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국광복 62주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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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괴수들, 8월 9일 심야 궁성 방공호 안에서 무조건 항복 결정

^^^▲ 만세를 외치는 국민들^^^
1945년 5월 7일, 연합군의 공세에 못이겨 나치 독일이 침략의 깃발을 내림으로써 사태는 급속도로 진전, 5월 8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항복 권고에 이어 15일에 일본 본토에 대한 본격적인 대 공습과 더불어 오끼나와 전투에서 일본이 참패하게 되자 제국주의의 아성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1945년 7월 17일에 패전 독일의 도시인 포츠담에 모인 미. 영, 소 3개국 대표는 파시스트 소탕전에 끝장을 내고 아시아의 침략자 일본을 무찌르기에 모든 힘을 기르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미 오래 전에 세계 평화의 서광은 비쳐오고 있었다.

1943년 12월 1일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 수상 처칠, 중국의 장개석 총통 등 세 거두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담을 열고 협정 발표한 “대일 군사행동 결정”에는 전후문제 처리에 따른 방향과 함께 한국문제 해결의 명확한 보장이 명시되어 있었다.

3국 군사 사절단은 육. 해. 공군을 입체적으로 총동원하여 야만적인 침략자 일본에 대하여 최대한의 공세를 가할 결의를 표명하면서 그동안 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약탈한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일본 국민 축출과 반세기에 걸쳐 일제의 노예하에 있어 온 한민족에게 적당한 시기에 자주독립의 기회를 부여할 뜻을 명백히 하였다.

1945년 7월 17일, 포츠담에서 미, 영, 소 수뇌들이 독일 문제를 위시한 연합국의 전후 처리를 협의한데 이어 7월 26일에는 소련 대신 중국이 가담한 포츠담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이 선언에서 미, 영, 중 3개국은 준엄하게 일본의 항복을 권고하고 선언문 제8항에 명시하기를 카이로선언의 조항은 이행 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본주, 북해도, 구주와 몇몇 소도에 국한된다고 함으로써 카이로선언에서 공약된 한국의 독립이 재확인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최후

1945년 8월 6일에 일본 광도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으며 이어 9일에는 나가사끼에 잇달아 원자탄 세례가 있었다. 미군 폭격기가 투하한 인류 최초의 핵폭탄으로 인하여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다. 때는 늦었으나 8월 9일에는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가 있었다.

이때 일본 동경에서는 일본 천황 이하 모든 전쟁 책임자들이 허탈 상태에 빠져 있었다. 원자폭탄이 두 번이나 투하되어 약 15만명의 인명 피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소련까지 참전하여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어버린 군국주의 일본의 괴수들은 8월 9일 심야 궁성 방공호 안에서 천황을 앞에 않혀 놓고 무조건 항복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8월 14일 오전 10시 50분 소위 최후의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가 열리기까지 그들 일본 군부 내에서는 국체 보존을 위해서 본토 결전을 주장하는 주전론자들이 적지 않은 수에 달하고 있었으나 이를 물리치고 항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되고 만 것이다.

그 무렵 동경의 정세를 눈치채고 있던 조선총독부 고관들은 위태로워진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하였다. 당시 총독은 아베 노부유끼라는 자였다. 그는 국내의 지도적인 인물 고하 송진우와 몽양 여운영을 만나 시국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사태의 해결에 대한 협조를 요망하기도 했고 또한 총독부 고관들은 8.15 일주일 전부터 한강 상류에 있는 팔당에 모여 종전에 따르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충무로에 있는 어느 일본인 집에서 총독부 보안과장 이소사끼, 차석사무관 하라다, 조선군 참모 가미사게 등이 모여 한국인 박모 그리고 송진우를 초청하여 5인회합을 갖는데 성공하였다.

또 그들은 악화일로에 있는 일본의 전세를 숨긴 체 “형세가 급박하니 행정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 하시오”라고 권하며 아무런 응답이 없자 방향을 급선회해 “독립 준비를 해도 좋소!” 하지만 이러한 사탕발림에 넘어갈 송진우가 아니었다.

그 이튿날 아침 하라다 사무관이 또 와서 권유하고 경기도 보안과장 다나까가 오서 권하는가 하면 마지막에는 경기도 지사 이끼다가 경찰부장 오까와 함께 와 거듭 권하였으나 송진우는 여전히 응하지 않았다. 그것이 8월 13일경의 일이다.

<다음회-일본의 무조건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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