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시꽃 ⓒ 이종찬^^^ | ||
별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
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 살이 터져 詩가 빛날 때
더 이상 詩를 써서 詩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시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시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시인은 "별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는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 있는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이 쓴 시를 통해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한때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인은 똥오줌도 누지 않고 이슬을 마시며 학처럼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은 시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허무의 늪에 퐁당 빠져 시가 무엇인지, 시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이런 시만 읽었던 모양입니다. 당장 끼니가 없어 가족 모두가 굶어죽어가고 있어도 하늘은 드없이 푸르고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다고 소리치는 시인, 거리에는 최루탄 연기가 가득하고 학생들이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어가고 있어도 헛된 사랑타령이나 하고 있는 그런 시인, 낭만과 허무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인이 쓴 그런 시들만 읽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시인은 무엇을 쓰야 하는 사람입니까. 시인은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며 이 세상의 쓰린 상처를 감싸매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춥고 가난한 시인의 "언 살이 터져" 마침내 한편의 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빛 속에는 이 세상의 온갖 고통과 절망과 상처가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또다른 시인에게 목 터져라 외칩니다. "더 이상 詩를 써서 詩를 죽이지 말라"고. 그렇습니다. 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고 저만치 비켜서서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시들을 쓰고 있다면 이 세상이 어찌되겠습니까. 시를 읽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 하고, 입을 막는 것과 꼭같지 않겠습니까.
시인이여! 눈을 뜨라. 그리하여 이 세상을 향해 큰 기침을 하라. 목울대가 그렁그렁하도록 맺힌 한맺힌 피울음이 저절로 터져나올 때까지. 그대가 저만치 비켜서서 나 몰라라 눈을 감고 있을 때, 이 세상 곳곳에서 시인을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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