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좌파정권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 이렇게 대접해도 되나
문재인 좌파정권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 이렇게 대접해도 되나
  • 강명천 기자
  • 승인 2020.07.2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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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선엽 장군의 일생

살아있는 6·25전쟁영웅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이 10일 오후 11시경 별세하였습니다.

조금세 (전)부산교총회장 (현)학교바로 세우기 전국연합 회장
조금세 (전)부산교총회장 (현)학교바로 세우기 전국연합 회장

 

향년100세 고인은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을 온몸을 바쳐 지켜낸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6·25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체결 때까지 1128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전선에서 격전을 치루면서 숱한 생사의 고비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며 국가와 민족에 헌신한 영웅입니다.

백선엽장군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평남 강서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사가 되기 위해 평양사범학교에 진학하여 졸업 후 짧은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봉천군관학교를 수료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이 조직한 국방경비대 중위로 임관하여 한국군 창설에 기여하였다. 이후 29세에 1사단장 재임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단장과 육군 참모총장 등을 맡아 최전선에서 군을 지휘하며 여러 차례 기념비적인 전과를 올렸다. 특히 6·25전쟁의 최대격전인 다부동전투에서 그가 일궈낸 값진 승리는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1950년 8월, 북한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공세에 밀려 아군은 낙동강전선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경각에 달린 위기상황에서 1사단장이던 그는 불굴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공포에 질려 퇴각하는 부하들을 향해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너희들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고 독려하며 선두로 달려 나갔다. 그와 부하들의 결사항전으로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내었고 그 기세를 몰아 인천상륙작전성공과 평양까지 진격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만일 6·25전쟁 중 백선엽장군이 없었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적화되었을 것이다.

백선엽장군은 휴전이후 한국군의 재건과 숙군작업, 국방력 강화에 주력했고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초대 제1야전군 사령관으로 아시아최초로 야전군을 창설하였다. 1960년 예편이후엔 외교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10년간 대만과 유럽5개국 및 캐나다 주재대사를 역임하였다. 교통부장관시절에는 서울지하철1호선을 건설하였고 충주비료, 호남비료, 한국종합화학사장 등을 역임하며 중화학공업의 토대를 닦았다.

그리고 백선엽장군의 또 다른 업적은 1948년 정부수립직후 군 내부 남로당숙청분위기 속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당시 육본 정보국장 이던 백선엽 장군이 구명하였고 그 후 백선엽장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보국분야의 문관으로 채용하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복귀시켰다. 만일 백선엽장군의 박정희 전 대통령 구명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 진다.

이번 백선엽 장군 추모행사에 일부 세력이 백선엽 장군의 간도 특설대 근무를 문제 삼고 있으나 간도 특설대는 1938년에 조직되어 만주국에서 중국공산당 휘하의 항일전투를 벌이는 3개의 부대인 김일성이 소속한 동북항일연군, 중국인 혁명군인 팔로군, 김원봉이 속했던 조선의용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부대이다. 그러나 이들 부대는 1940년 말 경에는 이미 소멸하여 김일성이 소속한 동북항일연군 등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소련군에 복속되었고 백선엽장군이 활동한 1943년부터 1945년경에는 만주에는 독립군이 전무한 상태였다.

2. 우리정부와는 너무도 다른 외국의 전쟁영웅 대우

핀란드 전쟁영웅 만네르헤임은 핀란드가 제정러시아의 식민지 시대 30년간 러시아군에 봉직하고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917년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이후 조국 핀란드가 독립하자 귀국하였다. 1939년 러시아와 핀란드의 국경분쟁으로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공하자 72세의 노령으로 핀란드 총사령관이 되어 핀란드군의 3배가 넘는 러시아군을 일명 겨울전쟁이라 일컫는 전투에서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여 러시아군을 격파하였다. 마치 백선엽 장군이 1개 사단으로 북한 정예부대 3개 사단을 물리친 다부동전투를 연상케 한다. 전쟁 후 핀란드는 적국러시아를 위해 30년간 헌신하고 모국어를 몰라 통역 없이는 소통할 수 없는 만네르헤임을 핀란드군 총사령관에 계속 임명하고 1944년부터 46년까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만네르헤임 사망 후 국장으로 추모하고 수도 헬싱키에 만네르헤임 박물관과 동상을 세웠다. 프랑스는 6·25전쟁영웅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작고하자 당시 대통령 이였던 샤를 드골이 주관하고 제복을 입은 대통령과 국방장관, 보훈처장 등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프랑스 파리의 발드 그라스 성당에 안치했다.

2차 대전의 분수령이 된 이집트 알라메인 전투에서 독일군을 대파한 육군원수 버나드몽고메리 장군의 장례식은 1976년 영국군 군장으로 치우어졌고, 1980년 그의 동상은 국방성 앞에 세워졌다. 1964년 세상을 떠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드 장군 장례식은 시민 1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3. 자기나라 영웅 보내듯 챙기는 미국

백선엽장군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추앙받는 전쟁영웅이다. 미국은 6·25정전협정체결 50주년을 계기로 한국전쟁 기념사업을 하면서 맥아더장군과 리지웨이 극동연합군사령관, 백선엽 육군대장, 김동석 첩보부대장을 6·25전쟁 4대 영웅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다부동전투에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라며 결사항전 한 그의 회고록을 미국군사학교들은 수업교재로 활용하고 있고 미·국립보병박물관에서는 백장군의 육성을 틀어주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 미8군은 백선엽 장군을 미8군 명예사령관에 임명하기도 하였다.

백선엽 장군이 100세 로 타계하자 전·현직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미국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워싱턴이 미군의 아버지라면 백선엽장군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애석해 하고, 백악관도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백선엽장군의 영결식과 안장식에 불참하고 당 차원의 공식적인 메시지도 없었다. 청와대 역시 군 출신인 김유근 국가 안보실 1차장만 영결식에 참석했고 일절 논평을 내지 않았다. 현 정부가 구국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 장례식은 당연히 국장을 실시하던지 최소한 국민의장을 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였다.

그러나 자기편이란 이유로 부도덕하고 위선적이며 서울시정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식은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여 서울시장장을 치룬 것은 천만부당한 일로 사료된다.

이렇게 전쟁영웅을 외국정부와 한국정부의 서로 다른 태도를 해외언론은 기이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문재인정권의 잘못된 행동은 자기편이면 아무리 큰 잘못이 있어도 무조건 관대하게 대하는 태도와 잘못된 역사평가와 역사인식에 근본원인이 있다. 문재인 정권은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공적과 과오의 비중을 따져 역사를 평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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