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수의 현주소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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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교수의 현주소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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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증언자로 살아가야 할 책무를 느끼는 사람

1982년 대학교육의 사명을 받고 전남대학에 첫 발을 내딛은 때만 해도 교수들의 학력은 거의 석사출신이었다. 1980년도만 해도 박사학위증을 소지한 교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70년대에 교육부는 교수의 자질향상을 위해서 “구제박사제도”까지 만들어 교수들에게 자격을 갖추게 했다.

그러나 교육정책과 행정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항상 그때그때 상황에만 급급했기에 그런 제도들이 오히려 대학비리와 부조리의 온상지로 전락하는데 일조 했다.

급기야는 그런 졸속 대학정책이 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하면서 출세하려면 줄을 잘 서야한다는 말까지 흉하게 나돌았다.

최첨단 지식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오늘의 대학교육의 현실 속에서 과연 대학의 존재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이 회의적인 물음을 통해서 본질적인 접근을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그러한 시도마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대학에 몸담고 가르치는 동안에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시도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줄곧 고뇌하고 또 고민하였지만 그 길을 혼자 가기에는 너무 벅차고 힘들었다.

후배가 선배를 추월할 수 없을 만큼 선후배 서열주의가 깊은 뿌리를 박고 있었던 당시의 대학 사회분위기 속에서 학문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학연과 지연이 우선 시 되는 대학사회는 군대사회와 교도소를 방불케 할 만큼 발령 순 서열계급제도에 귀착되어 있었다.

최고의 지성과 학문의 전당이란 대학사회에서조차도 학문과 위계질서는 발령 순에 따라서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30대 석사 전임강사가 40대 박사 조교수보다 6개월 먼저 대학에 발령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대학의 모든 혜택을 먼저 부여받게 되었던 시절이었다.

1980년도 그 당시 대학에서 힘있는 교수의 배경을 등에 업고 조교로 남아서 일하다가 자리가 생기면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대학에 발을 내민 교수들은 인맥중심의 교수 사회에서 자신과 관련된 교수들 면전에서는 180도 허리를 굽히고 아부하면서 자신과 무관한 동료교수들에게는 마치 자신이 재벌의 왕자라도 된 듯 목에 플라스틱을 감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교수가 어찌 대학사회에서 올곧은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또 ‘아닌 것을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을지? 그들은 보직과 권력을 선호하면서 선후배교수 인맥사회 속에서 줄서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또 교수사회의 고질적인 보직지향주의와 관료주의 풍토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만 정신을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야만 교수생활을 안이하게 영위할 수 있었으니까. 건전한 비판마저 권력에 매도되는 당시의 호머 아카데미쿠스 진풍경을 보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때로는 입다물어야 했고 때로는 폭로해야만 했던 아품을 안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 지난 시간들이 무의미하고 부질없었기에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 허탈감이 감돌고 있지만! 지난날 이러한 대학의 진풍경 속에서 학과에 홍일점으로 살아가는 여교수의 존재는 과연 어떠했을가를 구차하게 언급할 필요가 없다.

남자보다 여자는 3배의 능력을 지녀야 적어도 교수직에 도전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학정책결정을 위한 모든 자리가 남성 중심의 일변도로 구성되었기에 남성중심의 교수사회에서 여교수의 대학정책결정에 대한 참여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설령 여교수에게 어떤 자리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자리는 노른자 부위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 자리는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이기보다는 단지 남성들이 결정한 것을 보조하고 집행하는 역할에 그쳤다.

대학사회의 구성비율에 있어서도 여교수의 숫자가 남교수에 비해 1%밖에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교수의 역할은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분위기 메이커에 불과했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힘들게 교수가 되었고, 여자가 남자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라도 남자들은 여교수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여교수 자신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남성중심의 사회속에 길들여진 여성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가 때로는 항상 뒷전에 머무는 겸양의 미덕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또 그것이 남성중심의 대학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데 편했기 때문에 여성 자신이 그 자리를 뛰어넘으려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소위 대학교수라면 함께 협력해서 적어도 대학과 사회 전반에 걸쳐 문제의식을 갖고 문제를 풀어가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모름지기 대학교수는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고민하는 진리의 증언자로 살아가야 할 책무를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대학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대학을 떠나올 때까지 대학이 똑바로 서려면 대학인의 의식구조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또 대학인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충돌과 토론을 줄곧 해 때로는 대학 안에서 바보처럼 살아야 했다. 남성중심의 대학사회 문화 속에서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햔 여성의 갈 길을 모색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나 자신은 망가질지라도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징검다리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사범대 학장에 출마해서 여자의 능력을 발휘하려고 했다. 하여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판단을 하면서도, 사실 떨어졌지만 나는 전남대학 사범대 학장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여교수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늘 찾아 고뇌하였다. 주변을 살펴보건대 당시 대학사회의 정의로운 남성상도 흔치 않았지만 정의로운 여성상도 흔치 않았다.

진정한 남성상의 의미는 단지 힘으로만 모든 것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남성성은 오히려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부성의 능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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