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오천원에도 즐거워지는 쭈그렁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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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오천원에도 즐거워지는 쭈그렁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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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82>고재종 "파안"

 
   
  ^^^▲ 멍석딸기오손도손 나누는 정이 그립다
ⓒ 우리꽃 자생화^^^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그려!

이 시를 읽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니 서울 올라가다가 신작로 가에 동네 노인들이 보이거든 5천원 짜리 한 장 드려라. 막걸리라도 사 드시게."라는 어머니의 당부 같은 그 말씀이.

지금은 모두 창원공단 속으로 사라졌지만 내가 태어난 자란 고향 마을 입구에는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구멍가게는 말 그대로 만물상회였습니다. 아이들의 학용품에서부터 눈깔사탕과 건빵, 라면땅을 비롯한 과자류, 콩나물과 두부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반찬거리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의 주막까지 겸하는 그런 가게였습니다.

그 가게에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사람들이 들락거렸습니다. 또한 가게 안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마을의 쭈그렁 노인들이 시커먼 나무 탁자를 마주한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 탁자 위에는 굵은 왕소금도 놓여 있었습니다. 간혹 조그만 간장접시에 김치가 쬐끔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그 "마을 주막에 나가서/단돈 오천 원"을 내놓으면 "소주 세 병에/두부찌개 한 냄비" 를 시키고도 거스럼 돈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술과 안주를 내고 나면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그것 나눠 자시고/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허허허/허허허/큰 대접 받았네그려!"

그랬습니다. 그때 내 어머니께서는 그걸 아시고 저더러 동네 노인들에게 오천 원을 드리고 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서울로 올라가는 그날은 별스레 동네 노인들이 한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 어머니의 당부를 끝내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고재종 시인은 지금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보따리를 싸고 대처로 떠난 그 고향.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고향 들판에 소처럼 묵묵히 눌러앉아 소처럼 순한 눈망울을 굴리며 소처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주처럼 싸하고 정겨운 시를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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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자 2003-06-30 20:44:41
단돈 오천원의 나눔으로 쭈구렁 노인들 하루가 참 행복했겠네요.
그옛날 시골 자그마한 면소재지에서 서울로 유학갔다가 방학이
되어서 내려오면 동네 어른들 찾아 다니며 인사하고, 인사받는
어른들은 암 우리 마을 자랑이지 하면서 시렁위에 놓아 두었던
떡이랑 곶감이라 아끼지 않고 내놓던 그 후한 인심 그리고 인재
육성에 대한 욕심 다 서로 섬기고 섬김을 받으면서 우리 고유 유교
교육에서 사람 냄새나던 그시절 생각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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