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흔적의 연속이다 ⓒ 비비추/우리꽃 자생화^^^ | ||
폐광 되자 광산은 빚만 남겨서
어머니, 밥집 닫으시고 다시 허구한 날
막내 업고 장터 떠도시었다.
가도 끝없는 날들 찬 물결 무심히
구겨지는 모랫벌 따라가면
어디서 밀려온 오징어뼈 몇 개.
좋던 시절의 노을은 아름다웠지만 석탄 캐던
장정들도 떠나가버려
종종치던 물총새 울음에 홀로 묻혀가던 그해
늦가을까진 형님조차 소식이 없고
웬 배고픔에도 기대 그리움도 나 혼자 허릴없어서
그 뼈 부숴 흰 가루로 바다에 뿌리면
돌아와 물가장마다 뿌옇게
진종일 붐비던 파도, 안개여
이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한 가지 제자리를 잡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일을 뼈가 바스러지게 하다가 이제 한숨 한번 돌리만 하면 또 어느 순간 금이 가고 무너지기 십상입니다. 남들은 나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잠을 자는 것 같은데도 모두 떵떵거리며 한 세상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가 하는 일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남들 잘 때에도 열심히 일을 하고, 남들 놀 때에도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빈 손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누구나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 숨쉬는 동안에는 누구나 열심히 일한 만큼 누릴 것 누려가며 산다고 합니다.
근데도 왜 나는 유독 살아 숨쉬는 동안에도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하고 늘 아둥바둥 악을 쓰며 살아야만 할까요. 왜 그렇까요. 내 부모가 워낙 가진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볍씨라도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가 있을 텐데, 나에게는 그 볍씨 한톨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광산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은 그 광산에서 시커먼 땀과 시커먼 눈물을 흘리며 거친 세상살이를 이겨내고자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그 광산에 가서 밥집을 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웬만큼 자리를 잡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뜻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광산을 운영하던 사람이 빚만 잔뜩 짊어진 채 문을 닫았기 때문니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께서도 어쩔 수 없이 밥집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또한 가진 게 없으므로 그 이전의 악몽 같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다시 허구헌 날/막내 업고 장터"를 떠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터의 삶은 너무도 어렵습니다. "가도 끝없는 날들 찬 물결 무심히/구겨지는 모랫벌" 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찬 물결을 타고 오징어뼈 몇 개가 그때의 흔적처럼 밀려와 있습니다. 그 오징어뼈는 마치 "좋던 시절의 노을은 아름다웠지만 석탄 캐던/장정들도 떠나가버려/종종치던 물총새 울음"처럼 느껴집니다.
돈 벌러 나간 형님 또한 그해 늦가을이 되어도 소식조차 없습니다. 나는 "웬 배고픔에도 기대 그리움도 나 혼자 허릴없어서/그 뼈 부숴 흰 가루로 바다에 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징어 뼛가루는 수평선으로 떠내려가지 않고 자꾸만 내게로 "돌아와 물가장마다 뿌옇게" 파도로 붐비고 있습니다. 한치 앞도 헤아릴 수없는 안개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흔적, 그렇습니다. 오징어뼈는 폐광이 되어버린 탄광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폐광이 된 광산을 바라보며 아무리 그 옛날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도 결코 그 좋았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곳곳에 남겨진 흔적은 한없이 쓸쓸하기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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