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샘, 딥스, 기러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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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 샘, 딥스, 기러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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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사랑하는 부모와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1.

아침 일찍 해뜰 무렵에 산에 오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오늘도 새로운 날이 밝았다는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노래를 듣는 것 같습니다.

새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먹이를 부지런히 나르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것을 본능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었기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유지될 수 있었겠지요.

사랑이 있는 한, 지구의 종말이 오기까지, 생명은 유구하게 이어지고 번성할 것입니다.

요즈음, 전에 없던,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엄마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외국으로 떠났기에, 아빠 혼자 한국에 남아 생활비를 보내주며 생활하는 경우,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기꺼이 그런 고생을 감수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 교육' 때문입니다. 주변에서도 그런 경우를 보았습니다.

2.

^^^▲ 영화 'I am Sam'의 포스터^^^
'I am Sam'이라는 영화에서, 샘은 지능이 7세에 머물러 있는 아빠로 나옵니다. 그런데, 샘의 딸 루시가 7세가 되면서 아빠의 지능을 추월해 버리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학교 수업을 일부러 게을리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복지기관에서 샘의 가정을 방문합니다.

법원은 샘이 루시를 양육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아동복지과가 정하는 양부모의 보호에 맡기라고 명령합니다. 정신연령이 7세 밖에 안 되는 샘이 무슨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 딸을 먹여 살리고 학교교육을 시키겠냐는 의문도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지요.

'기러기 아빠'와 경우는 다르지만, 아빠와 자식을 떼어놓겠다는 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십니까? 그것도, 자식을 사랑하는 아빠를 말입니다. 법정문화가 요상하게 발달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는, 그 정도를 가지고도, 남의 가정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있는 모양이지요?

아이들 교육을 위한 책으로 많은 교사와 부모들에게 읽혀온 '딥스'를 떠올려 봅니다.

딥스의 아버지는 과학자요 어머니는 의사였으니 경제적 환경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딥스는 문제아였지요. 딥스의 어머니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이를 자신의 직업적 성취의 방해물로 생각했습니다. 딥스가 태어났을 때, 아빠 역시 딥스를 귀찮게 여겼지요. 그래서, 딥스는 세상을 향한 문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액슬린 선생님의 놀이치료와 이해해주는 대화를 통해, 딥스는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되고 내재되어 있던 천재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액슬린 선생님은, '사랑'이, 어린 아이의 정신을 건전하게 하고 잠재되어있던 창조성을 꽃 피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딥스의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경제적 능력이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희박했습니다. 이런 경우, 법원은 딥스와 딥스의 부모를 떼어놓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릴까요? 부모의 경제적 역량이 자녀 양육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라고 판단하는 법원이라면, 샘에게 내린 명령을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자녀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녀에 대한 '사랑'일진대, 법원은, 차라리, 딥스의 부모처럼 사랑이 없는 경우, 부모와 자녀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샘을 루시와 떼어놓으려던 법정이 몰랐던 것은, 바로, '딥스'의 교훈이 아닐까요?

어쩌면, 샘이 루시로 하여금 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학교 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 뒷받침을 못해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샘이 그처럼 딸을 간절하게 사랑한다면, 학교 교육을 통하여 배울 수 없는 것을, 알게 모르게 느끼게 해줄 것이며 깨우칠 것이며 배우게 해줄 것입니다.

반면, 루시를 샘과 떼어놓는다면, 학교 교육은 넉넉하게 받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언정,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아빠와의 관계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차단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의도는 선했을지 모르나, 루시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과 고귀한 배움을 빼앗는 짓입니다.

제가 법정의 배심원이라면, 저는 샘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배운 것은, 평생의 삶을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창조적 추진력으로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3.

사랑하는 자식이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초·중·고생의 연령인 아이들을 외국에 유학 보낸다?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될 정도의 아버지라면 자녀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얘기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버리면,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부대끼며 배울 수 있는 것은 못 배우는 것 아닙니까? 과연, 외국의 좋은 환경에서 배우는 지식과 경험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깨달으며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외국의 문화를 접하게 해주고 싶다면, 방학 때 어학 캠프를 보내주면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아버지는 홀로 한국에서 고독하게 고생하는데, 외국생활이 편하고 즐거워서 굳이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고집하는 아이가 있다면, 교육적으로 이미 재고해 봐야할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노고에 대해 그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외국의 문물을 실컷 주입시켜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내부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이며, 심각한 고민과 검토를 한 후 결정한 일이었겠지만, 대학 이전의 청소년 자녀를 외국에 유학 보내는 것, 게다가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은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 어떤 아이의 아버지가 성격장애가 있어서, 아내와 자식이 가까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아내와 자식을 패는 경우라면,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을뿐더러 찬성하겠습니다(그런데, 이런 아버지라면 애초에 사랑이 결여되었기에, 아내와 아이들을 멀리 보내놓고 홀로 고생하려 하지 않겠지요).

4.

내일도 산에 오르면, 그의 어버이가 그를 사랑으로 키워주었기에, 날개짓 할 수 있는 새들이 삶의 기쁨을 찬양하겠지요?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청소년기의 자녀 교육에 그보다 더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멀리 보내기보다 가깝게 두고 더 격려하고 질책하며 축복하며 사랑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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