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유정 문학캠프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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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유정 문학캠프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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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부터 27일까지, 춘천시 신동면 증3리 문학촌에서

 
   
  ^^^▲ 소설가 김유정^^^  
 

"김유정 문학촌"이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춘천시 신동면 증3리 문학촌에서 "2003 김유정 문학캠프"를 개최한다.

올해로 2번째를 맞는 문학캠프는 전국의 중고생과 대학생, 일반인 등 90명을 대상으로 산골 나그네반 등 3개 반을 편성해 김유정의 작품세계를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오정희 소설가 등을 초청해 문학특강과 창작실기 시간을 갖고 김유정 소설의 배경이 된 마을 현장도 답사한다.

다음은 김유정의 약력이다.

1930년 22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交)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6월 24일 학칙 제 26조에 의거, 제명처분 당함. 하지만 김유정은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한다.

박록주를 짝사랑했으나 끝내 거절당하고 춘천 실레에 내려와 방랑생활. 들병이와 친해졌으며 늑막염 재발. 안회남의 권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31년 23세 4월 20일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상과에 다시 입학. 그 후 자퇴함(퇴학자 명단에만 있을 뿐 상세한 기록은 없음). 실레 마을에 야학당(夜學堂)을 열었다.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 조직. 농우가(農友歌) 지어 불렀다.

1932년 24세 야학당을 금병의숙(金屛義熟)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 받았다. 6월 15일 처녀작 단편 심청(深靑)을 탈고.(4년 뒤인 1936년 <중앙>에 발표) 충남 예산 등지의 금광을 전전했다.

1933년 25세 서울에 올라와 사직동에서 누님과 함께 기거. 폐결핵 발병진단.
1월 13일 <산골 나그네>탈고, 안회남의 주선으로 <제 1선>지 3월호에 발표.
8월 6일 '총각과 맹꽁이'를 탈고, <신여성> 9월호에 발표. 공식적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처녀작은 '산골 나그네'가 됨. 사직동 시대 유정은 톨스토이가 되고자 함. 이석훈(李石薰), 채만식(蔡萬植), 박태원(朴泰遠), 이상(李箱) 등을 만났다.

1934년 26세. 누님이 사직동 집을 처분. 혜화동 개천가에 셋방을 얻어 밥장사.
8월 16일 '정분'탈고. 9월 10일 '만무방'탈고. 12월 10일 '애기'탈고. '노다지', '소낙비'를 12월에 탈고.(1933년의 '따라지의 목숨'을 1934년 '흙을 등지고'로 개작, 신문사와 협의 '소낙비'가 됨) 안회남이 대신 신춘문예 응모작으로 부쳤다.

1935년 27세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문예 현상모집에 '소낙비' 1등 당선.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노다지'가작 입선.
1월 20일 아서원에서 신춘문예현상 1등 당선 축하회.
6월 3일 백합원서 조선문단사가 주최한 문예좌담회에 참석.
김유정은 안회남(安懷南), 김남천(金南天), 이학인(李學仁), 박영호(朴英鎬), 이선희(李善熙), 함대훈(咸大勳), 이헌구(李軒求), 이석훈(李石熏), 김환태(金煥泰), 이무영(李無影), 한인택(韓仁澤), 서항석(徐恒錫), 정지용(鄭芝溶), 김희규(金憘奎), 이하윤(李河潤), 김광섭(金珖燮), 방인근(方仁根), 최정오(崔定吾) 와 함께 연회에도 참석했다.

단편 '금따는 콩밧' <개벽> 3월호, '금' 발표지 미상, 1월 10일 탈고, '떡'<중앙> 6월호, '만무방' <조선일보> 7월, '산골' <조선문단> 7월호, '솟' <매일신보> 9월, '정분'의 개고작(<정분>이 <솟>으로 개작되었다), '봄·봄' <조광> 12월호 등을 발표한다. 이 한해에 소설 9편과 수필 '잎이 푸르러 가시든 님이' <조선> <중앙일보> 3월 6일, '조선의 집시-들병이 철학' <매일신보> 10월, '나와 귀뚜람이' <조광> 11월호 등, 3편을 발표, 6월 3일 '조선문단'이 주최한 문예좌담회에서 이태준(李泰俊)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구인회(九人會) 후기 동인으로 참여. 이상과 깊은 친분을 가짐. '안해'를 <사해공론(四海公論)> 12월호에 발표하여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1936년1월부터 8월까지 9편의 소설과 4편의 수필을 발표.
단편 '심청' <중앙> 1월호, '봄과 따라지' <신인문학> 1월호, '가을' <사해공론> 1월호, '두꺼비' 구인회 동인지<시와소설> 3월호, '봄밤' <여성> 4월호, '이런 음악회' <중앙> 4월호, '동백꽃' <조광> 5월호, '야앵' <조광> 7월호, '옥토끼' <여성> 7월호 가 각각 발표됨. 미완의 장편소설 '생의 반려'는 <중앙> 8,9월호에 연재하였다.

수필 '오월의 산골작이',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어', '길' 등을 5월에서 8월 사이에 발표하고 '행복을 등진 정열'은 여성지 10월호에, '밤이 조금만 짤럿드면'은 <조광>지 11월호에 발표. 단편소설 '정조'는 <조광>지 10월호에, '슬픈이야기'는 <여성>지 12월호에 발표. 마지막 여인 박봉자를 짝사랑하였다.

1937년 병이 깊어져 김문집이 병고작가 구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간문 '문단에 올리는 말슴'을 <조선문학> 1월호에 게재. 수필 '강원도 여성' <여성> 1월호, '병상 영춘기' <조선일보> 1월 29일∼2월 2일 발표. 2월 조카 진수에 의지하여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신상곡리 100번지의 매형 유세준의 집으로 옮겨와 요양 치료하다.

소설 '따라지' <조광> 2월호, '땡볕' <여성> 2월호, '연기' <창공> 3월호 발표. 서간문 '병상의 생각'을 <조광>지 3월호에 발표하고, 세상뜨기 11일 전인 3월 18일 '필승전'으로 되어 있는 마지막 편지를 안회남에게 보내다.

3월 29일 오전 6시 30분에 30세의 나이를 다 채우지 못하고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상곡리 100번지 매형 유세준의 집에서 사망햇다. 서대문 밖(홍제동 화장터)에서 유해는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이 해의 사후 발표작으로 수필 '네가 봄이런가' <여성> 4월호, 단편소설 '정분' <조광> 5월호, 번역동화 '귀여운 소녀' <매일신보> 4월 16일∼21일, 번역 탐정소설 '잃어진 보석' <조광> 6월∼11월호 발표되었다.

1938년 단편집 '동백꽃'(三文社) 발간되다.
1939년 사후 발표된 소설로 '두포전'<소년> 1∼5월호, '형'<광업조선> 11월호, '애기'<문장> 12월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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