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언론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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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언론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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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니라 바른 언론 만들기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지승호 - 언론 개혁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나 언론 스스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장봉군 = 언론개혁에 대해서 총론의 제기는 끝났거든요. 한겨레가 작년에 언론개혁 얘기하면서 화두가 됐고, 총론을 제기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각론들을 구체화시켜야 하는데, 조아세도 고민일 것이라고 보는데, 저도 언론개혁, 언론개혁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되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좀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야 되지 않는가 하는 일반론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어느 언론개혁관련 강연회 포스터"왜 언론개혁인가"를 말하기보다는 "무엇이 언론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특히 강연자가 사사건건 '남탓'과 '트집잡기'로 일관하는 한겨레신문의 기자라면 더욱 그렇다.
ⓒ 이민주^^^
 
 

한겨레신문 만평을 그리는 장봉군씨가 언론개혁 운동과 관련하여 어느 인터뷰에서 토로하고 있는 말이다. 말로는 언론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구체적인 각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장씨의 발언이 인상적이다. 흔치 않게 정직해서다.

'언론개혁의 각론이 없다'

장씨의 말마따나, 지금 언론개혁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각론이란 없다. 언론개혁 문제를 들고 일어난 동기 자체가 '개혁'이 아닌 '전쟁'에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적'이라는 이유 외에 다른 이유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적이다' 하고 외치기만 하면 그만이다. 각론이고 뭐고 따지고 들먹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과연 언론개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불순한 의도만 버린다면, 예컨대 장씨가 적을 두고 있는 한겨레신문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한사코 외면하거나 혹은 (누구 말대로) 공부는 안하면서 잘 나가는 넘 뒷발 걸기식으로 언론개혁을 이용하려 하지만 않는다면, 각론은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바른 언론 만들기'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구체적인 언론개혁의 각론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의 당사자인 조중동과 노무현은 서로 상대의 단점과 한계를 자신들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조중동은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노무현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집권 개혁세력은 역량이 부족하다. 이를 숨기기 위해 개혁세력은 끊임없이 트러블을 양산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론과 기득권의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한편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기성언론은 개혁세력의 이런 행태를 물고 늘어지며 끊임없이 태클을 걸어댄다. 이것이 지금 이른바 개혁 정부와 기성 언론의 현실이다.

한쪽은 과거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사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고, 다른 한쪽은 부족한 역량을 강화하는데 먼저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이들은 오히려 서로 '죽이기' 경쟁을 통해 자신들의 불안한 입지를 보장 받을려는 기동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는 전쟁이 자주 대내적인 문제를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고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국민을 사태의 본질에 주목하게 하기 보다는 '전쟁'의 공범자 내지는 볼모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양상은 확실히 전쟁의 기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언론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상대가 지닌 핸디캡을 '더러운 전쟁'의 당위성과 생존 보장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 상황을 두고 '누가 더 잘못인가, 혹은 누가 더 더러운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논쟁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이 싸움은 판 자체가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있다. 개혁의 본래적 의미가 실종된 지는 이미 오래인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처음부터도 아예 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던 건지 모른다.

실제로 지금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기득권이나 언론만이 아니다. 소위 개혁을 부르짖는 세력 또한 개혁의 발목을 붙잡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딴지걸기로 일관하는 야당이나 기성언론의 행태에 동의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정권부터 시작하여 야당 못지않은 딴지걸기와 모든 문제를 '남탓'으로 돌리기에 이력이 난 집권 여당의 행태에 동의할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다. 나아가 사사건건 ‘트집 잡기’로 일관한다고 기성언론을 비판하는 사이비 시민단체나 일부 어용언론의 행태에 이르면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할 지경이다. 기성언론의 ‘트집잡기’를 비판하는 그들의 행태야말로 영낙없는 트집잡기인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와 다른 어떤 주장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모든 주장은 쳐부셔야 하는 주장이 되고 만다. 도끼눈을 치켜뜨고 기성언론의 잘못 하나하나에 일일이 토를 달고 트집을 잡아야 직성이 풀려 한다. 이들에게는 잘못되는 모든 일이 ‘남탓’이 되고 만다. 자신들이 왜 마이너인지에 대한 추호의 성찰은 없는 채로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과 틀에 맞지 않는다고 ‘전쟁’을 선포하는 게 이들의 행태인 것이다.

원인(遠因)을 제공한 것은 확실히 과거 기득권의 잘못된 행태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못지 않게 주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개혁 세력의 자가당착적인 행태, 즉 기득권과 하나 다를 바 없는 행태라고 봐야 한다. 현재의 집권 여당은 지난 5년 내내 도저히 여당이라고 봐주기 힘든 모습을 보여 왔다. 어떨 때는 여당과 야당이 바뀐 거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줄 정도로 집권당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하지도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런 행태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변명은 언제나 그럴싸 했다. 야당과 언론 때문에 할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변명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민생은 뒷전이고 통합이냐 개혁이냐 하는 집권당내 헤게모니 싸움으로 날을 지새면서 벌써 수개월째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지리멸렬해 있는 현재 모습만을 보더라도 이는 결코 과한 진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굳이 책임소재를 따져 묻는다면 그 대상은, 사이비 시민단체나 일부 어용언론이 탓하고 있는 기성언론이 아니라,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하는데 저항하지 않을 존재는 없다

‘언론개혁’ 운동은 집권 여당과 일부 어용단체(언론)의 몰지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언론개혁은 결코 '전쟁'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는 정부와 일부 친여언론 그리고 시민단체가 주동이 되어 벌인 지난 3년 간의 '전쟁'이 기성언론으로 하여금 반성보다는 오히려 스스로의 방어논리를 확고하게 했을 뿐이라는 현실이 확인해주고 있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말살하려 하는데, 이에 저항하지 않을 개인이나 집단은 없다"
고 하는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의 말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나 부터도 '전쟁'까지를 선포하면서 존재를 말살하려 하는 마당에 '나 잡아 잡수' 하고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다해왔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아가 그 믿음을 부정하는 상대의 논리가 한갓된 '죽이기'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전쟁이란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어야 끝이 난다. 이는 어느 한쪽의 존재 의의 자체가 말살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다. 전쟁과 ‘개혁’은 본질적으로 같이할 수 없는 범주의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도 개혁세력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굳이 ‘전쟁’이라는 이런 무리수를 두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다양할 수 있겠으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하나 - 그것 외에는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켜 사회를 '전쟁' 위기 국면으로 몰아가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 간의 건설적 긴장관계를 위해 참여정부와 언론은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선의와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 정부는 하루빨리 비밀주의를 타파하고, 정보공개제를 확립하고, 진솔하고 효율적인 브리핑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자신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태도, 심지어 적대적 태도조차 수용하는 아량을 지녀야 한다.”

월간중앙 6월호에서 서강대 신방과의 이효성 교수가 정부와 메이저 신문과의 신뢰 회복을 주문하고 있는 대목이다. 유감스럽지만, 이 교수의 이런 주문은 사태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책상물림의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지금 정부와 언론간의 문제는 신뢰회복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상대의 선의와 취지를 존중'할 의사 자체가 없다. 정부가 언론과 '전쟁'을 벌이는 그 이면에 숨은 뜻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들이 '전쟁'을 통해 각자의 지지기반을 하나로 묶으려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와 언론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까닭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수구 언론 탓으로 돌리면서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일종의 전략적 기동이다. 사소한 것까지도 걸고 넘어지면서 언론이 정부에 날을 세우는 것 또한 전략적 기동이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을 언론과의 전쟁이라는 기제를 통해 감추려 하고 있고, 언론은 자신의 '원죄'를 정부에 각을 세움으로써 카바해가려 하고 있는 게 이 전쟁의 본질적 특성이다.

실제로도, 사회가 어떻게 되는 말든, 전쟁의 양 당사자는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서 죽어나는 것은 일반 국민일 뿐이고, 이들 당사자들은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성가를 한껏 높여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극단적인 발언의 수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이들은 자신의 입지를 더욱 확실하게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발언들이 갈수록 격해지고 주장들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어중이 떠중이들이 ‘홍위병’으로 나서 소리높여 외치는 '언론개혁'의 길이 요원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언론개혁의 길은 그러므로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곧 이 전쟁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문제 투성이인 언론을 그냥 두고 보자는 게 아니다. 언론이 문제라면 그런 언론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문제가 없는 언론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전쟁이 언론개혁과는 거리가 먼 특정 정치세력의 전략적 기동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이나 그렇다. 그러나 전쟁의 기치를 높이 치켜든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의미가 없다.

'전쟁'과 '죽이기'에 톡톡히 맛을 들인 이들은 바른 언론을 만드는 일에는 사실 눈꼽만치의 관심도 없다. 기성언론이 지닌 핸디캡에 편승하여 그 핸디캡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자신의 입지를 보장 받는 훨씬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은 '당파적'이어야 한다는, 전근대적 언론관에나 있을 법한 희한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스스로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행태를 보이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커녕 오히려 자신이 비판의 주체인 양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언론개혁을 외치고 있는 이들의 현 주소다.


상대의 '원죄'와 '무능'을 자신의 입지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지지난 해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의 이른바 사이비 시민단체와 일부 어용언론이 보여준 행태는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사적인 방편으로 이용한 전형적인 사례다. 입만 열면 언론의 중요성을 소리높여 외치는 사람들이 그 불순한 의도가 너무도 뻔히 들여다 보이는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박수갈채를 보낸 것은 어떻게도 동의할 수 없는 자가당착적 행동이었다. 진정으로 언론개혁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일한 상황이 백번을 다시 온다고 해도 그런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언론을 개혁하겠다는 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개혁은 건전한 비판을 통한 상호 경쟁의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비판을 하되, 자기 스스로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기성언론의 '원죄'에 편승하여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려 들어서도 안 되고, 상대의 '무능'을 빌미로 삼아 자신의 원죄를 카바하려 들어서도 안 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언론개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자칭 언론개혁 선봉에 서 있다는 '안티조선족' 사람들은 자주 조선일보를 왕따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펴곤 한다. 이 한마디에 안티조선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왕따 논리'가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길을 가는 초등학생한테 물어봐도 답이 나온다. 어떤 상황논리를 대더라도 왕따논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이 나서 '왕따 만들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어찌 정상적이라 할 수 있겠으며, 이들이 주장하는 바가 어찌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아가서 이들은 대북관계 등을 논할 때는 아주 분명한 어조로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평화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전쟁은 죽어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상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내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얘기냐"며 윽박지르고 나선다. '수구 꼴통'적인 시각이라고 나무라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언론만큼은 '전쟁'을 해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존재를 말살하지 않으면 개혁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모순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바른 언론 만들기'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지난 해 대선 당일의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조선일보 사설은 말 그대로 엽기 그 자체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과 분석이 쏟아져 나왔기에 굳이 재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 이같은 엽기사설을 있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반성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것은 이른바 개혁세력이 벌인 언론개혁의 산물이자, 전쟁 당사자로서의 사활을 건 '생존투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을 가열차게 전개해온 '언론개혁'의 결과가 과거보다 더한 엽기사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기왕의 언론개혁 운동이 어떻게 패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단적인 증거라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조선일보의 그 사설을 두고 조선일보가 이미 힘을 잃은 증거라느니, 단말마적 외침이라느니, 마지막 발악이라느니 하는 의견이 없지 않다. 일견 그럴듯하긴 하지만, 이를 제대로 된 분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왕따 만들기'와 '죽이기' 방식으로는 언론개혁 한다고 백날을 떠들어봐야 기성언론이 ‘죽거나 개혁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광신도가 아닌 바에야 사적인 이익에 매몰된 특정 세력과 한 패가 되어 벌이는 그런 놀음에 놀아나는 일은 없다. 실제로도, 이들이 그토록 ‘개혁 당하기’를 갈망하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때론 과거보다 더 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까지 하다.

기성언론을 극복하는 길은, 그리고 참된 언론개혁을 이루어내는 일은 기성언론보다 나은 언론을 만들어낼 때만 가능하다. 선정적이지 않고 선동적이지 않으며 왜곡하거나 편향적이지 않은 언론을 만들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연구하여 더 좋은 정보와 더 나은 담론을 의제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왜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가? 그 일은 가능하다. <뉴스타운>과 같은 인터넷신문이 존재하는 이유고 존재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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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2003-06-12 09:06:54
............. ^^;

누들누드 2003-06-12 11:20:04
이민주의 횡설수설, 뭘 말하려는지...
결국은 자화자찬으로 끝나고 마는구나.
뉴스타운, 그냥 그대로 딸딸이나 치길..

동감 2003-06-13 00:50:06
개혁이란 거창한 미명......
그속에 들어있는 음흉하고 악랄한 특정언론죽이기....
이민주님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 동감가고 감동적이였습니다.
재미없는 뉴스타운의 메마름을 적시는 한줄기 빗방울.....

키드 2003-06-23 16:19:45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생각조차 안해보고 그저 욕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좀 그렇군요. 아래에 욕만하는 그 사람들 말입니다.

빙신 2003-06-24 02:14:57
빙신들 삽질하고 앉았다..

넉들도 생각을 하고 사는 놈년들이냐?

이런 호로 상큼한 것들아..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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