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 없는 나무가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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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품 없는 나무가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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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72> 도종환 “가죽나무”

 
   
  ^^^▲ 사람은 저마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 인동/우리꽃 자생화^^^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안다.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 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를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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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별의별 희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자기의 분수도 모른 채 마구 우쭐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문득 이런 말이 툭, 하고 비어져 나옵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근데 이 말은 대체 누가 한 말일까요?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 아닙니다. 스크라테스는 이 말을 자신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았던 분입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었던 글이라고 합니다.

3세기 전반경, 고대 그리스 철학사가였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라는 분은 이 글을 그리스 7현인 중의 한 사람인 탈레스가 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탈레스와 같은 7현인의 한 사람인 스파르타의 킬론이 쓴 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처음 쓴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치가 않다는 그런 말입니다.

참고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란 분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생활과 의견 및 저작목록>이란 책을 10권이나 저술한 그리스 출신의 유명한 철학사가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의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또한 일생을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철학의 씨앗으로 삼았다는 그리스 아테네 출신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우주만물을 창조한 절대자인 신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무지(無知)를 아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 가장 중요하다, 라고.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찌하여 상대편의 깊은 속내를 환히 꿰뚫어 볼 수가 있겠습니까. 불타는 입멸 전, 제자들에게 "나 자신을 등불로 삼아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속의 "나"는 부처 자신이기도 하고, 부처를 따르는 제자들의 자화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한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기쁘고/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할 줄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 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제 분수도 모르면서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어리석은 나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나무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잘라줄 마음 자세"를 "언제나 가지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아무런 볼품없는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에 그런 희생을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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