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의 만남(8)-고경태기자의 3차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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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승인 2002.08.26 2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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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의 진실을 찾아서

심광웅씨(이 글을 넷츠고 사이트에 띄워도 좋습니다. 더 이상은 논쟁하지 않겠습니다)

1. 참전군인단체와 관련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참전군인단체'라고 얘기한 건 <한겨레21>이 추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움직임을 알았고, 정보만을 드린 것이죠. 그건 '가칭'일 뿐이고 안 생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단체를 움직여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꾸 "참전전우회는 배제되었다"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10여개가 넘는 참전전우회가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어떤 단체와 협력을 하든 안 하든 그건 <한겨레21>의 자유지요.

애초에 심광웅씨가 "'곧 참전군인들을 배제한 진실찾기위원회가 생긴다"라는 얘기를 내가 했다고 해서 제가 분명히 해명했는데도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쓴 겁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참전군인단체든, 사랑하지 않는 참전군인단체든 모두 참전전우회이지요.

2. 심광웅씨가 이야기한 4가지와 관련하여

제가 말씀하셨다시피, 구수정씨는 베트남 문화통산성 산하 전범조사위의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사를 썼습니다. 지난번에도 이 이야기를 했었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생존자의 증언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요. 심광웅씨 말처럼 독가스를 과연 '분사'했느냐.... 아닐 수 있습니다. 현지 피해자들이 부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지요. 최루탄을 터뜨린 것을 '분사'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과연 미군의 융단폭격 뒤 한국군이 수색을 했는가. 그거야 더 확인이 필요한 겁니다. 물론 베트남전 당시 융단폭격이야 B52로 했다고 하지요. 그건 심광웅씨의 말이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이런 건 있지요. 다른 무차별 항공포격이나 박격포 공격을 융단폭격으로 잘못 표현할 수 있고요.

셋째로 불도저로 사용했다는 건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분명히 나오는 것이고, 참전군인의 증언에서도 나온 이야기입니다. 저는 해사 출신 당시 중대장에게 들었는데, 그 역시 동료 중대장에게서 들었다며 얘기해주더군요. 어디선가 분명히 저격이 날아오는데, 흔적은 없고... 며칠동안 그 자리를 지켰는데 아무 움직임도 없고 해서 불도저로 주위를 다 밀어버렸다 등등... 살아있는 팔과 다리와 머리가 짤려 나오더라는 등...그래서 제가 만난 중대장이 그 친구 중대장에게 작전을 아주 잘 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는 등... 구덩이에 놓고 소총을 갈겼다는 건 여러명의 참전군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건 구체적인 조사가 더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제가 국방부 이야기를 한 건, 우리한테 묻지 말고 국방부에만 물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겨레21>은 최대한 2000년 한해동안 참전군인을 만났고, 또 지금도 만나려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과장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전군인도 만났고 <파월한국군전사>와 <해병전투사>도 검토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베트남 피해자들의 증언을 100% 확증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국방부 예를 든 건 우리에게만 "증거를 대라"고 막무가내로 따지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국방부에 요구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

저희들은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존중해서 들었고, 그것이 실제 참전군인들을 찾는 실질적인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는 일부 사실이 부정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베트남전 당시 과연 민간인 학살이 존재했는가라는 큰 문제를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문제는 진상조사입니다.

최근에 <한겨레21>이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미군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한 700명의 민간인 학살'의혹이 있었고, 미군은 이를 형식적으로 조사한 뒤 '증거 없음'으로 넘겼습니다. 지금도 베트남쪽 자료에는 이틀 동안 1-2개 성에서 700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조직적인 학살의 의혹'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저는 지금이라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베트남에 여러번 다녀왔습니다.

한번은 쿠앙응아이성 픅빈을 가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픅빈'이라는 지명을 댔는데도 잘 모르길래 "한국군에 의한 피해가 많았던 곳이다"라는 설명을 했더니 대뜸 "그럼 지엔니엔으로 가라. 거긴 더 많이 죽었다"며 다른 지역을 소개하더군요.

호치민이나 하노이 등 베트남의 수도권 주민들은 사실 한국군이 베트남전 당시 한 일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중부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다릅니다. '한국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무차별 하게 죽인 사람들'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 정말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한국군들을 원망합니다. 한국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야 외교적 수사로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간다'고 하지만 민초들이야 말처럼 그게 쉽겠습니까. 자기 가족이 적게는 한명, 많게는 10명까지 죽은 사람들이 말입니다.

제가 심광웅씨에게 안타까운건, 당신의 군사적인 지식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죽이는 과정의 '기술적'인 문제들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심광웅씨는 <한겨레21>에 맨 처음 나온 기사만 보셨습니까? 아닐 줄로 믿습니다. 제가 쓴 기사는 보셨습니까? 제가 만난 참전군인들에 관한 기사는 보셨습니까? 제가 나중에 쓴 기사들은 초기에 쓴 기사들의 한계를 보완하는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참전군인들을 만나 확인한 것이니까요.

심광웅씨. 아주 심한 예 하나만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이 중국에서 난징 대학살 저질렀습니다. 지금? 일본은 난징 학살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침묵하던 일본 언론 중 어떤 언론이 제1성을 터뜨렸다고 칩시다. "일본이 난징에서 학살을 했다. 기관총으로 난사했다." 그런데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군들이 이렇게 따지는 겁니다. "우리는 칼로만 베어 죽였지. 기관총은 절대 쓰지 않았다. 이건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문제다." 아주, 아주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심광웅씨.

저는 사실 심광웅씨와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물론 처음에는 난데없이 저를 공적인 사이트에 몰고 와 화가 났지요. 그래서 바로바로 글을 쓰다 보니, 감정적인 언사가 많았을 줄 압니다. 저도 <한겨레21>지면에 쓰는 글과, 여기에 올리는 글의 차이를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글도 쓸까말까 망설였습니다. 자꾸 감정적으로 흐를까봐요. 그래도 쓰는 게 떳떳할 것 같아 글을 올리는 겁니다.

심광웅씨.

당신이 말한 네가지 일이 '베트남전 진실의 모든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한겨레21 고경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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