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그늘은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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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그늘은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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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77> 이문재 “노독”

 
   
  ^^^▲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 오디/우리꽃 자생화^^^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문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길... 사람에게는 누구나 주어진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때론 가시밭길이기도 하고, 때론 잘 다져진 황토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은 걷기 싫어도 걸어가야만 하고, 또한 스스로 걸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그대로 멈추어 서 있는 것도, 정겹게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닙니다.

걸어도 걸어도 길의 끝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그 길의 끝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철학관에 가서 사주팔자를 보기도 하고, 전국의 용한 점쟁이를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결코 그 길의 끝은 공기처럼 볼 수가 없습니다.

시인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의 끝을 보고 싶어 서둘러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날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던 길에서 잠시 내려와 몸과 마음을 쉬고 싶습니다. 그래. 여기는 내가 가는 길의 끝자락 어디쯤일까? 시인은 잠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차분히 되돌아 봅니다.

그때 문득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길을 닮아 문 앞에서/문 뒤에서 멈칫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을 바라보며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등불 이리 환한가/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라며 자신의 모습을 타인처럼 들여다 봅니다.

아니, 그동안 허우적 허우적 길을 달려온 내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때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 틈일 때/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파란 독 한 사발"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빛은 어둠의 그늘이요, 어둠은 빛을 밝히는 등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 시인의 마음 속으로 슬며시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들어옵니다. 그 길은 그동안 내가 떨구어낸 파란 독으로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면서 나즈막히 시인에게 속삭입니다. "함부로 길을 나서/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알겠느냐고. 천기누설을 하고 싶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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