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국내 영화시장의 명암
상반기 국내 영화시장의 명암
  • 이준목
  • 승인 2003.06.1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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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된 투자심리, 대안은 오직 흥행

^^^▲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사진
ⓒ 2003 SIDUS^^^
요즘 충무로의 분위기는 대단히 어수선하다. 현재 몇몇 흥행작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국내 작품들의 부진한 성적으로 영화 시장이 침체되어있고, 최근에는 스크린쿼터 문제까지 다시 도마에 오르면서 영화계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현재 50퍼센트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국내 영화의 시장 점유율(48.3% 2002년 통계)도 거품이라는 자성의 소리가 높다. 작년부터 계속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잇단 재난은,대규모 상업영화에 대한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고, 조폭과 코미디등 진부한 장르의 재탕삼탕은 국내 영화계의 부실한 기획력과 마케팅 구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여기에, 국내 스크린 스타들의 과대포장된 '몸값 거품론'도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영화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관객의 눈높이를 따라잡는데 소홀했다는 것이었다. <질투는 나의 힘>이나 <지구를 지켜라>같이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은 극장잡기도 어려운 현실속에서 오래가지 않아 간판을 내려야했고, 대규모 자본과 스타시스템을 내세운 영화들은 완성도면에서, <쉬리>이후 계속된 '안정된 드라마'와 '화려한 볼거리'의 조화라는 난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국내 기대작들의 상반기 성적표

상반기 국내 영화중에 눈에 띠는 흥행작은 단연 <살인의 추억>이다. 올해 거의 유일하게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모두 인정받은 이 작품의 '대박'은 침체된 국내 영화시장에 가뭄끝의 단비와도 같았다.독특한 소재, 배우들의 열연, 탄탄한 내러티브가 돋보이는 이 작품의 흥행은 역설적으로 그간 국내 영화팬들이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얼마나 굶주려왔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살인의 추억><와일드 카드>같은 형사물이 올해 새롭게 등장한 인기 트렌드였던데 비하여,국내 영화계의 꾸준한 효자 장르인 코미디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선생 김봉두>의 분전이 돋보였다.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아류라 할만한 <동갑내기..>는 가볍게 보고 즐길수있는 전형적인 하이틴 코미디물로,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선생 김봉두>는 포스트 박중훈을 대표하는 코미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차승원의 호연이 돋보이는 유쾌한 가족영화였다. 적당한 소동과 유머속에 결국은 화해와 용서로 매듭지어지는 계몽형 코미디의 전형이지만, 제법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반대로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들의 잇단 실패도 두드러졌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국내 영화계에서 가장 호소력있는 장르의 하나로 알려졌던 정통 멜로 영화들의 잇단 참패다.2월에서 5월까지 차례로 개봉했던 <국화꽃 향기> <하늘 정원><별><화성에서 온 사나이>등은 하나같이 '장르의 퇴행''뻔한 신파의 답습'이라는 악평과 함께 관객에게도 철저히 외면받았다.

멜로 영화는 90년대 중후반 한국 영화 르네상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르다.<접속><8월의 크리스마스><미술관 옆 동물원>등으로 이어지던 국내 멜로의 신경향은, 신파와 도식적인 로맨스 구조에의 집착을 덜어내고, 동세대 젊은이들의 정서와 라이프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리얼리즘 멜로로 크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개봉한 작품들에서는 이런 정서를 읽을수 없고, 오히려 장르의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강국인 우리 나라에서, 시한부 인생과 주인공의 죽음,순수하다 못해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 등은 이미 TV에서도 지겹게 보는 설정들이다.빠른 정보와 급변하는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관객들이 구태의연한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위의 작품들이 각각 장진영,안재욱,이은주,신하균,유오성,김희선 등 나름대로 국내에서 인정받은 상업적 스타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때, 기획과 시나리오의 함량미달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주연배우들이 대개 전작과는 상반되는 이미지에 도전했으나, 관객의 이질감을 좁히지 못한 것도 치명타였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작품들의 배경이 대개 가을-겨울인데 비하여 분위기상 맞지 않는 봄-여름 시기에 개봉한 것도 진부한 느낌을 주는데 한몫했다.

스타시스템이 더 이상 흥행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4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흥행 보증수표한석규의 <이중간첩>이나, 작년(가문의 영광) 이후 새로운 톱스타로 떠오른 김정은의 <나비> 역시 별다른 관객 동원력을 보여주지 못한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위의 두 작품은 배우들이 스스로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부실한 연기와, 무거운 주제에 짓눌린 듯 호소력없는 이야기 전개로 관객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한국영화, 전열을 가다듬어라

스타와 대자본을 투입하고도 흥행 참패가 이어지면서 누적된 손해는 당연히 제작사들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이것은 <살인의 추억>같이 특정한 한두 작품의 흥행 성공으로 반전시킬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특히 상반기 관객동원 1.2위를 기록한 <살인의 추억>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모두 같은 제작사(CJ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라는 것은, 오히려 시장 구조의 독과점과 불균형을 두드러지게 한다.

여기에 <매트릭스-리로리드>등 헐리우드 대작들의 물량공세가 이어지면서 중소규모의 국내 영화들은 수익에 민감할수밖에 없는 극장에서 거의 내몰리다시피한다. <질투는 나의 힘><동승><지구를 지켜라><보리울의 여름> 등은, 상업 영화들의 살발한 생존 경쟁속에서 대부분 1,2주를 넘지 못하고 뚜껑을 닫아야 했다.

현재 다수의 국내 기대작들이 투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기획상의 한계로 제작이 엎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대규모 자본이 요구되는 대작 상업 영화들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권상우,김정화,이영진등을 일찌감치 캐스팅해놓고 촬영 도중에 중단되어버린 SF 액션<데우스 마키나>, 국내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안성기,소찬휘 주연의 뮤지컬 영화 <미스터 레이디>, 해외 올로케로 촬영이 예정되었으나 사스(SAS)등으로, 모든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감우성 주연의 <알 포인트(R-POINT)>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나마 기획단계에서 유보된 작품들은 희망이 있지만, 한창 촬영중이거나 촬영을 거의 완료해놓고도 투자자를 얻지 못해 완전 폐기될 처지에 놓인 영화들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투자자들이 저비용 고효율의 안전한 코미디 영화 사니리오만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문제의 본질적은 해법은 국내 영화의 상업적 경쟁력을 다시 증명해보이는 길 뿐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개봉하고 있는 <장화,홍련>을 포함하여 하반기에 선보이게 되는 국내 기대작들의 상업적 성취가 주목되는 것이다.

다행히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이미 검증된 감독들의 후속작이 많으며, 완성도 면에서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장르도 멜로에서 공포,사극까지 매우 다양한 편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가을을 전후하여 헐리우드 대작들과의 경쟁에서 현재 개봉 대기중인 우리 영화들이 선전해 준다면, 경색된 시장의 자금 유통도 일단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살인의 추억>의 흥행이 주는 의미는, 국내 제작사들의 조폭,코미디위주의 제작 편향과 대자본 영화에 대한 위축된 투자 심리를 조금이나마 이완시키는 희망을 주었다는 점이다.더불어 규모보다는,내실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라면 언제든 국내 영화도 관객들을 끌어모을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회복시켜준 점도 돋보인다.

하반기 영화시장, 국내 영화의 기대작들이 상반기의 부진을 딛고, 양과 질에서 모두 풍성한 성과를 올릴수 있을지를 한번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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