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에서 수도사단은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고 동부전선의 국군의 진격부대가 원산을 점령하는 동안 중부의 국군과 경의선을 따라 올라간 유엔군은 평양을 향하여 북으로 치달렸다.
적은 38선을 중심으로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하고 방어작전을 시도하였으나 유엔군의 연일 맹공으로 최초의 기도가 좌절되자 부대를 수습할 사이도 없이 패주를 거듭했다.
그러나 평양쪽에 가까이 접근하는 동안 패주하여 달아나던 병력과 신의주에서 새로이 편성된 정규병력이 평양방어를 위하여 속속 남하, 각 요충지역에서 조우전을 전개하여 지연작전을 시도하였다.
평양의 함락은 그들로 볼 때 전공산군과 북한동포의 전의에 미치는 영향이 커, 그들은 남아있는 전 병력을 평양사수에 투입한 것이었다. 7일 미제1기갑사단이 개성을 탈환하고 38선을 돌파하여 13일에는 금천을 완전히 탈환하였다.
또한 북진하던 국군 제1사단은 고랑포를 거쳐 임진강을 도하하였다. 도하 즉시 시변리를 향하여 진격하고 국군 8사단의 16연대는 강원도 복계로부터 행동을 개시하여 이천으로 진격, 13일 이천읍을 완전 포위하여 섬멸전을 전개하고 이날 밤 완전히 확보하였다.
한편 국군의 진격에 일익을 담당하던 영 제27여단은 이날 사리원에 돌입하고 이 일대의 잔적을 소탕하였다. 또 남천에 진출했던 미제 1기갑사단이 황주에 돌입하여 평양공략의 제일보를 내디뎠다.
10월 18일 아침 일찍 평양공략이 개시되었다. 공격을 개시한 12연대는 10시에 대동리에 도착했고 이날 적과 만나 의외로 완강히 반격에 처하여 8시강에 걸친 격전 끝에 적을 제압하고 이날 밤 대동강 교류도하에 성공하였다.
10월 19일 새벽 5시 평양 드디어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12연대는 전차부대를 선두로 시내로 통하는 가로를 따라 전진하였고 11연대는 15연대의 선발대에 이어 미림리의 비행장을 공격하였다. 평양주변의 적의 제2방어선은 국군과 미군으로 완전히 포위되었다.
사방으로부터 평양의 최종방어선으로 포위망을 압축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공군의 폭격과 포병대의 지원아래 전차대를 선두로 돌격전을 감행하였다.
오후 2시 약 2시간의 돌격전 끝에 미제1기갑사단과 12연대는 선교리의 적을 격파하고 시가전에 돌입하였으며 11연대와 15연대는 비행장 공격에 성공하여 일대를 점령하였다.
오후 4시에 이르러서는 강남안을 방위하던 적은 퇴각해버리고 아군은 도하작전을 개시하였다. 15연대는 육탄전을 감행하면서 시의 북부로부터 시가전에 돌입하였고 3시반에는 김일성대학을 점령하였다.
드디어 오후 4시 적의 내각본부를 점령하였고 5시 반에는 완강히 저항하던 공산군을 평양시내에서 완전히 축출해 버렸다.
이로써 국군제 1 사단을 선두로하는 유엔군 부대는 평양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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