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돈 교수중앙대 법대 교수^^^ | ||
1. 머리말
최근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30.2%, 중도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36.9%, 진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27.1%를 차지해서 2002년의 보수 26.7%, 중도 32.3%, 진보 41.1%에 비해 상당히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의 경우, 2002년에 비해 자기가 중도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늘어나서 보수 중도 진보가 3대 4대 3이란 황금분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국 대선은 중도성향의 유권자의 마음을 잡는 당이 승리할 것으로 보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은 중도 성향으로 이념과 정책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거는 원래 중도층이 좌우하는 것이지만 후보 자신이 중도를 지향하면 패배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 한국 정치의 특성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념보다는 지역이 더 큰 요소로 작용해 왔던 것이 현실이다. 2007년 선거에서도 정도가 약간 줄기는 할지언정 지역이 큰 영향을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여론 조사를 보면 호남에도 중도 유권자와 보수 유권자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그런 성향과는 전혀 관계없이 나오는 것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지역은 대전-충청권이었는데, 그 지역 유권자들은 대체로 이념 문제와 무관하게 투표를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두 차례 대선에서 진 가장 큰 원인은 대전-충청 표를 놓쳤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에 수도이전하면 서울의 아파트 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수도권 주민들을 협박했던 것은 한나라당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다.
두 차례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 측은 적극적으로 지역표를 가꾸었지만 이회창씨 측은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서 점잖게 대응했고, 특히 2002년에는 ‘수도권 아파트 값 폭락’이란 자살골을 넣었던 것이다. (지방 사람들, 특히 대전 충청사람들은 이회창 후보가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지키기 위해 출마했다고 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대선에서 부동층 유권자에 대해 이념이나 정체성 문제가 미치는 변수는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반면 고정 지지층에게 있어 이념과 정체성은 큰 문제인 것이다.
3. 지도자의 德目
정치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그때그때 여론을 좇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정치인을 ‘poll-driven politician’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대중을 설득해서 나라를 이끌어 가야만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평가받는 것은 그러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말 세계를 크게 바꾼 대처 영국 총리, 레이건 미국 대통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모두 그런 면이 있었다.
1970년대 온 세상은 케인즈 式 경제정책과 미르달 式의 복지국가를 정답으로 알고 있었다. 소련 등 공산권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고, 데땅드와 세력균형만이 평화를 지킬 것으로 알고 있었다.
종교는 민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해방신학이 세계를 풍미하고 있었다. 영국 보수당과 미국 공화당의 주류(主流)도 그런 생각이었다. 바티칸의 많은 추기경들은 소련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현상유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대처, 레이건,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주의 경제와 반공(反共)주의, 그리고 정통적 교리가 세상을 정의롭고 바르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지나친 보수성향으로 인해 결코 당대표가 될 수 없을 것이라던 대처는 1977년에 보수당의 대표가 됐고, 1979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1976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선전(善戰)한 레이건은 1980년에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어 현직 대통령 카터에 대해 대승했다. 폴랜드 출신의 젊은 정통교리주의자(orthodox)이고 반공주의자인 보이티아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것 역시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20세기말의 인류 역사는 이런 지도자들에 의해 바뀐 것이다.
그 후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 이들이야말로 세기의 ‘지도자’(leaders)들이었다. 이들은 대중을 설득해서('convince'), 세상을 바꾼 것이다. 중도 성향의 대중이 많아 보이니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선 중도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보아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2007년 대선은 단순히 경제 사회 정책을 바꾸는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2007년 대선은 국가를 병들게 한 좌파 정권을 종식시키는, 심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좌파도 좌파 나름이다. 사회복지에 좀더 많은 예산을 쓰겠다는 것도 좌파 정책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북핵 개발에 돈을 댔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것은 사실상 ‘반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역’을 심판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후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이런 말을 하는 후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다.
4. ‘보수’로는 대선을 이길 수 없다 ?
여론 조사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보수’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한다. 중도 표를 다 놓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를 드는 것이, 부자에 대해 세금을 많이 메기는 데 찬성하는 사람이 90%가 되니까 종합부동산세에 반대하면 선거에서 진다는 식이다. 참으로 유치한 이야기이다.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내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부자에 과다한 세금을 메긴 스웨덴 등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명색이 정권을 잡겠다는 정당이라면 그런 점을 들어서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여론에 부응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수’의 또 다른 기준인 대북 문제, 국가보안법 등도 그러하다. 번지르르한 명분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들어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그런 것도 없이 여론 조사가 어떻다고 해서 중도 정책을 택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다.
사실 ‘중도’(middle, moderate)에는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중도 유권자는 특정한 현안 문제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을 달리 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도 유권자를 잡기 위해 정책을 개발하다 보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구멍가게 백화점식 공약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5. ‘중도’로 대선을 이긴다 ?
중도 유권자가 많기 때문에 중도 유권자의 마음을 잡지 않으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한나라당은 ‘보수층’을 잃어버리면 궤멸한다는 엄연한 진실이다.
한나라당은 보수층 표는 당연히 자기들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인지 한나라당의 대권후보들은 ‘중도’를 유혹하기 위한 달콤한 말을 해도, ‘보수’를 옹호하는 발언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보수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수층은 이제 ‘트로이의 목마(木馬)’는 오세훈 시장 하나로 충분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중도 유권자들은 기권율이 높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전화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자기가 ‘중도’라고 답하지만, 투표장에는 가지 않는 것이다.
호남이니 충청권의 경우에는 ‘중도’라고 답하는 유권자들은 ‘지역’ 정서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념’은 그들에 있어 큰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론조사의 한계를 보여 주는 대목이 아닐까.
6. 보수 유권자는 모두 한나라당 지지자 ?
보수층 유권자들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해 왔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보수 유권자들은 당연히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체 유권자의 최소한 20%는 되는 보수층의 인내(忍耐)는 거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나 한다. 보수 유권자들은 ‘보수 정체성’을 상실한 한나라당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한나라당을 버리는 방식은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어차피 중도 후보이니까 하면서, 이미지가 좋고 도덕성이 좋아 보이는 통합 진보신당의 후보를 대거 찍게 될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대선이 중도 후보들로만 치러지게 되면 별다른 쟁점이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보수 유권층이 대거 기권할 가능성이다. 마지막 가능성은 보수 신당을 출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레이건 대통령과 41대 부시 대통령의 경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레이건은 보수 철학이 옳다고 믿었던 원칙론자였다. 반면 41대 부시는 실용주의적(pragmatic) 공화당원이었다. 1980년 선거는 물론이고 1984년 선거에서 민주당원 중에도 레이건을 찍은 사람이 많았다. 언론은 그런 사람들을 ‘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s)이라고 불렀다.
레이건의 원칙론적 보수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당시의 미국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레이건 같은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본 민주당원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카터 대통령이나 몬데일 전 부통령에 대해 한계를 느껴서 레이건을 찍은 민주당원도 있었겠지만, 보수 이념을 내건 후보가 중도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가설이 틀린 것임을 잘 보여준다.
반면 41대 부시는 임기 중 재정적자를 이유로 세금을 올리고 사치세라는 부유세를 새로 설치해서 결국 보수 유권자층을 이탈시키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했다. “내 입술을 읽으시오. 새로운 세금은 없다.(Read my lips. No new tax.)”라는 유명한 선거공약을 번복하자 골수 공화당원들이 지지를 철회했고, 그로 인해 1992년 선거에서 패배했다. 말하자면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도 잃어버린 격이다. 부시에 실망한 공화당 골수당원들은 기권을 하거나 로스 페로를 찍었던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친북 반미의 굿판’을 거두라고 비판하기는 커녕 촛불 시위에 초라하게 참여해서 오히려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었다는 평가가 있다.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1992년 미국 대선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그러나, 과연 이회창씨 측이 촛불 시위에 대해 친북 반미 세력이 불행한 사건을 이용한다고 질타했다면 당선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02년 선거에서 보수층은 이회창씨 지지에서 이탈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회창 씨가 보수의 목소리를 보다 강하게 냈더라면 과연 부동층 유권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이 후보로 선회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가지 너무나 분명한 것은 충청-대전 표와 경남-부산 표를 잃어서 이회창씨는 실패한 것이다.
2007년에도 한국의 전통적 보수 유권자들이 2002년 처럼 한나라당을 무조건 찍을 것인가 ?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이미 두 개로 쪼개져 있는 상황이다. 2002년과 달리 한국의 보수층은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정체성’이나 ‘이념’ 문제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후보에 대해서 큰 저항감을 느끼고 있다. 보수층의 이 같은 정서가 2007년 대선에서 큰 변수로 등장할 수도 있다.
7. ‘시대정신’인가, ‘정체성’인가 ?
지금 한나라당의 후보들은 본선에 나서는 것 같이 경쟁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한나라당 자체는 과연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물론 한 정당에도 원칙주의자와 실용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분파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당은 자체로서 일정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야 한다. 공통분모를 상실하면 이미 같은 정당을 한다고 볼 수 없다. 정당은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사(結社)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 후보 사이의 차이는 한 개의 정당의 분파간의 차이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많이 회자(膾炙)되는 용어의 하나가 ‘시대정신’(Zeitgeist)이다. 노무현씨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추어 개헌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고 1차 연임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그 며칠 전에 이명박 씨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1세기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개헌이 바람직하다”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손학규 씨도 ‘시대정신’이란 용어를 자주 쓰고 있다.
‘시대정신’은 원래 독일 관념철학에서 나온 용어이나, 이제는 좌파, 무신론, 및 반문화(counter-culture) 슬로건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선 한때 좌파에 물들었던 사람들과 좌파 세력이 이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반면 좌파들은 ‘정체성’(identity)이란 용어를 대단히 싫어한다. 친북좌파들이 ‘정체성’이란 용어를 싫어하고 ‘시대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전통을 뒤엎고, 한미 동맹을 부셔버리기 원하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 보다 한반도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정서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한반도내의 유일한 합법정통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지 않으면 그들의 존재 기반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 중의 하나가 문화적 다양성(multi-culturism)이다. 오늘날 유럽의 이슬람 문화권으로 편입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된 것은 유럽이 유대-기독교 문명이란 정체성을 상실한 탓이란 평가가 있다.
진보성향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징거 2세도 문화적 다양성이 미국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설 정도로 ‘다양성’은 ‘정체성’을 해 할 수 있다. ‘다양성’은 우리나라의 좌파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용어 중의 하나이다. 한나라당은 ‘다양성의 함정’(diversity pitfall)에 빠져서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시대정신’은 한 국가사회에 항구적 가치(enduring value)가 존재함을 부정하고, 시대에 따라 어떤 것이든 받아 드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 이론과 더불어 좌파들의 주요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특히 무신론(無神論)에 서 있는 좌파들이 그들의 변화무쌍한 궤변을 합리화 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로 ‘시대정신’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 많은 열린당 의원들, 안병직 교수 등 좌익출신 뉴라이트 집단, 그리고 한나라당의 이명박 씨와 손학규 씨가 ‘시대정신’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명박 씨는 진보 보수 같은 이념대립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정체성 역시 불필요한 논쟁이며, 미래가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반면 최근 들어 박근혜씨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지난 1월 18일 자유시민연대 초청 포럼에서 박근혜 씨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수호, 국가보안법과 전시 작전권 통제 등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 “(자기가) 당대표가 된 후에 이 정권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바로 이 정권이 가져올 퇴행의 핵심이라고 느꼈다”고 보수 성향을 확실히 했다. 박씨는 이 연설을 계기로 이념과 정책 측면에서 이명박 씨와 완전한 차별화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이-박 간의 경쟁은 ‘시대정신’과 ‘정체성’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두 사람간의 경쟁이 정책 경쟁을 뛰어 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8. 한나라당은 정체성이 있나 ?
더 중요한 문제는 한나라당 자체가 ‘정체성’을 갖고 있나 하는 점이다.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이 문제를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난 해 11월 8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에서 ‘비핵(非核) 반전(反戰) 평화’를 강조하는 연설을 하더니, 그 후 아예 ‘비핵 반전 평화’를 한나라당의 로고로 채택했다.
‘비핵 반전 평화’는 매우 아름다운 용어지만, 그것은 좌익 세력이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유럽과 한국에서 일었던 反美 시위 구호와 동일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건 대통령이 서독에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게르트 바스티안(Gert Bastian)이 이끄는 ‘평화를 위한 장성들의 모임’ 등 많은 평화단체가 대규모 반핵 반전 시위를 이끌었는데, 이 때 내건 구호가 바로 ‘비핵 반전 평화’(No Nuke, No War, Peace !)였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단체는 모두 동독의 슈타지의 돈을 받은 간첩들이 이끌었음이 동독 붕괴 후에 밝혀졌다. 바스티안도 동독의 첩자였는데, 1992년 10월 동거하던 페트라 켈리 녹색당 당수와 동반자살했다.
‘비핵 반전 평화’라는 슬로건은 1986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미군 핵무기 철수를 요구한 시위에서도 동원됐다. (그런 시위를 주도한 세력이 바로 노무현 정권과 같은 ‘코드’이다.) 노태우 정부는 이런 압력에 못 이기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해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한국의 무대책(無對策)을 조장했다. ‘비핵 반전 평화’라는 슬로건은 민노당에 걸 맞는 구호인 것이다.
한나라당이 민노당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은 또 있다. 작년 말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 및 비서관 중에 민노당의 공식당원이 30여명이나 됐다는 것이다. 직장은 한나라당이고 충성은 민노당에 하는 것이니, 흔히 말하는 오열(五列)이 바로 이런 것이다.
특히 공식당원이 30명이나 됐으니 심정적으로 민노당에 동조하는 의원 보좌관 비서관이 얼마나 되는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민노당에 동조하는 의원은 또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한나라당 의원 중에 시장경제제도를 위협하는 입법안을 민노당 의원들과 공동발의한 경우가 많다. 한나라당의 고 아무개 의원의 성향은 민노당 의원으로 보더라도 지독한 편에 속한다. 정당에는 이런 저런 의원이 있기 마련이지만 한나라당의 경우는 정도가 심하다.
영국 노동당은 블레어 총리의 이라크 정책 등에 사사건건 시비를 건 갤로웨이 의원을 제명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제 이념과 정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적 결사체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 정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9. 2007년 대선의 향방 ?
2007년 대선에 대하여 한나라당이 전략이 있을 수는 없다. 단지 경선에 이긴 후보자의 전략이 있을 뿐이다. 본선에 이기기 위해선 어느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경선 후보자 간에 팽팽한 대립이 있으면 본선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후보 경선이 끝나면 패배한 경쟁자는 그래도 소속당 후보를 지지한다. 정당의 역사가 길고, 또한 각 정당의 정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은 정당은 없고 후보만 있는 형상이다. 1월26일자 연합통신 의 조사에 의하면 51.6%가 한나라당 후보가 경선 전에 결별하고 각각 출마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한다.
2007년 대선이 2002년과 다른 점은 재야(在野) 보수세력이란 존재가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이 ‘중도’를 표방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반면 원래 ‘중도’를 지지하는 재야 세력은 미미하다. 중도를 표방하는 시민운동은 존재할 이유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탈(脫)이념형의 중도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재야 보수세력이 한나라당에서 이탈하는 의원들과 함께 새로운 보수정당을 창설해서 대선 후보를 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에 만일 충청과 호남의 중도 보수 정치세력이 동참하면 폭발력을 갖게 될 것이다. JP와 DJ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이 시점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한국의 정당은 ‘지역’이란 질곡(桎梏)을 벗어나서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은 경선 전에도 일어날 수 있다. 정체성과 이념을 이유로 분당하는 것은 충분한 명분이 있다. 한나라당이 ‘정체성’을 상실한 정당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인지는 머지않아 판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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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후보들(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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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지 않고 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