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문구 팬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1980년 5월 16일 우리 회사 직원중 한 사람인 조 수복 (曺 秀福)을 광주시 금남로에 있는 중앙극장 근방에 있는 대리점에 납품하러 보냈다.
그 직원은 우리 회사의 로고가 찍혀 있는 1톤 화물차로 금남로에 가서 물건을 내려주고 17일 오후 6시경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서 동 광주 인터체인지를 타기 위해서 풍향동에 있는 영광 교회와 국일 가스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숨어있던 일명 시민군이라는 작자들이 우리 차를 가로막고 운전기사를 무작정 하차 시켰다.
우리 기사인 조 수복은 시민군 들에게 잡혔을 때 우리 회사와 금남로에 있는 대리점에 물건을 납품한 거래 명세서와 장부를 보여주며 물건 납품하고 서울로 상경하는 중이라고 충분한 설명을 하였다. 그런데도 시민군인가 하는 작자들은 17일 오후부터는 누구도 광주를 벗어날 수 없다며 조수복이를 강제로 다시 금남로로 끌고 가서는 무작정 몽둥이로 얻어맞았다.
17일 밤이 새도록 얻어맞고는 18일 오전 10시경 다리가 골절되어 있는 사람을 병원에도 데려 가지 않고 한 건물의 계단에다 내어놓았다.18일날 금남로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조 수복이를 돌보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18일날 오후 2시경에 우연히 한 사람이 그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계단을 올라 가다가 조 수복이를 보고 그 사람이 조 수복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조수복이가 병원에 도착 했을때는 뼈가 골절 된지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골절 부분을 이어주는 수술을 하지 못했다.
아마 17일 밤에 뼈가 골절된 상태에서 12시간 이상을 지나다 보니 이미 신경과 인대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은 조 수복이는 다리를 살리지 못했다. 인대가 너무 많이 손상을 입어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18일은 광주에서 많은 부상자가 생기는 바람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를 못하고 응급 조치만 받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평상시 같으면 충분한 시술과 치료가 가능했겠지만 그때는 그럴 사황이 아니었다. 이건 사람으로서는 할수 없는 잔악한 행위이다. 결국 조수복이는 한달이 지난 후에야 광주를 벗어나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5.17일은 진압군이 광주에 진입은 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먼저 광주 시민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광주는 5.17일 오후부터는 자칭 시민군 외는 어느 누구도 광주를 벗어나지를 못했다. 5.18 사태 청문회에서도 나왔듯이 군인이 진압에 직접 적으로 개입한 시간은 5.18일이 최초였다.
광주는 이미 5.17일 부터 자칭 시민군이라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에 의해 광주는 통제되고 있었다. 이게 1980년 5월 18일의 진실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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