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對北지원을 당장 중단해야 할 8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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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對北지원을 당장 중단해야 할 8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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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도적 對北지원'은 '對北지원의 중단'이다

^^^▲ 북한 수재민 돕기 위한 구호물자가 인천항 출항
ⓒ 해양경찰 섹션형 전자신문 e-Focus^^^
좌파정권 10년을 거치며 「만연」된 소위 對北지원엔 「인도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북한의 불쌍한 어린이, 굶주린 백성을 돕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對北지원이 과연 인도적일 수 있는 것인가?

소위 「인도적 對北지원」의 대부분은 북한의 군부(軍部)와 특권층(特權層)으로 흘러간다.

지원형태가 무엇이건, 지원물자가 무엇이건 상관없다. 이것은 북한의 수령독재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인도적 對北지원」은 김정일 정권의 폭압(暴壓)을 강화시키고, 북한인권 탄압(彈壓)을 계속케 하는 동력이 될 뿐이다.

인도적 對北지원은 이런 면에서 가장 非인도적이다. 폭압 받는 주민들을 돕는 「가장 인도적 對北지원」은 「對北지원의 중단」이다. 김정일 정권을 종식시키고, 자유·인권·법치가 존중되는 보편적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런가?

① 외부지원물자, 군부(軍部)에 우선배분

첫째, 선군(先軍)정치라는 「군사제일주의」 노선 아래서 북한 내 모든 물자는 군대가 우선 사용하는데, 인도적 지원물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북한전문가 이영화 日本간사이대 교수는 『북한 지원 물자의 50~70%가 군부대로 먼저 흘러간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탈북자들의 주장과 대체로 일치한다.

예컨대 남포항에 외부에서 지원된 식량(食糧)이 도착하면, 군대마다 식량담당이 「전진공급」이라 하여 먼저 가져온다. 다른 기관은 수송능력(輸送能力)이 없어, 군대보다 앞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료(肥料)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등에서 지원된 비료의 1차 공급대상은 軍부대 농장, 2차 공급대상은 김일성·김정일 현지 지도 단위농장이다. 기타 농장에서는 비료를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日TV, 한국 쌀 軍창고 비축장면 방영>

일본 후지 TV는 2006년 9월11일 북한 내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탈북자가 내부에 잠입해 촬영한 이 동영상은 같은 해 5월말 함경남도 단천市의 모습이었다. 여기는 한국이 지원한 쌀이 트럭에 실려 軍부대로 옮겨진 후, 軍창고에 비축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단천역 인근 한 장소에는 「先軍정치 바람에 인민들이 굶어죽는다! 군대들에게만 주지 말고 인민들부터 쌀을 달라!」는 벽보가 붙어있는 장면도 나온다.

소위 인도적 지원물자의 군사적 전용은 북한에선 당연시된다. 2006년 11월3일 작성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군수(軍需)동원 총국장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북한 내부 자료는 「한국에서 쌀이 오면 군량미로 보충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나온다. 당시 언론에 보도됐던 자료 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말씀 자료=김 위원장은 군수동원 총국장을 접견, 『보고 된 자료를 보니 당에서 세운 (전쟁 예비 식량) 목표의 83%를 확보하였다고 하는데…』라며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식량을 지원해 줄 전망이 없지만 결국 남조선에서 식량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부족 되는 식량은 쌀이 들어오면 더 보충하도록 합시다』라고 말했다.』

② <김정일에 충성하는 핵심(核心)계층에 배분>

인도적 지원물자는 군대 이외에도 평양에 거주하는 당(黨)·군(軍)·내각(內閣) 등 「핵심(核心)계층」으로 불리는 특권(特權)계급에 독점적으로 돌아간다. 김정일에 충성하는 이들에게 배급돼서, 북한정권을 지탱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주로 평양에 거주하는 특권계급은 지원물자를 독식한 뒤, 일반주민에게 비싸게 되파는 「돈벌이」에 나선다. 북한식 부패(腐敗)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장마당에서 한국 쌀은 「대한민국」 마크가 찍힌 포대 째 팔리기도 하고, 포대 없이 쌀만 팔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 시장에서 팔리는 쌀의 80% 이상은 한국과 유엔 등에서 들여온 쌀이라고 지적한다.

홍민 동국대 북한학과 강사는 「북한의 시장교환 질서와 비도덕적 가족주의화」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북한주민들의 장터경제가 간부들의 정치자본을 활용하는 공간으로 부상하면서 주민들에게 약탈적으로 기생하는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다』며 『특권층의 기생방식은 「마피아 부족주의」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③ 어린이용 우유가루까지 특권계급 독식

특권 계급에 빼돌려지는 것은 식량 뿐 아니다. 의류, 신발, 식료품 등 일상 물건도 마찬가지다. 한국NGO들이 굶어죽는 북한 어린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지원한 어린이용 우유가루 등도 再포장돼 평양에 외화상점에서 팔리고 있다는 목격담도 전해진다.

탈북민 김영순(가명·2003년 입국)씨의 증언이다.

『남한에서 보낸 내의류가 1999년과 2000년에 평양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여성용 내의, 팬티, 브래지어, 양말과 남성용 옷, 양말 등이 들어 있었다. 「조선인민군 협주단」 남성 합창단원들에게는 1인당 양말 20켤레씩 공급했다. 이 옷들은 평양시 가정별로 「국정가격」으로 공급했다. 평양주민들은 다시 2~3배 가격으로 높여 이를 지방에 팔아 이익을 챙겼다.』

④ 의약품도 軍부대로 간 후 빼돌려져

의약품(醫藥品)도 이런 악순환으로 돌아간다. 軍부대 병원에 우선 지급되고, 간부들은 암시장에 내다파는 구도이다. 그나마 남겨진 의약품은 각 지역 병원으로 보내지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가로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국제사회가 북한에 아무리 많은 의약품을 지원해도, 일반 병원에는 약이 없다. 북한주민들은 병원에서 알선한 개인집에서 시장가격으로 사먹어야 한다.

평양시에 위치한 모 병원장으로 40년 이상 근무한 탈북민 김순임(가명·2006년 입국)씨는 『국제사회에서 지원하는 의약품들은 북한군에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의약품들마저도 하부 말단 병원들까지 전달되기 전에 대부분 빼돌려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증언했다.

⑤ 탈북자 중 40%는 對北지원 사실조차 몰라

당연한 결론이지만, 핵심계층을 제외한 북한주민의 절대다수에 해당하는 소위 적대(敵對)·동요(動搖)계층에게는 인도적 對北지원이 돌아가지 않는다. 세계식량기구(WFP)는 2005년 북한 내 최대 600만 명까지가 지원대상이라고 밝혀왔지만, 수많은 탈북자 중 WFP의 쌀을 지원받았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장윤옥 연구원이 2006년 12월7일 발간한 「탈북자 위기, 인권과 국제사회의 대응」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간 국제사회가 對北지원을 했음에도 탈북자 가운데 약 40%는 국제사회의 對北지원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4년 8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선양 등 중국과 북한 국경의 9개 지역에서 탈북자 1천3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이다.

⑥ 『수령님께 바친 것』으로 선전되는 인도적 지원

인도적 지원물자는 수령독재를 유지하는 선전용으로 악용된다. 對北지원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뤄지고, 소위 『수령님에게 바친 것』으로 선전되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주민들은 외부에서 오는 물자를 일종의 「전략적 노획물」 정도로 알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이 21세기 태양이기에, 세계 최강군사국이기에 두려워서 지원을 해 준다」는 식으로 세뇌된 결과이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의 증언을 들어보자.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정치에 의해 응당 빼앗아 온 것쯤으로 본다. 쌀 들어올 때 「대한민국」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빼앗은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선군정치에 의한 노획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런 표시가 있는 것이 북한당국에는 오히려 더 좋다. 한국정부는 그것을 성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이 빼앗아 온 것으로 주민들에게 교육을 다 시켰기 때문에, 「대한민국」 표시를 없애지 않는다.』

⑦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이라고요?

소위 모니터링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對北지원단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철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원물자가 북한의 군부(軍部)와 특권층(特權層)에 흘러가지 못하도록 감시(監視)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북한정권은 기본적으로 모니터링을 거부해왔다. 「차별배제」와 「필요에 따른 분배」등 분배의 투명성을 내건 세계식량계획(WFP) 감시요원들은 2005년 12월 강제 추방됐었다. 다른 對北지원단체 역시 모니터링을 요구하면 북한정권의 노골적 방해를 당해야 하며, 만일 모니터링을 계속 요구하면 북한 땅을 나오는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정권이 부분적인 모니터링을 수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국제기구의 모니터링 요구를 수용, 식량배분감시를 위한 일부 통제지역으로의 접근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이 같은 제한적 모니터링 과정에서조차 국제여론을 기만하기 위한 온갖 위장술(僞裝術)을 동원해왔다.

예컨대 對北지원물자를 우선적으로 실어가는 것으로 알려진 군부대들은 차량번호판을 일반차 번호판으로 바꾸고, 군인들을 사복차림으로 부두에 들여보내 곧바로 쌀을 받아간다.

북한 국경경비대 副분대장 출신인 김OO(가명·2003년 입국)씨는「對北지원물자 하역 시 국제기구 등의 사진촬영 등 감시가 있을 때」의 위장술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軍복무 중 쌀을 공급 받으러 청진항으로 여러 번 갔었다. 청진항에 유엔 등지에서 쌀이 들어오면 차를 갖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對南연락소와 국경경비대 트럭이었다. 당시 외국 사람들이나 남한 사람들이 배를 따라왔는데, 하역 장면을 찍고 있었다. 군대 트럭에 사회에서 통용되는 번호로 바꾸어 달고 항구에 들어간다. 당연히 견장 떼고 군복을 뒤집어 입고 쌀을 하역해 트럭에 실었다.』

<『물자 받았다』주민들에게 허위증언 강요>

주민들에게 허위(虛僞)증언도 강요된다. 예컨대 국제기구 사찰단이 우유를 지원해 준 유치원을 방문하면, 유치원 아이들한테 『우리는 우유를 매일 먹고 밥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말하라고 거짓말시킨다. 사찰단이 가면 유치원 교양원과 원장들, 비서들이 자기들 몫 얼마를 떼어내 나누어 챙긴다. 다음 날이면 당에서 모두 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배급소 등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인용해보자.

『남한에서 국수공장이니 빵 공장이니 지어주면 3.8탁아소 등 당국이 특별히 지정해 주는 곳만 공급된다. 또 유엔에서 사찰단이 들어오면 영양 상태가 좋은 어린이들을 앞에 세우고 부족한 애들은 뒤에 세웠다.』(2003년 입국 박OO씨)

『함흥시의 각 구역에서 성천강 제방 공사에 동원되었을 때는 함흥시 간부가 미리 준비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유엔기구 사찰단이 이제 공사장에 올 것이니, 그들이 물어오면 쌀 2kg씩 공급받았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다』(2003년 입국 이OO씨)

『2003년에 독일에서 소고기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1인당 4kg씩 나눠줘야 하는데 결국 한 가구당 200g씩 줬다. 갑자기 인민위원회에서 나와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는데, 유엔에서 확인이 나오니 1인당 4kg씩 받았다고 답하라고 강요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수표(서명)도 했다』(2006년 입국 김OO씨)

결국 對北지원을 하기위해서는 북한정권이 원하는 대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거나 또는 북한정권이 원하는 지역을 형식적으로 보고 오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⑧ 국방연구원, 『인도적 지원, 資源절약시켜 軍備증강』

인도적 지원의 非인도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지원물자가 북한의 군부(軍部)와 특권층(特權層)으로 흘러간다는 데 있지 않다. 북한정권이 지원물자로 절약된 달러로 무기(武器)개발에 나선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한국 등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으로 필요한 물자를 충당한 뒤, 「아낀 달러」로는 식량(食糧) 대신 무기를 사들이고, 만들어온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주민들에 대한 폭압과 남한국민들에 협박, 국제사회에 대한 공갈을 지속·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여러 차례 입증돼왔다.

국방연구원은 2003년 발간한 「북한경제위기 10년과 군비증강능력」에서 『인도적지원은 국내자원의 절약(節約)이 아니면 여타 민간의 수입소요 절감(節減)을 통해 결국 군사적 가용자원을 늘려주게 된다』며 국제적 지원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외화를 절약(節約)시켜 줄 것이므로 「궁정경제」의 금고에 여유를 제공, 궁극적으로 군비능력을 제고시킨다』고 지적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팬턴 사무총장은 「굶주림과 인권」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외부의 인도적 지원이 증가함에 따라, 북한정권의 식량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원래 수입량의 1/10까지 줄어들었다』며 『북한정권은 인도적 지원을 보완적(補完的)인 식량공급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절약된 외화를 무기(武器)수입이나 고위간부들의 사치품(奢侈品)을 위해 사용했다. 한 예로 1999년에 북한정권은 식량수입을 20만t 이하로 줄이는 대신 남은 외화로 미그21기 40대와 헬리콥터 8대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구입했다』고 적고 있다.

참고로, 워싱턴포스트 2007년 6월11일자는 『UNDP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에 「외국과의 교역 및 투자확대를 위해 쓰라」며 제공한 자금 중 270만 달러는 대천상업은행의 장비마련에 사용됐는데, 대천상업은행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등 무기(武器)부품을 구입하는 창구 역할을 하다 2005년 미국과 거래가 금지된 곳』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은 『UNDP가 북한 독재자의 개인은행 역할을 해왔다』며 『이를 계기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식량부족 100만t...비축된 군량미만 150만t>

「인도적 지원」이 결국 「무기개발 지원금」이라는 사실은 2006년 核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06 년 7월 일곱 발의 미사일 발사 비용은 약 6,000만 달러(600억 원). 같은 해 10월 한 발의 핵탄두 실험에는 2억8천만 달러~7억9천만 달러(2,570억~7,258억 원)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국방부가 직접(直接)비용만 추정한 액수다.

태국산 쌀(안남미)은 1t당 320달러 정도이며, 북한주민 주식인 옥수수는 1t당 100달러이다. 일곱 발 미사일 발사 비용으로 19만 t의 안남미, 60만 t의 옥수수를 살 수 있고, 핵실험 비용으로는 88만t ~ 247만t의 안남미, 280만t ~ 790만t의 옥수수를 살 수 있다.

북한은 2007년 3월 방북한 WFP 관계자들에게 『올해 100만t의 식량이 모자라다』며 외부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만 안 했다면, 모자라는 식량 100만t을 충당하고도 최대 147만t의 안남미 또는 890만t의 옥수수가 남았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북한에서 매년 100만t 정도의 식량이 모자란다고 가정한다면, 핵실험으로 10년 치에 가까운 옥수수를 날려버린 셈이다. 현재 북한이 비축하고 있는 군량미만도 약 15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인도적 지원은 북한으로 하여금 「식량수입을 위한 달러」를 「무기개발용 달러」로 전용케 한 무기개발 지원인 셈이다.

<金正日, 『인민이 굶는 걸 알면서도 로켓 개발』>

종교단체들과 對北지원단체들의 낯을 뜨겁게 만들 또 다른 fact가 있다. 김정일 스스로 돈이 있어도 식량, 비료나 구호물자를 사오는 대신 무기개발과 무기수입에 전력해왔음을 인정한 내용이다.

월간중앙이 2007년 7월호에 보도한 「북한 노동당 고위층 강연 녹취록」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 녹취록은 2006년 12월 북한 노동당 부부장금 장용순이 북한 과학계의 박사, 교수 등 지식층을 상대로 한 강연을 풀어놓은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로켓 한 발 개발하자면 김책제철연합기업소 같이 저렇게 큰 공장 한 50개 팔아도 그 값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군님께서 고난의 행군시기 가슴 아픈 말씀도 주신 바 있습니다. 공장은 못 돌아가고 인민들이 굶는 것을 자신께서는 뻔히 아시면서도 돈이 조금 생기면 여기다 다 집어넣었다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놈들에게 먹히지 않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오래전에 놈들에게 먹혔을 것이라고. 우리 인민들은 이것을 이해할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이런 가슴 아픈 말씀을 주신 바 있습니다.』

김정일은 로동신문 99년 4월22일자에서도 아래와 같이 유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적들은 인공위성(대포동 미사일)의 발사만으로도 수 억불은 넉넉히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돈을 인민의 생활에 투자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인민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유족하게 살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지키고 내일의 부강한 조국을 위하여, 자금을 그 부문에 돌리는 것을 허가하였다.』(노동신문 1999년 4월 22일자)

- 조갑제닷컴 金成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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