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이 흔들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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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이 흔들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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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이름> 개망초꽃

 
   
  ^^^▲ 무리지어 하얗게 피어나는 개망초꽃
ⓒ 이종찬^^^
 
 

꽃이 피었네요
당신이 떠나가신 이 길 곳곳에
하이얀 눈물꽃이 활짝 피었네요
길이 흔들리고 있네요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축 처진 어깨로 걸어오는데
참으로 사람이 모질다고
이 논둑길 곳곳에
하이얀 눈물꽃이 흔들리고 있네요
<이소리 '눈물꽃' 일부>

그날은 하늘이 몹시도 맑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바라보던 그 푸르른 하늘이 아니었다. 눈물로 가득 찬 푸르른 하늘은 금방이라도 펑펑펑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눈물 속으로 가라앉힐 것만 같았다. 푸르른 하늘에서 이글거리는 태양마저 금방이라도 불을 토하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활활활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그날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주남저수지에서 어머니의 꽃상여를 태운 흰색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아니, 흰색이 아니라 투명한 무지개가 ‘어어 어어어 어기넘차 어어’ 라는 구성진 목소리를 내며, 이승과 저승의 벽을 허무는 요령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날은 어머니 상여를 메고 가는 길 곳곳에 밥풀 같은 하이얀 개망초꽃이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영원히 안식을 취할 산으로 가는 좁은 논둑길 곳곳에서 개망초꽃이 하얗게 울고 있었다. 그래, 그 개망초꽃. 어머니의 꽃상여에 매달린 그 하얀 꽃, 눈물꽃은 그렇게 어머니의 꽃상여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꽃, 개망초꽃. 그래, 저 개망초꽃만 바라보면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른 새벽부터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논밭으로 나가시던 어머니, 어머니가 걸어가시던 신작로 주변에 무더기로 피어나 흔들리던 그 개망초꽃.

그래,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어머니의 형제는 꼭 세 분뿐이었다. 그 중에 두 분은 외할아버지께서 양자로 삼은 외삼촌(큰외삼촌은 돌아가셨다)이며, 또 한분은 이모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한 핏줄을 나눈 사람은 지금도 경남 의령에서 살고 계시는 어머니의 언니 한분뿐이었다. 살아생전 어머니는 그렇게 외롭게 살다가 가셨다.

 

 
   
  ^^^▲ 어머니꽃 눈물꽃
ⓒ 이종찬^^^
 
 

어머니의 고향은 경남 창녕군 길곡면 길곡리이다. 나는 꼭 한번 어머니가 태어난 그 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서울에 살 때 문학기행을 왔다가 창녕을 지나치는 길에 정말 우연히 어머니의 고향에 잠시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그 당시 내가 바라본 어머니의 고향은 그야말로 두메산골이었다.

“아, 지금이야 억수로 바뀌었다 아이가. 십년 전만 해도 길곡리 산다카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카이.”

그래, 나의 어머니는 그 길곡리라는 지독히도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나의 어머니는 단발머리 나폴거리는 소녀시절까지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를 따라 창원으로 이주하신 것 같았다.

나의 어머니의 형제는 처음부터 언니 한분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빠도 동생도 많이 태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그 지독한 가난 땜에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했다. 겨우 눈만 말똥거리며 살아남은 일부 형제들은 각종 질병 땜에 죽었다고 했다. 또한 그 모든 것을 딛고 용케 자란 일부 형제는 난리 땜에 죽었다고 했다.

그랬다. 그 당시에는 우리 어머니 가족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머니처럼 그런 아픈 상처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 그 당시 사람들은 살림이 몽땅 거들 났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살림만 거들 난 것이 아니라 가족마저 몽땅 거들 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래, 어머니를 땅 속에 묻던 그날, 여럿이서 무덤을 파는데, 유독 서울에서 내려온 공광규 시인이 가장 열심히 내 어머니의 무덤을 팠다. 그래, 지금도 공광규 시인이 파던 그 삽날, 그 삽날에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던 그 눈물빛 햇살이 생각난다.

57세로 이 세상을 훌쩍 떠나가신 어머니를 묻고 돌아오는 길, 그 논둑길 곳곳에 눈물빛으로 하얗게 피어나 있던 그 꽃. 그 꽃이 개망초꽃이었다. 아아, 오늘도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개망초꽃으로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어머니. 아아, 오늘도 개망초꽃으로 피어나 하얗게 웃으시는 어머니.

개망초꽃... 어머니꽃... 눈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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