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 이란 용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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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 이란 용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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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글은 책임이 없고, 책임 없는 글은 글이라 할 수 없다

 
   
  ^^^▲ 이상돈 교수^^^  
 

인터넷 매체가 등장한 후 우리나라엔 ‘논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런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논객’이라는 용어가 “익명으로 숨어서 특정 정치 세력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글을 쓰면 ‘논객’이고 종이 신문에 쓰면 ‘평론가’나 ‘언론인’이라고 보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것도 이상한 풍조다.

‘논객’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pundit’이다.

신문과 방송에서 논평을 하는 사람은 대개 ‘commentator’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신문에 글을 쓰는 교수 등 지식인들은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한다. 주제에 대해 제3자의 입장에서 논평을 하는 것이다.

반면 ‘논객(pundit)'이라고 하면, 일단 자기 입장이 확실한 사람을 지칭한다. 진보면 진보, 보수면 보수, 그런 식이다. 그러면서 자기 논리를 정확히 펴는 것이다. 그 점에서 ’논객‘이란 용어는 약간의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특정한 관점에서 사안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기를 ‘논객’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본인은 언론인, 교수 등 본업으로 자기를 소개하지만 남들이 ‘보수 논객’이니 ‘진보 논객’이니 하고 부르는 것이다.

적어도 객관적으로 ‘논객’이란 말을 듣는 사람들은 일단 상당한 공부와 지식이 뒷받침되어 있는 사람이다. wickipedia 에서 ‘pundit'을 찾아보면, ‘pundit'의 범주에 드는 미국과 영국 사람들의 명단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당당한 오피니언 메이커들이다. 익명으로 댓글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논객‘을 자처하는 풍조는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듯하다.

미국에서 ‘논객’의 직업은 대체로 언론인, 그중에서도 여러 매체에 동시에 게재되는 신디케이티드 칼럼니스트(syndicated columnist)가 가장 많다.

미국의 경우에 보수 논객이 대학 교수인 경우는 별로 없다. 반면 진보 쪽에는 프린스턴 대학의 폴 크루거만,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수전 에스트리치 등 교수들이 많다. 대학이 좌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주요 신문의 논설위원을 하는 대표적인 논객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페기 누넌을 들 수 있다. 누넌은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의 공보비서를 지냈고. 2004년 대선에서는 신문사를 잠시 휴직하고 부시 대통령을 도왔다.

여러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마이클 노박도 언론인 출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쓸모있는 바보들’의 저자 모나 채런, ‘중상모략’의 저자 앤 코울터, 정치 토크쇼를 진행하는 로라 잉그레이엄은 모두 일류 대학과 명문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이지만, 진보 좌파와 싸우는 길을 택한 대표적 여성 논객이다.

미국의 논객들은 일단 학력이 출중하다. 그것은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 위해선 일단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윌리엄 버클리 2세의 경우는 ‘보수 논객’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예일대학을 나온 그는 ‘내셔널 리뷰’를 창간해서 경영했다. 1965년에는 보수당 후보로 뉴욕 시장 선거에 나온 적도 있다.

버클리는 자신의 잡지를 통해 많은 보수 논객을 배출해서 ‘보수의 시대’를 여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수한 학력이 반드시 유명한 논객의 필수 조건인 것은 아니다. 폭스 뉴스의 빌 오라일리는 지방의 작은 대학을 나왔고, 정치 토크 쇼의 황제인 러쉬 림보는 대학을 중퇴했다. 폭스 뉴스에 출연하는 숀 해니티도 대학을 중퇴했다. (해니티는 방송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을 중퇴했다고 한다.) 이들은 변변한 대학을 다니지 못했지만 독서를 대단히 많이 한 사람들이다.

‘논객’의 길을 가기 위해선 일단 매체를 통해야 한다. 하지만 요새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논객으로 클 수도 있다. 대학을 나오고 작은 신문에서 일 했던 미셀 맬킨이 그런 경우이다. 맬킨은 자기를 ‘블로거’라고 소개한다. 맬킨은 책도 몇 권 써내서, 앤 코울터를 잇는 당당한 보수 논객으로 자리 잡았다.

제대로 된 ‘논객’으로 대접받기 위해선 책을 펴내야 한다. 누넌, 노박, 코울터, 해니티, 림보, 오라일리, 맬킨 등 모두가 책을 냈고, 또 책으로 시장에서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선 사람을 소개할 때엔 먼저 어떤 책의 저자라고 소개한다. 책을 쓰지 못한 사람은 오피니언 메이커로서 대접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TV에 출연한 사람을 소개할 때 항상 무슨 책의 저자라고 소개한다. 책을 쓴 사람이 단순한 교수나 변호사 보다 더 대우받는 사회가 미국이다.

논객은 그가 신문사에 있건, 대학에 있건 간에 여론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론을 조성하는 것 자체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논객이 그의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수전 에스트리치 교수는 현재 힐러리 진영에 참여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인 에스트리치 교수는 오래 전부터 글로써 이미 ‘진보 정치’를 해 오면서, 사사건건 부시 정권을 비판해 왔다. 1990년대에 보수주의 이론을 개발해 온 젊은 보수 논객 데이비드 프럼은 부시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를 지냈다. (‘악의 축’이란 단어는 그가 만들어 낸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1975년 초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물러나서 1980년 대통령 선거에 뛰어 들기까지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방송에서 정치 논평을 했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보수 논객’ 생활을 한 것이다.

그의 방송과 신문 칼럼을 보면 그가 준비된 대통령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레이건은 주지사를 끝내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주된 수입은 칼럼 원고료와 방송 출연료였다. 워낙 인기가 있어서 그가 벌어들인 수입은 생활은 물론이고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에 충분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온라인에서 논쟁을 했던 것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자기를 들어내고 글을 쓸 수 없었던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익명으로 글을 쓰는 사람 중에도 그가 누구인지가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제 정권도 일단 바뀌었으니, 익명으로 글 쓰는 풍조를 탈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글이란 원래 이름을 걸고 쓰는 것이 정도(正道)고, 또 그래야만 하는 법이다.

일찍이 언론의 자유를 주창했던 프란시스 베이컨은 언론 자유에는 무한한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이름이 없는 글은 책임이 없고, 책임이 없는 글은 글이라고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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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2008-04-16 17:45:28
공부도 많이 하고 전문지식이 풍부한 대학교수나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훌륭한 글을 쓰는 분을 "논객"이라 칭하고 보통은 그냥 "글쓴이"라고 칭하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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