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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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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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적대국에서 이제는 최대의 투자대상국으로 달라진 중국의 위상

^^^▲ 1953년 7월 27일의 판문점50년 전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의 정전협정 조인 모습
ⓒ 김대오^^^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어떤 것일까? 중국은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을 ‘미국에 대한 항전이며 북한을 도와준 전쟁(抗美援朝)’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전협정 50주년기념 TV프로그램에서 중국의 한 전쟁전문가는 한국전쟁은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중국의 역량을 잘 보여준 일전이었다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 압록강을 넘고 있는 중국지원군북한 김일성의 요청을 받고 압록강은 넘어 출정하는 중국지원군의 모습
ⓒ 김대오^^^

한국전쟁 발발 직전 전쟁을 준비하는 김일성에게 마오쩌동(毛澤東)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스탈린은 군사적인 지원을 포함 전격 지지를 표명하였다. 결국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감행하였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바뀌고 전황이 다급해진 김일성은 중국의 군사지원을 강력히 요구하게 되고 중국은 결국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다. 북한의 전황이 아무리 다급하다고 해도 한국전이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맹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중국이 수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 참전을 결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랜 국공내전을 통해 1949년 10월 1일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지 겨우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건국초기 체제안정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의 한국전 참전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중국으로 하여금 대만점령을 뒤로 하고 한반도까지 먼 원정을 결정하게 만들었을까?

중국이 왜 한국전에 참전했는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할 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고사가 자주 사용된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은 패전을 거듭하다 결국 전선이 압록강 유역 한만접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국의 동북지역이 전장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북한이 무너질 경우 국경에 대한 불안감 등이 결국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전에 참전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50년 10월 25일, 펑더화이(彭德懷)를 사령관으로 하는 중국지원군 10만여 명이 한국전의 첫번째 전투에 투입된 후 한국전이 종료될 때까지 총 300여만 명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이는 미국 전쟁 수뇌부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의 병력 동원이었으며 한국전의 전세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먼 원정길에 사전 전쟁 준비가 미흡했던 중국지원군의 피해 규모 또한 매우 컸다. 중국측의 자료에 따르면 전사자가 11만 5천명, 부상자가 22만 1천여 명에 달한다.

이 같은 대규모의 중국측 피해는 빠른 정전협정 체결 요구로 이어졌고 이는 김일성의 주장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계속적인 전쟁수행을 주장하면서 보다 유리한 정전협정을 이끌어내길 원했다. 결국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한 후인 1953년 7월 27일, 2년 넘게 끌어온 정전협정이 비로소 체결되고 3년 1개월 3일 동안의 한국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미국, 소련, 중국 등 참전국 누구에게도 완전한 승리를 가져다 주지 못한 채 그렇게 끝이 났다. 중국은 비록 북한체제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전후 서방국가들의 경제봉쇄를 감수해야 했다.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자력갱생의 사회주의경제체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중국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전후 20여년간 미국과의 철저한 대립과 단절은 곧 대만과의 통일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 베이징청년보남북한의 정전협정 50주년 기념식을 동시에 보도하는 베이징청년보
ⓒ 김대오^^^

정전협정 체결 후 50년이 흐르는 동안 세계는 급변하였고 정치 이데올로기보다는 경제적 실리가 외교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지 오래다. 중국의 주요 언론들은 남북한의 정전협정 체결 50주년 기념식을 나란히 보도하면서 향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북한이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것과 정전협정을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을 지지하고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이 그 협정에 참가하길 바라는 입장이다.

국제관계에 있어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은 진부한 경구일 뿐이겠지만 중국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달라지는 외교적 위상으로 다가오는 국가중의 하나이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의 적국이며 분단의 한 축을 담당한 중국이 이제는 한국의 최대 투자국이 되었으며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회담의 중재국으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미국 부시가 재선 후 북한에 대한 공격을 고려할 때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를 나라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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