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영혼의 눈'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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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영혼의 눈'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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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연주 칼럼 '창조를 위한 혼돈'을 읽으면서

^^^▲ 노 대통령과 맞는 '코드'로 KBS 신임사장 자리에 오른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정연주씨
ⓒ 사진/포토네이버^^^
<한겨레신문>의 '정연주 칼럼'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정연주씨에겐 모든 게 항상 분명해보인다는 점이다. 정씨의 글은 늘 분명한 도식을 갖고 있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바르고 다른 하나는 절대적으로 그르다'는 도식이다.

<한겨레신문> 7월 26일자에 실린 '정연주 칼럼 / 창조를 위한 혼돈' 역시 정씨의 그 도식적 구도에 충실하다.


"친일을 어떻게 보는가, 박정희·전두환의 군부 독재정권 때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는가, 지금까지 지니고 누려온 기득권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남북관계를 냉전대결의 눈으로 보는가 아니면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눈으로 보는가, 지성도 이성도 마비시키는 블랙홀같은 지역주의에 얼마만큼 함몰되어 있는가...개인과 집단의 삶이 어떤 역사적 경험을 안고 살아 왔는가에 따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입장과 답이 분명하게 나온다."


전체적으로 혼란한 양상을 띠고 있는 현 사회 상황에서도 그에게는 이렇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입장과 답이 분명하게 나온다'. 창조를 위한 혼돈이라고 눙을 치고 있는 그 '혼돈'의 상황에서도 그에게는 이미 "냉전세력"과 "양심세력"이라는 '분명한 입장'이 결과물로 나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지없이 분명하게 나눠지고 기술된 정씨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 한쪽이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왜일까?


"냉전세력"이냐 양심세력"이냐


정씨의 글에서 나는 그가 그렇게 비판해마지 않는 또하나의 '조선일보식 사고'를 보게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니.. 하나는 "냉전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양심세력"이라니... 그렇다면 그 구도안에서 나와 같은 범부로서의 한 '시민'이 위치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살아온 날이 얼마 되지 않아 친일과도 관계가 없고, 박정희·전두환의 군부 독재정권 때 구체적인 무엇을 한 적도 없으며, 개인적인 일만으로도 벅차하며 살아온 나와 같은 한 '시민'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그가 묻고 있는 '지금까지 지니고 누려온 기득권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온 바도 없고, 남북관계를 냉전대결의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눈으로만 보는 것도 아닌 나는, 지성도 이성도 마비시키는 블랙홀같은 지역주의에 정씨가 걱정하는 것만큼 '함몰되어' 있지도 않은 나는... '정연주식 편가르기'에서는 그렇다면 대체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정연주식 편가르기'에서 나는 이방인일 뿐인가? 그건 다만 정씨가 말하는 '지식인'의 문제일 뿐이며, 한 시민은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 하는 주변인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므로 침묵해야 하는 것인가? 받들어 따라야 할 그 결과만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 <한겨레신문>이나 '정연주 칼럼'을 보면 사실 이 말만큼이나 가슴에 와닿는 말도 없다. 그들이 하는 말과 글을 듣보고 있노라면, <한겨레신문>은 절대선의 위치에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므로 결코 '불륜'일 수가 없다는 식이다. 저들의 저 견고한 믿음에 나는 자주 경외감이 일곤 한다. 자기는 '양심세력'이고 상대는 '냉전세력'이라는 이 섬뜩한 언어의 폭력 앞에서 나는 놀랍고 두려려워지곤 한다. '광신'의 기미가 엿보이는 때문이다.

그는 단언한다. '바로 이 점 때문'이라고. 현재의 편가르기 양상과 지식인의 위기 상황이 '민주화 양심세력의 외연이 크게 넓어지고 있는데 대해 수구, 기득권, 냉전세력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때문이며, '오랫동안 누려온 편안한 기득권이 침해를 받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살기' '악령' '홍위병' 등의 극언을 해왔다'고.

그러나, 우리 조금은 솔직해지기로 하자. 극언을 시작한 것은 명백히도 <한겨레신문>이 먼저였고 '안티조선' 세력이 먼저였다. 그럼에도 그는 저런 단언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광신적' 믿음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현재의 상황을 저런 도식으로 일반화하여 묶을 수는 없을 것같기에 하는 말이다. 어떻게 숱하게 다양한 발언들을 일도 양단하여 저렇게 묶어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선일보>에 동의하기 힘든 점이 있다는 점은 나 역시도 자주 언급해온 사항이다. 나름대로 모니터링도 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해온 것만도 벌써 수삼년이다. 정씨가 말하는 기득권 유지나 냉전적 사고를 일정 부분 <조선일보>가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득권'도 일종의 권리요, 냉전적 사고 또한 일종의 자기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마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자기 도그마에 다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맑은 영혼의 눈'


한때는 정연주씨의 글을 퍼나르기까지 하면서 새겨 읽은 적도 있다. 그만큼 정씨의 단정한 생각과 글쓰기에 공감하고 신뢰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부정하고 부당한 언론사 세무조사에 쌍수를 들어 반기면서 박수로 맞장구까지 쳐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신뢰는 사라져버렸다. 신뢰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지금까지 보여왔던 그의 말과 행동이 실은 헤게모니를 잡지 못한 자의 '딴지걸기'에 다름 아닌 것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더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금 그 결과를 두고 보더라도 정연주씨가 외친 '언론개혁'은 이를테면 껍데기였고 그 속내는 말 그대로의 '언론 헤게모니' 쟁탈에 있었다는 생각이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이 어두웠던 셈이라고나 할까.

최근 KBS 사장직에 취임하면서 정씨가 내놓은 '취임사'를 보니(다음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지금도 그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든 반대 의견이란 '오랫동안 누려온 편안한 기득권이 침해를 받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기득권의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그의 '속 좁은' 생각일 뿐이다.

그렇기에 '혼돈의 시대'에서도 자신만은 '시대의 흐름'을 꿰뚫고 있노라는, 혹은 '선지자의 예언'을 전하는 정연주의 '맑은 영혼의 눈'이 나는 두렵다. 그 '눈'에서 벗어나는 순간 불순한 세력으로 내몰려 죽창으로 단죄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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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002-11-26 17:54:39
그래도.. 정연주는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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