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증언', 묻혀진 진실을 찾아서
'또하나의 증언', 묻혀진 진실을 찾아서
  • 편집부
  • 승인 2002.08.27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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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베트남전 양민학살'기사를 말한다(2)

<한겨레21>의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캠페인은, 그동안 '아무도 꺼내려 하지 않았던 문제를 제기'했다는 측면에서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앞선 글을 통해 지적하였듯이 그 접근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않았다.

<한겨레21>은 다만 '의혹'에 불과할 뿐인 내용을 '충격적인 학살의 실상'이라는 소설로 재구성하므로써 일반인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하였다. (관련기사 : '양민학살'인가,'양민학살 의혹'인가?)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한겨레21>의 선동적인 접근 방식은 거의 매호에 걸쳐 표지와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자극적인 타이틀 몇 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 '야누스의 얼굴', '아! 몸서리 쳐지는 한국군',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죽였다', '총성 소리만 듣고도 보복', '베트남 소설가가 본 학살', '양민학살 폭로는 험한 일!'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자-베트남전 양민학살, 그 악몽 청산을 위한 성금모금 캠페인'

그러나, '용서를 빌자'면서 <한겨레21>이 '성금모금 캠페인'까지 하고 있던 그 악몽의 '부끄러운 역사'는 실은 '역사'라기보다는 일방의 악의에 찬 허구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적군(전쟁당시)'의 주장과 증언에만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캠페인을 시작한지 반 년이 넘도록 <한겨레21>은 '피해자'로 규정된 한쪽의 증언과 주장만으로 이뤄진 '시나리오성' 기사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한겨레21>로서도 이 점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기사의 신빙성을 높이고 캠페인의 효과적인 전개를 위해서는 '가해자'인 한국군의 증언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것은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캠페인을 계속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증언자'를 찾기 위해 <한겨레21>은 '전담 취재팀'을 꾸렸고, 3개월 동안의 추적 끝에 결국 확실한 '성과' 하나를 올리기에 이르렀다. '문제'의 김기태 중령을 만났고 '한국군의 증언'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 '부끄러운 역사를 증언하다.'

김씨의 증언은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캠페인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 증언은 <한겨레>의 전사적인 지원을 받으며 전 언론매체를 통해 대서특필되었고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해외언론에 '한국군 베트남 양민학살' 건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런 사정을 <한겨레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때까지는 피해자의 일방적 증언만 있을 뿐이었다. <한겨레21>은 전담 취재팀을 꾸려 가해자인 한국군 참전군인을 상대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석달만인 올 2월, 30여명을 추적한 끝에 해병 청룡여단 2대대 7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김기태(당시 31살) 예비역 대령을 만나는 성과를 올렸다.

김씨는 “66년 11월 베트남 중부지역 쿠앙응아이 선틴현 지역에서 베트콩 소탕작전(일명 용안작전)을 수행하던 중 비무장 청년 29명을 사살하는 등 양민희생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베트남전 종전 25돌을 앞둔 4월27일치 <한겨레21> 305호 '표지이야기'에 '베트남전 참전 중대장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내용은 <한겨레> 1면을 비롯해 등 해외언론에 잇달아 소개되며 파장을 일으켰다.

- 고엽제 전우회, '한겨레21' 보도에서 난동까지...00/06/27<한겨레신문>

이처럼 김씨의 증언은 <한겨레21>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캠페인에 있어 중요한 터닝포인트에 해당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 증언을 계기로 그때까지 다만 일방의 주장을 전할 뿐이던 캠페인은 신빙성이라는 절대적인 근거를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씨의 증언이 없었다면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시나리오가 그토록 강한 힘을 얻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 '증언'이 왜곡 보도된 것이라면? <한겨레21>에 실린 '증언' 기사의 내용이 기획의도에 맞춰 심히 왜곡된 방식으로 기술된 것이라면?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지난 5월 중순, 우연히 위 김기태 중대장의 또다른 인터뷰 기사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개인 홈페이지 한 구석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놓여 있는 그 기사를 읽어내려가면서 위와 같은 의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한겨레21> 기사에서 다루어진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이 담긴 '김씨의 또다른 증언'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 또하나의 증언, 묻혀진 진실을 찾아서

<전우신문사> 회장실에서 이뤄진 그 인터뷰 기사는 <한겨레21>에서 보도한 증언 내용 하나하나를 시종일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참고 : [청룡해병 제2여단 제7중대장의 '다른 고백'] - <한겨레21>'고백' 중대장의 취재당시 상황 증언)

그 인터뷰 기사를 보며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우선 놀라야 했다. 하나는 동일한 사람에 의한 증언이 어떻게 이렇듯 완전히 다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토록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 기사가 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그렇게 방치되어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실 <한겨레21>의 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 김씨의 또다른 그 인터뷰 기사는 <한겨레21>의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캠페인에 치명적일 수 있었다. '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캠페인이 일반인의 관심과 국내외 언론의 일대 주목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거의 전적으로 김씨의 증언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렇듯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 또다른 증언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개인 홈페이지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곳은 군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홈페이지였다. 다른 하나의 증언이 국내외 언론의 일대 주목을 받으며 일반인에게 핫이슈로 떠올랐던 데 비해 다른 또하나의 증언은 또 그렇게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어야 했다는 사실은 선듯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씨의 또다른 증언을 담은 그 인터뷰가 이뤄진 날짜는 2001년 1월 18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 홈페이지에나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2개월 반이 지난 3월 말이 다 되어서였다. 또한 그 인터뷰는 분명히 <전우신문> 회장실에서 이뤄진 것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전우신문>에조차도 실리지를 않았다.

이것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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