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팔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소비를 시킬 수 있을까.’하는 욕망들이 마케팅에 관한 연구들을 낳았다. 오늘날 책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라. 마케팅, 브랜딩, 포지셔닝 등 이 모든 것이 세일즈를 보다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상품을 떠 앉기고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그 속에 쌓여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비가 나를 규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라. 수많은 상징조작들이 있다. 소비의 속삭임은 사랑도 소비의 이미지로 포장하고, 사람의 존엄과 고상함도, 삶의 만족과 의미도, 남자의 멋있음과 가치도 소비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마케팅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손님으로 초대한 주인이고, 광고가 그 진행을 맡은 다중매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케팅도 커뮤니케이션이고, 광고도 커뮤니케이션이다. 상표도 커뮤니케이션이고, 상거래도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도 커뮤니케이션이다.
상품과 상품의 소비가 세상을 장악한 사이에서 우리는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 마케팅은 가만히 놓아두는 영역이 없다. 감성은 마케팅에 장악 당했다. 명품에 대한 이미지 창출, 거꾸로 저가 대중품에 대한 역 이미지 창출은 또 어떤가. 사람의 삶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품에 지배당한다. 기존의 사회에 대한 반항의 이미지 ‘컬트’또한 컬트 산업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공동체적인 삶을 원하는가. 공동체를 제공하는 상품이 있다. 잊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은가. 옛것을 되살리는 상품이 등장한다. 그렇게 사람은 상품을 원하고, 상품은 사람들의 원함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상품의 특징에 동화시켜나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품이 형성하는 다중문화 사이를 사람들이 이동하며 소비한다는 것이다.
아침은 패스트푸드로, 점심은 고전적으로, 저녁은 새로운 이미지가 끌어가는 퓨전식으로. 우리는 그렇게 자유롭게 다중적 소비 사이를 자유롭게 옮겨 다닌다. 이는 사람들에게 전례없는 자유를 주는 동시에 한곳에 뿌리를 박고 살지 못하게 된다. 소비사회의 삶은 새로운 형태의 '유목민' 혹은 '통과 여객'이다. 새로운 유행이 직전의 유행을 밀어낸다.
소비사회에서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을 찾아서 옮겨 다니는 것. 그 자체가 새로운 사회의 정체성인가? 그래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 한다'는 명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소비와 함께 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소비가 삶을 규정한다. 또한 소비는 철저히 사람의 감성의 변화를 탐지하다. 사람과 소비는 물고 물리면서 서로를 규정하면서 서로를 왜곡해 나간다. 탈출구는 어디인가? 탈출구는 없다. 우리의 사회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 한 사람은 소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인간과 소비는 상호규정 속에서 살아간다. 방법은 사람들 스스로가 소비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닫는 수밖에 없다. 소비는 하되 소비가 제시하는 이미지에 매몰되지 말자는 것이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이미지가 우리에게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그 착시현상을 스스로 극복하는 훈련을 쌓아감으로서 소비의 공세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이지만 옳은 주장인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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