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을 사랑한 자매의 슬픈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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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을 사랑한 자매의 슬픈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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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등나무 마을"

 
   
  ^^^▲ 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 등나무/경상북도^^^
 
 


"혹시 요즈음 전설따라 삼천리라는 그런 글을 써능교?"
"아, 아닙니다. 그 나무도 천연기념물이라서..."
"그라모 안강 옥산리에 있는 독락당 중국 주엽나무에도 가야 되것네?"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이 찌뿌드드해지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올 봄에는 사흘이 멀다하고 비가 내렸다. 덕분에 농가에서는 모내기 물대기에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저 보리밭이 문제다. 모판의 모가 더 자라기 전에 어서 보리타작을 마치고 논을 갈아엎어 모를 내야 할 텐데.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등나무 마을을 찾아가는 길목 곳곳은 온통 마악 심은 모를 촐싹이고 있는 들판이다. 그래. 이 들판은 정겨운 내 고향의 풍경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마악 논흙으로 곱게 단장한 논배미를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아버지의 삽질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퍼뜩 콩 안 심고 뭐하노?"
"배... 뱀이 있다 아입니꺼."
"오데? 이거는 물뱀 아이가. 고마 후차뿌라.(쫓아라)"
"그라다가 물리모 우짤라꼬예."
"까딱없다. 물뱀이 오데 독이 있더나."

논배미에 꺼뭇꺼뭇한 재가 일정한 간격으로 뿌려져 있는 걸 보니 콩을 심은 모양이다. 그래. 모내기를 하기 전, 아버지께서는 늘 논배미를 삽으로 반듯하게 단장했었지. 그리고 며칠이 지나 논배미가 제법 단단해지면 우리들은 부엌칼을 들고 나가 논배미를 푹푹 찔러 콩을 심었고….

논배미 콩심기는 간단했지. 먼저 칼로 논배미를 찔러 흙을 일정하게 벌린 뒤 그 자리에 콩 3~4개를 집어넣고 꺼뭇한 재를 올려놓으면 그만이었어. 그리고 모내기를 할 때면 이미 콩이 싹을 틔워 떡잎 두 장을 내밀고 있었지. 그 콩 때문에 우리들은 모단을 나를 때 몹시 신경을 써야만 했고.

근데 이곳에서는 아마도 모내기를 마친 뒤 콩을 심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도 두 개의 떡잎이 올라온 콩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저만치 왜가리 한 마리가 논바닥을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다. 순간, 왜가리의 긴 부리가 날쌔게 논바닥을 향한다. 이내 왜가리의 긴 부리에서 무언가가 파다닥거리는가 싶더니, 긴 목을 타고 꾸울꺽 삼켜진다.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는 옛 서라벌 점량부에 속했던 땅이다. 나이가 4백살 정도 됐다는 등나무가 있는 마을은 경운기 한 대가 겨우 비켜설 수 있는 비좁은 농로 끝에 엎드려 있다. 금방이라도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듯하다. 그래. 저 마을 입구를 가리고 있는 저 숲이 바로 자매의 애틋하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가 서려있는 등나무숲이 아닌가.

마을 입구에는 등나무 넝쿨과 어우러진 거대한 팽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그 옆에는 한때 이 마을 사람들의 빨래터가 되었음직한 실개천이 졸졸 흐르고 있다. 그 실개천 옆에는 각각 2그루의 등나무가 1채의 농가를 경계로 삼아 서로 팽나무를 끌어당기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한 사내를 두고 두 여인이 머리채를 쥐어잡고 마구 싸우는 듯한 형상이다.

 

 
   
  ^^^▲ 홍화와 청화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서려 있는 등나무(천연기념물 89호)
ⓒ 경상북도^^^
 
 

"저 팽나무가 그리도 좋을까?"
"그라이 두 자매가 죽어서까지 저러고 있는기 아니겠능교?"
"옛날에는 이곳을 용림이라 부르며, 임금이 신하들을 이끌고 사냥을 가던 곳이라면서요? 그리고 이곳에 깊은 연못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 등나무를 용등이라고 하니더. 그라고 이 등꽃을 말리가(말려서) 신혼금침에 넣어주모 부부 사이에 금슬이 좋아진다고 하니더."

마치 아카시꽃에 연보랏빛 물감을 물들인 것 같은 연보랏빛 등꽃이 전설처럼 길게 매달려 있다. 한아름 따고 싶다. 그래. 부부 사이가 벌어진 사람이나, 사랑이 식어가는 연인들이 이 등나무 잎사귀 삶은 물을 마시면 금세 사랑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단다. 그래서 가끔 이 등나무 잎사귀를 따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한시라도 떨어져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듯이 팽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이 등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이 마을에 살았던 청년 '낭도'를 죽도록 사랑한 '홍화'와 '청화' 자매의 슬픈 사랑이야기. 아하! 그래서 각각 두 그루씩 마주 보며 사랑하는 '낭도' 팽나무를 그렇게 끌어안고 있구나.

신라시대 서라벌 점량부의 연못 옆 한 농가에는 마음씨 착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아리따운 두 딸이 있었다. 큰딸의 이름은 '홍화'였고, 작은딸의 이름은 '청화'였다. 홍화와 청화가 각각 18세, 16세가 된 그해 한가위, 둘은 나란히 마을 청년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경기장에 구경을 갔다.

홍화와 청화는 그 경기장에서 용맹무쌍하면서도 키가 크고 잘 생긴 청년 낭도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홍화와 청화는 낭도라는 그 청년을 사모하게 되었다. 청화와 홍화는 날이 갈수록 그 청년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라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젊은 낭도도 전쟁터로 나가야만 했다. 홍화와 청화는 행여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낭도를 위해 제 각각 꽃다발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란 말인가. 낭도가 나타나자 홍화와 청화가 다같이 낭도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날 자매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낭도가 전쟁터로 떠나고 나자 자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근데 이 일을 어쩌랴. 얼마 후 낭도가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만 것이었다. 청화와 홍화는 늘 같이 놀았던 그 연못가에 나와 하늘을 우러러 원망하며 울었다.

그리고 자매는 서로 꼭 껴안은 채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 연못가에는 두 그루의 등나무가 제 각각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그런데 이 일을 또 어찌하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낭도가 훌륭한 화랑이 되어서 돌아온 게 아닌가. 마을에 도착한 낭도는 자매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애통해 하다가 자신도 그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뒤 연못가에는 팽나무도 한그루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등나무는 마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완성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 팽나무에 얼키고 설키기 시작했다. 홍화와 청화 자매의 낭도에 대한 애달픈 사랑은 죽은 뒤 등나무가 되어 그렇게 완성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두 자매와 낭도가 빠져 죽었다는 그 연못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이 등나무의 수령이 400년이라고 하지만, 전설로 미루어 볼 때 수령이 7~800년 가까이 되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이 등나무는 둘레가 20.4m이며 높이는 17m나 된다.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

"건곤이룡지수목(乾坤二龍之樹木)이라."
"그건 무슨 뜻이죠?"
"건은 하늘, 곤은 땅 아인교. 그라이 두 마리의 용이 한 나무를 지아비로 삼고 있다는 그런 말이니더. 쉽게 말하모 두 여인이 한 사내와 부부의 연을 맺고 있는 나무라는 그런 뜻이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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