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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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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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92>나희덕 "그림자"

 
   
  ^^^▲ 작은 꽃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 바위취/우리꽃 자생화^^^
 
 

햇빛이 겨누는 창 끝에 놀라
문득 걸음을 멈춘다

그림자가 짧다

뒤따라오던 불안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헤치고 온 풀마다 누렇게 말라 있다
시든 풀을 보고 울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나는 덜 여문 잔디씨 몇을 훑어 달아난다

끝내 나를 놓치지 않는 그림자
흩어지는 잔디씨에도 그림자가 있다

삼라만상 중에서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살아 있는 생명체도 죽어 있는 무생물체도 모두 각각 제 생긴 모습 그대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림자는 햇살의 움직임에 따라 짧아지기도 하고 길게 드러눕기도 합니다. 그림자는 살아있는 생명체도, 그렇다고 죽어있는 생명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림자는 "햇빛이 겨누는 창 끝에 놀라/문득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햇빛이 겨누는 창 끝에 놀라" 재빠르게 멀리 달아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림자의 발목은 언제나 그 그림자의 주인에게 붙들려 있습니다. 그림자는 내가 태어나기 전 내 본래의 모습이었을까요?

살아 있는 생명체의 그림자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움직임 그대로 살아 꿈틀거립니다. 죽어 있는 무생물체의 그림자도 햇살의 움직임에 따라 늘 살아 꿈틀거립니다. 그림자는 생물체나 무생물체를 가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림자는 죽음도 삶도 초월한 삼라만상의 본래 모습일까요?

시인은 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그림자를 불안, 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불안은 결국 시인 스스로에 대한 불안일 것입니다. 사람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누구나 불안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살이를 어느 정도 겪다 보면 그 불안도 무뚝뚝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헤치고 온 풀마다 누렇게 말라 있"어도 그렇게 "시든 풀을 보고"도 울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제는 잃어버린 울음의 그 끝자락에 서서 아직은 "덜 여문 잔디씨 몇을 훑어 달아"날 줄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를 붙든 그 그림자는, 그 불안은 "끝내 나를 놓치지 않"습니다.

방금 내가 불안을 떨치려 "덜 여문 잔디씨 몇을 훑어 달아"나는 그 "잔디씨에도" 어김없이 잔디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끝내 나를 놓치지 않는 그림자처럼 늘 불안한 나날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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