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고난의 길을 자처하려는가?
대종상, 고난의 길을 자처하려는가?
  • 이준목
  • 승인 2003.06.14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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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대종상영화제, 그들만의 쇼를 중간 점검한다

^^^▲ 제40회 대종상영화제 개막식 무대배경
ⓒ daejongsang.com^^^


얼마 전에 폐막된 깐느영화제는 기대를 모았던 유명 감독들이 모두 약속된 날짜에 신작을 출품하지 못했고, 전시용으로 채택된 다수의 영화들이 수준 미달이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 중 하나라고 자부하던 깐느의 2003년은 실패한 영화제라는 오명 속에 마감해야 했다.

올해 40회를 맞이하는 대종상 영화제를 지켜보면, 유감스럽게도 시작도 하기 전에 올해 깐느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출품작 리스트에서 <오아시스>,<취화선>,등등 검증 받은 수작들의 목록이 빠져있고, 부문별 후보들을 놓고는 벌써부터 선정 기준에 논란이 일고있다.

언론과 네티즌의 냉소 어린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데도, 집행위는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오히려 영화인과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등 내실을 다질 생각보다 '헬기를 이용해서 사회자를 공수하고', '호화 벤츠 10대로 몸값 비싼 배우들을 모셔오는' 따위의, 일반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겉멋 이벤트에만 시선을 빼앗기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영화제인가? 깜짝쇼인가?

대종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이유는 지난 기사(수난의 대종상, 올해는 명예회복 할까?)에서 밝혔듯이 공정성에 대한 신뢰감의 상실이다. 올해는 일반인 100명을 영화제 예심 심사위원들로 참여시키며 심사과정의 불투명성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유감스럽게도 영화팬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듯 하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예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당사자들조차 자신들의 심사가 어떤 방식으로 결과에 반영되는지 알 수 없었고, 최종 선정된 후보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하에서는 예심 위원들이 제출한 '심사 의견서'가 과연 심사과정에 제대로 반영되는지, 아니면 아마추어들의 '레포트' 수준으로 취급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행위는 예심 결과에 대해서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부랴부랴 '일반인들의 참여가 갈수록 저조해졌고, 형평성을 위해 전문 영화인 심사위원들의 비중을 높일 수 밖에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현재 대종상 홈페이지는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과 남녀주연상, 남녀신인상 등 주요 수상 부문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오아시스>등의 수작들이 출품을 거부하며 영화제의 퀄리티가 다소 낮아지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기존 작품들조차도 수준 이하의 후보 선정과 일관성없는 심사 기준으로 인하여 팬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있다.

대종상 후보작들의 명암

올해 대종상은 전반적으로 대작들의 경쟁이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최근 개봉하여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인정받은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휩쓸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함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의 수상 후보에 지목되며 절대 강자임을 과시했고, 흥행에는 부진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은 <지구를 지켜라>,<로드 무비>가 역시 9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어 공동 1위를 기록했다. 개봉당시에 대단한 악평을 들으며 '블록버스터의 재난'이라고 까지 일컬어졌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장선우 감독)이 8개 부문에 오른 것은 이색적이다(물론 대개 기술부문이다).

그러나 개봉당시에 호평 받았음에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소외된 작품도 있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 감독) 이다. 홍상수 영화의 여성 버전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독특한 인물 해석과 아기자기한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던 이 작품은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박해일, 문성근, 배종옥 같은 배우들이 모두 수상 후보에서 제외되었으며, 겨우 신인기술상(박용수) 부문에만 노미네이트 되어 구색을 맞췄다.

철저한 상업 기획 영화인 <광복절 특사>(김상진 감독)가 작품상을 비롯하여 6개부문 후보로 오른 것이나, <오, 해피데이>(윤학열 감독)가 장나라의 원맨쇼만으로 2개부문(여우주연상,신인여우상) 후보를 가져간 것에 비하면, <질투는 나의 힘>의 소외는 대종상의 선정 기준을 의심하게 만드는 결과였다.

^^^▲ 제40회 대종상영화제 개막식 무대배경
ⓒ daejongsang.com^^^
수상 후보작들 프리뷰

현재, 가장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은 역시 배우들(오른쪽 '박스기사' 참조)에 관한 이야기다.

지적을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자배우들의 퀄리티가 풍성한 데 비하여 각 부문을 통틀어 눈에 띄는 여배우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배종옥(질투는 나의 힘)이나 문소리(오아시스-출품 거부)같은 뛰어난 배우들이 후보에서 누락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국내 영화 속 중심 캐릭터들의 남성 편중 성향이 얼마나 심한가 하는 구조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안남녀 부문에는 드라마와 CF 등에서의 인기를 바탕삼아 스크린으로 진출한 '중고신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숨은 재능을 보여준 탤런트 출신 정찬(로드무비)과 올해만 3편의 영화를 통하여 떠오른 '진짜' 유망주 박해일(국화꽃향기)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의 연기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뻔한 신파였던 <국화꽃 향기>보다는 <질투는 나의 힘>이나 <살인의 추억>의 열연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신인여우 부문은 사실 아이돌 스타들의 이미지 경연장이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제외하자면, 대부분의 배우들이 '연기'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인데 비하여, 그나마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준 김정은(가문의 영광)과 별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1인 2역을 열연한 손예진(클래식) 정도가 주목할만한 배우들이다.

순수하게 '연기'를 평하자면, 올해의 남우조연상이야말로 대종상의 퀄리티를 채워줄 수있는 부문이다. 검증된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 이 부문에서 군계일학은 단연 백윤식(지구를 지켜라)이다.

브라운관의 감초 조연에서 관객의 뒷통수를 치는 강 사장 역으로 거듭나며,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백윤식의 열연은 주연상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 백윤식의 능청스런 연기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오랜만에 영화로 복귀한 중견 배우 윤승원(챔피언)의 눈부신 호연도 돋보인다.

여우조연상은 무난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없는 가운데,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귀신들린 아이역을 소화하며 한국판 엑소시스트를 연상케하는 살벌함을 보여주었던 아역배우 은서우(폰)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남우주연상은 후보 선정부터 이야기가 많다. 물론 지금의 배우들도 나름대로 수상 자격이 충분하지만, <지구를 지켜라>의 신하균이나, <살인의 추억>의 김상경이 후보에 없다는 것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다.

많은 영화팬들은 웃음과 공포를 오가며 끝까지 관객에게 서늘한 한기를 남겨주었던 '박두만 형사' 즉, 송강호(살인의 추억)의 눈부신 표정 연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주연상 후보 1순위이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각자 챔피언과 해병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유오성(챔피언)과 장동건(해안선)의 연기열정도 기억해줄 만 하다.

여우주연상은 솔직히, 이번 대종상 시상식에서 가장 암울한 부분이다. 예년에 비해 주목할만한 여성캐릭터가 별로 없을 뿐더러, 이미연이나 김윤진 같이 개성있는 배우들도 출연작에서 그리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노출 심한 가수 이미지로 굳어져가던 엄정화(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스크린 복귀가 오히려 타성에 젖은 기존 배우들보다 신선해보이는 부분이 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장나라의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그녀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오 해피데이>에서 물론 열연을 한 점은 인정하지만, 그 보답은 이미 신인여우상 노미네이트만으로 충분했다. 특별히 다른 배우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작품 자체가 완성도 높은 수작도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형식을 무시하고 2개 부문이나 후보를 안겨준 이번 선정은 영화팬들의 냉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종상은 이처럼 내용면에서 이미 많은 구조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시상식이 개막도 하기 전에 비관적인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벌써 몇 년 째 거듭되는, 실패한 영화제라는 오명을 대종상이 정말 극복해내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영화팬들의 대종상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이미 한계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등돌린 영화팬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겉포장만 화려하게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대종상 스스로가 주위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컨텐츠가 알찬 모습으로 변화하려는 가시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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