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6년 대한민국 역사에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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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66년 대한민국 역사에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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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전투부대 월남 증파

 
   
     
 

1966년 2월 28일 정부는 주월 맹호부대 요청의 1개연대와 미국과 월남 요청의 1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월남에 증파하기로 최종 결정, 그 동의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무회의 증파 이유로써

① 월남 전선은 한국의 제 2전선이라는 점
② 월남 문제는 한미 양국의 공동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객관적 정세
③ 한국의 방위가 곧 월남 전선의 승리에 달려 있다는 점을 열거했다.

이에 국회는 심의에 들어갔고, 찬반 논쟁이 들끓어 올랐다. 찬반 시비는 작년 1차 파병 때의 시비가 문제가 아닐 만큼 심각성이 더했다.

왜냐하면 1차 파병은 "지원"의 성격을 띤 것이지만 이번 증파의 경우는 사실상 본격적인 "전쟁 상태" 에 돌입하게 되고 거기에다가 국운을 걸어야 할 만큼의 심각성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국운을 건 심각한 찬ㆍ반 논쟁은 열을 더해갔다.

우선 찬성하는 측의 이유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월남전 참전의 득과 실

◇ 정치 군사면

① 한ㆍ미간 국사유대의 강화와 미국에 대한 지원강화로 우리 국방력이 실질적으로 강화된다.
② 이미 파견되어 있는 국군부대의 자체 안전과 작전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
③ 국군의 전투 경험으로 국방력이 실질적으로 강화된다.

◇ 외교면

① 미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며 국제 지위를 향상 시키고 동남아 진출의 기반을 마련한다.
② 집단안보체제에 의한 세력 균형으로 자체 방위에도 기여한다.
③ 한ㆍ미방위조약 협정요구의 계기와 명분이 생긴다.
④ 국군 장비 현대화와 처우개선은 물론 월남전 처리문제에 대한 외교적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 경제면

① 한ㆍ미ㆍ월 삼각무역에 의해 경제 발전의 계기가 마련된다.
② 미국의 대한군원삭감계획을 중단시킨다.
③ AID차관의 조기사용과 추가차관의 획득을 가능케 한다.

한편 반대측의 이유는 대강 다음과 같았다.

◇ 정치 군사면

① 자체 안보부터 해야하며 증파는 휴전선 방위를 약화시킨다.
② 한미 방위조약의 NATO형으로의 개정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③ 두 개의 정면작전은 피해야 하며 대량 파병은 대량 희생과 또 다른 증파를 불가피하게 한다.

◇ 외교면

① 다원외교의 후퇴 및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다. 특히 대 중립국외교에 큰 타격을 준다.
② 명분이 뚜렷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위신이 추락한다.

◇ 경제면

① 병력보충에 따른 부담증가
② 경제적 이익이 파병으로 있다 해도 희생보다 클 수 없다
③ 파병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불안이 고조되면 외국 투자가 준다.

이렇게 격렬한 찬ㆍ반 토론이 일어났지만 결국 국회에서는 찬성 95, 반대 27, 기권 3 으로 증파안이 통과되었고 한국은 더욱 깊이 월남전에 빠져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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