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스크롤 이동 상태바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주에서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 대능원과 검총

 
   
  ^^^▲ 대능원 입구
ⓒ 이종찬^^^
 
 

"대능원은 신라 왕들의 공동묘지니더. 그중에 검총은 신라왕들의 조상묘라는 말이 들리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이 능들의 주인이 누군지 모른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렇니더. 철검이 나왔다고 해서 검총, 천마도가 나왔다고 해서 천마총, 그라고 황남대총은 황남동 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하니더."
"…그랬군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오늘은 날씨가 몹시 흐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비 내리는 신라왕들의 공동묘지? 어째, 조금 으시시하지 않니? 하지만 이곳 대능원은 이상하게 무섭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아. 왜냐구? 여기 있는 여러 기의 능들이 너무나 커서 아빠가 어릴 때 놀던 야산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

아항, 그래서 대능원이라고 이름 붙였어? 큰 능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그게 아냐. 대능원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숨어 있어. 들어 볼래? 이곳 대능원에는 미추왕릉과 검총, 천마총 등을 비롯한 23기의 능들이 모여 있어. 그중 무덤의 주인이 밝혀진 미추왕릉 때문에 대능원이란 이름이 처음 생겼대.

신라 제14대 유례왕 때의 일이었어. 그때 적국인 이서국이 급작스레 신라로 쳐들어와서 신라가 몹시 어려움에 빠졌대.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귀에 대나무 잎을 꽃은 병사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적을 무찌르고 바람처럼 사라졌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신라의 병사들이 대나무 잎이 어디에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니, 미추왕릉 앞에 높이 쌓여 있었대.

 

 
   
  ^^^▲ 대능원 배치도
ⓒ 이종찬^^^
 
 

그때부터 미추왕릉을 대나무 죽(竹)자를 붙여 '죽릉(竹陵)' 또는 '죽장릉(竹長陵)', 죽현릉(竹現陵)이라고 불렀대. 그리고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병사를 죽엽군(竹葉軍)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대. 신라에서는 그때부터 국난이 있을 때마다 미추왕릉 앞에 와서 제사를 지냈고. 이야기가 약간 황당하기는 하지만 재미도 있지?

이곳 대능원은 고분공원을 만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땅 위에는 흔적도 없는 고분들이 땅 속에서 수백 기나 발견되기도 했대. 그때부터 학자들은 이렇게 추측하고 있대. 지금 눈에 보이는 대형 고분들 사이 사이의 땅 속에는 봉분이 파괴된 고분이나, 처음부터 봉분이 없었거나 작았던 소형 고분들이 수없이 있을 거라고.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곳 대능원의 고분들은 다른 지역의 고분들과는 달리 모두 평지에 있다는 거야. 하지만 야산만한 고분들이 이곳에만 있는 건 아냐. 남산의 북쪽에서부터 국립경주박물관 자리와 반월성을 거쳐 황오동, 황남동, 노동동, 노서동으로 이어지는 평지에도 이런 고분들이 수없이 모여 있거나 흩어져 있어.

그렇지만 대능원처럼 이렇게 규모가 큰 곳은 없어. 지료에 보면 대능원은 넓이만 해도 약12만5400평이라는 거야. 게다가 그것도 경주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는 거야. 바로 반월성 근처에 말이야. 그러니까 이곳의 고분들이 왕이나 왕비, 왕족 일가들의 무덤이라고 추측할 수가 있는 거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멀리서도 이곳이 아주 잘 보였다면서요?"
"그랬니더. 하지만 1973년에 대능원을 만들면서 이곳에 담장을 둘러치고 무덤 안에도 길을 닦는 바람에 옛모습이 다 망가지고 말았다 아인교."
"이곳에 있는 능 중에서 어떤 능이 가장 큰 능입니까?"
"아, 그야 황남대총 아인교. 그라고 첨에는 이 능들 말고도 무덤 자리들이 수없이 많았니더. 하지만 봉분이 있는 무덤들만 남겨놓고 모두 지워버렸다고 하니더."

 

 
   
  ^^^▲ 대능원 입구 숲길
ⓒ 이종찬^^^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경주시 황남동 일대에 모여 있는 대능원은 사적 제40호야. 그리고 이곳에는 고분의 직경이 80m, 높이 20m에 이르는 왕릉급의 대형 고분에서부터 불과 수미터에 이르는 소형분들이 서로 우쭐거리며 키재기를 하고 있어. 그리고 이곳에서 미추왕릉과 검총, 황남대총, 천마총 등도 둥그런 배를 쓰다듬고 있고.

대능원에 있는 고분들은 대부분 토총, 즉 흙으로 덮은 고분들이야. 이 고분들의 내부 구조는 대부분 고신라 특유의 무덤인 적석목곽분이야. 적석목곽분이 어떤 무덤이라고 했지? 무덤 안에 돌을 쌓고 나무로 만든 무덤이라고 했지? 낙랑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 많이 만들었다는.

근데 그중 151호 고분은 횡구식 석곽분이었대. 횡구식 석곽분은 또 뭐냐고? 횡구식 석곽분(橫口式 石槨墳)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하에 가로로 무덤광을 파고 돌로 덧널을 덮은 그런 무덤이란 뜻이야. 학자들은 이런 무덤이 가야시대 때 많이 보이는 양식이래.

151호 고분은 또 뭐냐고? 고분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르니까 학자들이 편의상 1호분, 2호분 하면서 그렇게 붙인 이름이야. 그리고 이 대능원의 고분에서는 유물도 참 많이 나왔대.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는 금관이 출토되었고, 금제 귀걸이와 환두대도(換頭大刀), 마구류, 토기류가 주로 나왔대.

또 상감이 되어 있는 유리구슬과 여러 가지 형태의 옥이 출토되기도 했대. 상감은 또 뭐냐고? 상감(象嵌)은 금속이나 도자기 등의 겉면에다 여러 가지 무늬를 파고, 그 속에 같은 모양의 다른 재료를 박아 놓는 기술을 말하는 거야. 또 그렇게 해서 만든 작품도 그렇고. 상감청자란 말 들어봤지?

 

 
   
  ^^^▲ 대능원 안에 있는 야산 크기의 무덤들
ⓒ 이종찬^^^
 
 

"검총은 어떤 능을 말하는 건가요?"
"천마총으로 가는 길 옆에 있는 바로 저기 검총 아인교."
"어디?"
"저기 세 갈래 길이 보이능교? 봉분 자락에 대나무가 많이 있는 저기."
"근데 왜 아무런 안내 표지도 세우지 않았을까요?"
"그걸 내가 우째 아능교?"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검총(100호분)은 신라 고분들 중에서 최초로 학술적 조사가 실시된 곳이란다. 그것도 왜놈들에 의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16년 일본 고고학자 '세키노'(關野貞)란 사람이 검총을 처음 발굴을 했대. 발굴을 한 것인지 도굴을 한 것인지는 잘은 모르지만. 그때 이곳에서 철검(鐵劍)이 출토되었대.

그래서 검총(劍塚)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대. 검총은 둥그런 원형 토분으로 직경이 무려 44.5m이며 높이는 9.7m에 이르는 대형고분이야. 이 고분은 무덤 중앙에 땅을 약 67cm 정도 파내고, 냇돌(자갈)을 1.2m 두께로 깔았대. 그러니까 무덤 속을 무덤 주변의 땅보다 더 높게 만들었다는 거지.

그리고 이 매장의 중심부는 냇돌로 쌓은 돌무지로 덮여 있었대. 그 돌무지의 높이는 약 3.7m였고, 남북으로 직경이 약 14.5m였대. 또 중심부 표면에는 약 15-18cm 두께의 진흙으로 덮여 있었대. 그리고 그 위에 축조된 봉토는 흙과 자갈을 섞어 쌓았고, 봉토 중의 자갈층은 모두 고분 중심부에서 경사지게 만들었대. 아마도 빗물이 무덤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아.

 

 
   
  ^^^▲ 고분 발굴지 비석
ⓒ 이종찬^^^
 
 

"검총의 매장 중심부에서는 철투겁창 2점과 숫돌 1점, 철검 2점, 철칼 1점, 그리고 굽이 달린 긴 목항아리 같은 기 나왔다고 하니더."
"근데 그것보다 봉토에서 토기가 몇 점 나왔는데, 그 토기가 이 고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서요? 그러니까 그 토기는 후세에 매장된 토기류였다고 하던데."
"하긴 정확한 사실을 우째 알겠능교? 우리 학자들이 발굴했던 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때도 검총을 완전히 발굴을 한 것은 아니래. 하지만 이상한 것은 검총의 거대한 겉모습에 비해 발굴된 유물이 너무나 적다는 거야. 또 출토유물이 그 시대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섞여 있대. 특히 철검은 다른 고신라의 무덤에서는 출토된 예가 전혀 없다는 거야.

학자들은 이 철검이 고신라 이전에 주로 사용되었던 거래. 근데도 고분의 모습은 황남대총이나 천마총과 같은 형식이라는 거지. 이상하지? 그래서 학자들은 검총이 신라왕들의 조상묘였다고 추측한대. 다시 말하면 새롭게 왕권을 잡은 마립간시대 신라왕들이 출신성분을 과시하기 위해 조상묘를 크게 만들었다는 거야.

게다가 <삼국사기> 신라본기 눌지마립간 19년조 편을 보면 서기 435년에 "역대(歷代)의 능원(陵園)을 고쳐 쌓았다(歷代修葺園陵)"란 기록까지 나와 있대. 이제 이해가 좀 가니? 그러니까 검총은 마립간시대 신라왕이 예전에 규모가 적었던 자신의 조상묘를 신라왕들의 능처럼 크게 만들었다는 거지.

 

 
   
  ^^^▲ 소나무가 자라난 언덕, 고분인 듯 하다.
ⓒ 이종찬^^^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한자어가 섞인 용어들이 많이 나오니까 조금 어렵니? 하지만 그 한자어들도 한자 한자 뜯어보면 그리 어렵지가 않단다. 마구 얽힌 것처럼 보이는 실타레도 매듭을 찾아 한 가닥 두 가닥 풀다 보면 금세 풀리듯이 말이야. 아직은 너희들이 어려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사람살이도 다 그런 거란다.

근데 갑자기 날씨가 제법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어. 벌건 대낮인데도 이런 걸 보니 곧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야. 서둘러야겠어. 신선생이 짜증을 내든 말든. 왜냐구? 황남대총과 천마총을 코 앞에 두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잖아.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나가면 들어올 때 입장료를 또 내야만 하거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