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밥나무도랑물에 삽을 씻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립다 ⓒ 우리꽃 자생화^^^ | ||
아버지의 인생은 오토바이 바퀴에서 그쳤다.
달구지 하나 없는 화전민으로 살다가
지게 지고 안동으로 이사 나온 뒤
아버지의 인생은 손수레 바퀴였다.
채소장수에서 술배달꾼으로 옮겨갔을 땐
아버지의 인생은 짐실이 자전거 바퀴였다.
아들 딸들이 뿔뿔이 흩어져 바퀴를 찾을 무렵
아버지의 바퀴는 오토바이 두 대째로 굴렀다.
아들 딸들이 자동차 바퀴에 인생을 실었을 무렵
아버지의 인생은 오토바이 바퀴에서 끝났다.
뺑소니 자동차 바퀴가 오토바이 바퀴를 세운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마지막 바퀴는 병원으로 실려가는 그때의 택시바퀴였다.
석 달 긴 끝에 깨어난 뒤
바퀴 읺은 아버지의 인생은 지팡이였다.
걸음 앞에 꾹꾹 점을 찍는 아버지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하나 남은 바퀴는 죽어서 저기 갈 때,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의 노동은
오토바이 바퀴가 찌그러지면서 끝이 났다.
흔히, 태어났을 때는 네 발로 걷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다가, 늙어서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우리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 속에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그런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시인의 아버지의 삶도 아마 그처럼 힘겹고 고단했던가 봅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시인의 아버지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었던가 봅니다. 아니, 그동안 가진 것, 배운 것 모두를 험난한 세상살이에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태어날 때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요. 그처럼 시인의 아버지도 빈 손으로 긴 인생길을 출발합니다. 시인의 아버지는 "달구지 하나 없는 화전민으로 살다가" 겨우 지게 하나 어깨에 달랑 짊어지고, 시인의 고향인 안동으로 이사를 왔던가 봅니다.
그 뒤 시인의 아버지는 무진장 고생을 한 끝에 겨우 손수레 하나 마련하여 여기 저기 장터를 떠돌며 채소장수를 했던가 봅니다. 그러다가 또 "술 배달꾼으로 옮겨갔을 땐" 짐실이 자전거에 술통을 싣고 다녔던가 봅니다. 마치 아버지의 인생을 짐실이 자전거에 싣고 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시인의 아버지는 그렇게 살다가 마침내 자식들이 제법 어른 시늉을 할 때쯤 오토바이를 샀던가 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아버지처럼 자식을 낳고 살아갈 때쯤 늙으신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그만 자동차와 부딪쳐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그때부터 시인의 아버지는 3개월 만에 겨우 퇴원을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시인의 아버지는 지게와 손수레와 오토바이에 이어 지팡이에 모든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때의 아버지의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버지께서 사고가 남과 동시에 아버지의 인생이 끝이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아버지께서 지게를 지고, 손수레를 끌고, 짐자건거를 몰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일을 하실 때, 그때의 모습이 아버지의 참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토바이 바퀴가 찌그러지면서" 아버지의 인생이 끝이 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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