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마당에 널린 기 감꽃 아이가
스크롤 이동 상태바
우리 집 앞마당에 널린 기 감꽃 아이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감꽃

 
   
  ^^^▲ 감꽃이 피어날 때면 그 가시나가 생각난다
ⓒ 감꽃/우리꽃 자생화^^^
 
 

"이야! 노오란 저기 뭐꼬? 감꽃 아이가?"
"우와! 밤새 감꽃이 금까리맨치로(금가루처럼) 노랗게 내리뿟네."
"빨리 초복이 와야 될 낀데..."
"와? 니는 벌시로 소금물에 절인 그 떨감이 묵고 싶나?"

내가 살던 고향집 앞마당에는 아주 오래 된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 말로는 그 감나무가 우리 부모님께서 이사를 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고 하셨다. 처음 부모님께서 그 집에 이사를 올 당시만 하더라도 그 감나무는 초가집 처마와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고, 나이는 스무 살 남짓 했단다.

부모님께서는 해마다 그 감나무에서 진영단감처럼 잘 생긴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느 해부턴가 그 감나무가 해갈이를 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그때부터 감이 점점 작아지더니, 몇 년 뒤부터는 아예 앵두 만한 크기의 작은 땡감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또 그때부터 감이 몹시 떫어지기 시작했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감나무는 우리집 초가지붕의 꼭대기까지 덮을 정도로 키가 컸다. 가지 또한 동산 위에 서있는 오래된 소나무처럼 떡 벌어져, 가지의 절반은 담장 너머로 뻗어 있었다. 자잘한 금이 빼곡히 가 있는 밑둥 또한 마을 어르신들 허벅지보다 훨씬 더 굵었다.

해마다 유월이 되면 그 감나무 가지에서는 노오란 감꽃이 수없이 매달렸다. 우리집 감나무에 매달린 감꽃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진짜 감이 열리는 제법 큰 감꽃, 그러니까 암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감이 열리지 않는 작은 감꽃, 즉 수꽃이었다. 그 감나무에서는 특히 초롱꽃처럼 생긴 그 수꽃이 더 많이 매달렸다.

"우와! 머슨 감꽃이 하룻밤새 이리도 많이 떨어졌뿟노. 마당이 노랗네. 이기 모두 금가리라카모 울매나 좋것노."
"씰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퍼뜩 줏기나 해라. 아버지께서 빗자루로 다 쓸어버리기 전에."
"근데 와 이래 자잘한(작은) 꽃밖에 안 보이노?"
"큰꽃이 많으모 가실(가을)에 감나무 가지가 째지구로(찢어지게)."

 

 
   
  ^^^▲ 감꽃을 주워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었다
ⓒ 감꽃/우리꽃 자생화^^^
 
 

바람이 불지 않아도 감나무는 잊을만하면 노오란 감꽃을 투둑투둑 떨구었다. 우리들이 감꽃을 주울 때도 감나무는 우리들 까까중 머리 위에 감꽃을 투툭, 하고 떨구기도 했다. 우리들은 그럴 때마다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한동안 깔깔거고 나면 눈앞에 감꽃처럼 노오란 현기증이 일었다.

"아, 올개(올해) 감꽃은 와 이래 떫노?"
"감꽃이 떫은 기 아이고 시방 니 마음이 떫은 기 아이가? 내는 달착지근한 기 맛만 좋거마는."
"니 감꽃을 줏어가(줏어가지고) 뭐할끼고?"
"배가 부를 때꺼정(때까지) 묵을 끼다."
"그기 아이고, 그 가시나 목걸이 만들어 줄라꼬 그라제?"
"아~아이라카이."

당시 우리들은 감꽃을 참으로 많이도 주워 먹었다. 하지만 감꽃은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감꽃은 약간 달착지근한 맛이 나기는 했지만 떫은 맛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감꽃을 많이 먹고 혓바닥을 쏘옥 내밀면 혓바닥 전체가 온통 짙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머스마들은 그렇게 주운 감꽃을 하얀 실에 꿰어 머리띠를 만들거나 허리띠를 만들어, 머리에 쓰거나 허리에 차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가시나들은 그 노오란 감꽃을 오색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거나 팔찌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거나 팔목에 차고 다니기도 했다.

"이야! 니 영판 이시신(이순신) 장군 겉다(같다)."
"내는 우떻노? 최영 장군 거치(같이) 보이나?"
"니는 그라고 있으이(있느니까), 똑(꼭)... 뭐 같다."
"뭐 겉은데?"
"안 있더나? 작년에 왔던..."
"작년에 왔더언?"
"팔... 팔... 팔푼이 겉다. 메롱~ 히히히히히."
"뭐? 니 그 자리 안 설끼가? 잡히기만 해봐라, 가만 놔두는가."

 

 
   
  ^^^▲ 감꽃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
ⓒ 감꽃/우리꽃 자생화^^^
 
 

감꽃은 주워도 주워도 끝없이 떨어졌다. 저녁나절이 되면 아버지께서는 또다시 감꽃이 노랗게 깔린 앞마당을 깨끗이 쓸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내다보면 어느새 감꽃이 앞마당을 노랗게 덮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아버지께서 앞마당을 쓸기 전에 서둘러 감꽃을 주웠다.

"아나!"
"이기 뭐꼬? 감꽃 아이가."
"목걸이로 맨들어가(만들어 가지고) 니 한테 선물할라 캤는데, 눈치가 보여서..."
"괘않타. 니 맴(마음)을 내가 오데(어디) 모르나. 근데 이 많은 감꽃을 내한테 다 주고 나모 니는 우짤라꼬?"
"우리 집 앞마당에 널린 기 감꽃 아이가."

해마다 유월이 되면 고향집 앞마당에 서서 밤을 새워 노오란 감꽃을 투둑투둑 떨구던, 오래된 그 감나무가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내미는 그 감꽃을 두 손 가득 받아들고 배시시 웃던 그 가시나, 웃을 때마다 양 볼에 살포시 패이던 그 가시나의 볼우물이 떠오른다. 그 감나무와 그 가시나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