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다부동 작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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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다부동 작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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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이남의 공산군 10월 초에 완전 섬멸

^^^▲ 다부동 전적기념관^^^
인천 상륙전에 이어 수도 서울의 탈환전이 전개되는 동안 인천에 상륙한 미 7사단의 일부 병력은 수원방면으로 남진하여 서울로 북상 퇴진하는 적을 격멸하는데 나섰다.

9월 20일에는 안양에 돌입하고 다음 날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남쪽의 간선 도로를 완전히 차단했고 22일에는 적의 막강한 저항을 받으면서도 수원에 돌입하였다.

이어 23일에는 오산에 진입하고 남으로부터 북상하는 아군과의 제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남으로부터 북상하는 미제 1사단은 25일 조치원에 돌입하고 패주하는 적을 섬멸하면서 천안을 탈환하였으며, 천안근교에서 남진하는 미 7사단과 감격적인 악수를 교환하였다.

낙동강 교두보에서의 반격작전도 때를 같이하여 전개되었다. 9월 15일 수도사단 18연대는 안강 남쪽의 적에 공격을 가하고 안강 남쪽의 고지를 점령하였다. 제 1기갑연대는 경주 탈환을 목표로 인민군 12사단과 대치하였고, 국군 18연대는 안강 서쪽의 고지를 점령하였다.

안강에는 공산군 및 12사단의 일부 패잔병 등 7천여명의 병력이 집결되어 결사적인 저항을 시도하며 안강후방 고지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제1기갑연대는 무능산 고지 일대에서 공격하는 적을 반격, 6시간의 교전 끝에 안강의 배후를 점령하여 적을 포위망에 집어넣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낙동강 북쪽을 방어하고 있던 미군은 경부본선을 따라 북상하고 국군 제1군단 산하의 제3사단, 수도사단이 청하-영덕-평해의 선을 따라 공격하고 인지동-천지동-춘향을 거치면서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방면의 적은 인민군 제2군단산하의 5사단과 12사단의 패잔 병력 약 7천여명이 형산강대안의 제방일대에 참호를 구축하고 국군의 도하 반격작전을 저지하고자 기도하고 있었다.

공격을 개시한 국군 3사단은 이번의 총공격이 승리와 더불어 국토 통일이라는 오랜 염원이 성취되는 기회라는 것에 사기충천하여 적의 치열한 포화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계속하여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섬멸작전을 감행했다.

적은 3사단의 맹공에 의하여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동해안의 해안선 또는 산악을 타고 북상 도주하였으며 9월 26일, 국군 3사단은 울진까지 진격하였다. 한편 사단 일부 병력은 장사를 거쳐 영덕으로 진입하고 계속하여 영해의 잔적을 소탕하면서 북상을 계속하였다.

울진에서 저항하던 적의 주력인 공산군 3개대대는 국군을 견제하다가 삼척으로 도주하고 일부는 전격적인 국군의 추격에 쫓겨 태백산으로 잠입하였다. 9월 30일에는 삼척을 돌파하고 강릉을 점령한 후 주문진으로 향하여 묵호에 돌입했고 그때까지 남아 저항을 계속하던 약 4천명의 적이 여기서 최후의 저항을 꾀하였으나 결국 38선 북쪽으로 쫓겨났다.

한편 국군 일부는 LST함정으로 주문진에 상륙하여 이 방면의 38선 이남의 진지를 확보하였다. 동부의 국군이 이같이 적을 패퇴시키고 있는 동안 중동부의 국군 6사단은 신령, 영천에 진지를 구축한 인민군 1사단, 8사단, 10사단, 13사단과 제17기갑여단의 패잔병들이 혼성된 부대를 공격하였다. 공격에 대한 첫 저항이 조림산에 진지를 구축한 적으로부터 왔다.

국군은 이를 3면에서 포위 공격하여 4일만에 완전히 점령, 북진을 계속하였으며 쫓긴 적은 전면적인 철수를 시작하여 일부는 안동, 영주, 단양방면으로 다른 병력은 문경방면으로 패주하였다. 국군 8사단도 이에 곁들여 의성, 안동, 영주방면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거듭 북진을 계속하고 24일에는 의성을 수중에 넣고 끝까지 버티던 2개연대의 적을 섬멸하여 그 부근은 적의 시체와 전리품으로 산을 이루었다.

국군의 총반격이 동부와 중동부에서 성공을 거두어 38선까지 밀어 올라가는 동안 유엔군과 한국 해병대는 경부선과 호남지구의 공산군을 섬멸하고 있었다. 미 제1군단 산하의 미 제1기갑사단, 24사단, 국군1사단, 영국 27여단의 병력은 좌측에 미1기갑사를 배치했다.

우측은 육군1사단을 선두로 양날개를 펴서 경부본선을 따라 연변의 각 중요도시와 다부동-신령-선암산에서 인동-신기동-소복동을 쓸고 낙동-상주-보은-미원-청주선으로 하여 조치원-진천-천안선을 경유하고 북상을 계속하였다. 9월 27일에는 안성, 천안, 청주를 완전히 점령하였고, 인천상륙에 따라 남진한 미제7사단과 오산 북방에서 극적인 상봉을 하였다.

낙동강 남부지구에서 호남일대를 거쳐 북상한 미제9군단 예하의 미제25사단은 진주-하동-남원-광주로 하여 호남지구를 북상하였고 미제2사단은 초계-진안-전주를 거쳐 북상하였다. 한편 한국 해병대 일부는 9월 29일 여수에 상륙하고 이어 10월 1일에는 목포에 상륙하여 잔적을 소탕하였다.

이렇게 하여 38선 이남의 공산군은 10월 초에는 완전히 섬멸당하고 말았으며 아군의 반격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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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2008-09-20 11:05:36
경북 칠곡군에 개관한 다부동전적기년관#이고시오

흑흑 2008-09-20 23: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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