서자이지만 사위되는 서동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은밀히 서동을 도운 것으로 판단된다. 비상한 작전으로 사택선화와 정략적 결혼을 성공시킨 서동은 이후 익산을 거점으로 하면서, 권세가인 장인의 막대한 백업에 힘입어 마침내 백제 대왕 자리에 오른 것이리라!

다만 이러한 백제 내 서자 출신 왕자 서동과 귀족 딸 선화의 결혼이 후대인들의 필요에 의해 왜곡, 윤색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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