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然)을 통한 합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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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然)을 통한 합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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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 스님 첫 수필집 <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 펴내

 
   
  ^^^▲ 법장 <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 표지
ⓒ 바보새^^^
 
 

"진심이었다. 이제부터 말후를 위한 진정한 공부인이 되리라고 각오하던 마음은. 그 마음 하나로 무지무지 외진 산골로 찾아든 건데 아, 그 외로움과 그리움은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고, 누구도 어째줄 수 없던 혼자만의 현실이었다... 먹물 들인 옷을 입던 맨 처음 오롯했던 마음을 놓치지 않겠다고 날마다 날마다 맹세하며 산다."

해인사 도서관장 및 승가대학 학감을 지내다가 지금은 전남 화순에 있는 모후산 시적암에서 정진 중인 법장 스님이 첫 수필집 <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바보새)를 펴냈다. 이 책은 연(然)으로 시작해서 연(然)을 통해 자기본래의 면목을 되찾는, 한 수도승의 합장의 미학이 연꽃처럼 다소곳이 피어나 있다.

"출가한 첫날 밤, 뒤척이다가 잠이 든 지 얼마 안 되었다. 어인 일인지 목탁소리가 신새벽 하늘을 가르고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와서 깨웠다. 법당에 가야 한다며. 이 날은 무슨 특별한 날이라서 법당으로 다 모이는가 보다‥. 이 날만 특별한 게 아니고 평생을 절 집에 살면서는 그렇게 해야 하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비행을 저지를 용기조차 없었고, 턱없이 감상적이었던 소년. 너무 어린 날 급작스레 맞이해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 그때부터 가없는 우울증에 빠져드는 소년. 가람에 대한, 더우기 불교에 대한 아무런 상식도 없이 무턱대고 출가한 어린 소년은 출가한 첫날 밤을 그렇게 보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법장스님은 출가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줍잖게 불교를 알고 출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르고 오는 게 낫다고. 백지 위에 어떤 색깔을 먼저 칠하느냐에 따라 그 색깔이 돋보이듯이, 차라리 아무 것도 칠해져 있지 않은 마음으로 불교를 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에는 한 수도승의 삶의 자잘한 물결들이 호수처럼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한 사내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급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출가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 출가하여 깨달음을 찾아가는 길에서 마주친 여러 가지 인연들, 그리고 정말 사람이 그리운 산골의 일상생활 등이 너무도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솔직하게? 그렇다. 이 책을 펼치면 으레 풍겨질 것만 같은 향내음이나 목탁소리, 염불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선(善)을 구하라는 그런 어려운 말씀도, 마음을 다스리라는 그런 흔한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 또한 그동안 마주친 인연들에 대해서도, 반듯하게 다듬거나 예쁘게 꾸미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담담하다.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어여쁘게 피어나는 한떨기 꽃송이처럼. 그래서 글이 솔직 담백하다는 것이다. 그 솔직 담백함 속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때묻은 삶이 사실 그대로 살아 꿈틀거린다. 글 곳곳에서 절내음보다 사람내음이 훨씬 더 진하게 풍겨온다는 그 말이다.

<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는 모두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 제2부 '인연이야기', 제3부 '산사에서', 제4부 '운수행자(雲水行者)로 살아간다는 것', 제5부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그것들이다.

표제가 된 '사람이 그리운 산골이야기'는 산골에서의 첫 농사의 실패와 성공을 통한 자연과의 하나됨, 그리고 산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살가운 애정 등이 마치 한폭의 풍경화처럼 그려져 있다. 방울토마토와 풋고추, 배추, 상추 등을 가꾸다가, 심심할 때면 너구리, 다람쥐와 동무가 되어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인연이야기'에서는 수행생활 도중에 만났던 여러 가지 인연의 끈을 한올 한올 풀어헤친다. 신심이 돌부처처럼 굳은 보살, 자식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하는 보살, 남을 위해 헌신하는 처사, 사찰 일을 돕겠다며 산골로 찾아든 고집불통의 시골할매 등. 그리고 북한으로 간 장기수 노인 우용각씨와의 회상도 담겨져 있다.

 

 
   
  ^^^▲ 책 끝에 실려 있는 홍선웅 판화
ⓒ 바보새^^^
 
 

'산사에서'는 산사 내부에서 있었던 우스꽝스런 이야기들과 더불어 산사 주변에서 대자연이 되어 살아가는 산골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저 돈 좀 벌겠어요, 라고 묻는 당돌한 보살, 면도기로 하는 삭발행사, 장삼 손질하는 날의 에피소드, 49재 지내는 날, 차와의 대화, 아귀와 발우공양, 썰렁한 고추 이야기 등.

'운수행자(雲水行者)로 살아간다는 것'에는 어린시절부터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이 차분하게 그려져 있으며,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서는 행복에 대한 에피소드와 함께 뾰쪽한 인생사와 사회에 대해 주장자를 내려치기도 한다. 하지만 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아름다움의 끄나풀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출가자들은 사람과의 인연에만 머물지 않고 온 우주와 교감하는 인연을 맺는다. 그래서 우주로 곧장 나아가 자기본래면목으로 돌아간다. 해인사 도서관장을 지낸 법장스님의 글들은 단순한 문자향을 넘어서 아련한 그리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고, 때론 탄탄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삶과 깨달음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현응스님, 불교신문사 사장)

책 곳곳에 실려있는 흑백사진도 눈요기 거리다. 그와 더불어 책 마지막 페이지에는 판화가 홍선웅씨의 '선재동자가 보현의 행을 구하다'라는 내용의 먹판화가 실려 있다.

 

 
   
  ^^^▲ 법장 스님
ⓒ 바보새^^^
 
 

법장스님은 누구인가?
농사를 지으며 수도에 정진하는 스님

"농익은 전라도 사투리 속에 고향과 어린 시절의 서정이 곳곳에 배어있는 스님의 글은 외딴 시적암 텃밭에서 운력(運力)의 가르침을 키워나가며 자연에 대한 선승의 무애한 사랑의 언어로 다시 피어난다."(홍선웅, 판화가)

1954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법장 스님은 1973년에 백양사로 출가하여, 해인사 강원(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전국의 여러 절에서 오랫동안 수행생활을 했다.

1999년에는 시무크지 <시와진실>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기도 한 스님은 특히 해인사에 오래 머물렀다. 해인사 도서관장 및 승가대학 학감 역임. 지금은 전남 화순 모후산 시적암에서 정진과 더불어 농사를 짓고 있다.

"21세기라고 하지만 저는 19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5년 간 거처하고 있는 시적암에는 전기뿐만 아니라, 전화 같은 것이 아예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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