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넘나드는 위험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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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넘나드는 위험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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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에서 〈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올 가을 개봉을 목표로 한창 촬영중인 국내 기대작들중에서, 주목 받는 작품은 단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감독)다. '스캔들'과 '조선'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목처럼, 이 작품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우아한 바람둥이 선비가 열녀비를 하사받을 정도로 지조있는 과부를 유혹하느냐를 놓고 위험한 게임을 벌인다는 줄거리이다.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보수적인 사회, '선비정신'이니 '열녀'니 하는 엄격한 도덕률로 인식되던 시대를 배경으로 양반들이 스캔들을 일으키는 사극이라? 기존 사극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분히 이절적이고 발칙한 내용이다. 

 
   
  ▲ <위험한 관계, 1988> 스틸
ⓒ 네이버-씨네서울
 
 

위험한 관계- 어떤 작품인가?

그러나 관객들은 이미 이러한 소재가 웬지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1782년 프랑스의 소설가 쇼데르로스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존 말코비치/미셀 파이퍼 주연의 동명 영화로 널리 알려진 것을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다.

시대적 격변기였던 18세기 프랑스, <위함한 관계>는 여성 편력이 심한 바람둥이 발몽 자작(존 말코비치), 그를 게임으로 인도하는 도도한 귀족 메르떼이유 부인(글렌 클로즈), 순진한 여성 트루벨 부인(미셀 파이퍼)등을 중심으로, 겉으로는 고상하고 우아한 척 온갖 가식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추악하기 그지없는 상류사회의 이면을 폭로하는 풍자성을 지닌 작품이다.

<위험한 관계>는 이미 서양에서는 여러 차례 영화화가 된 바있다. 최초로 영화화된 것은 1959년의 로제 바딤 감독의 <위험한 관계>였고, 국내에 널리 알려진 작품은 스티븐 프리어즈의 <위험한 관계>(88)다. 프리어즈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거장 감독 밀로스 포먼의 <발몽>(89)은 콜린 퍼스와 아네트 베닝을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이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젊은 관객들은 아마 로저 킴블 감독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99)을 기억할 것이다.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청춘 스타들인 라이언 필립,사라 미셀 겔러,리즈 위더스푼등을 주연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18세기의 상류사회 풍경을 현대사회의 인스턴트식 성 문화에 대입시켜, 사랑도 게임처럼 여기는 뉴욕 부유층 젊은이들의 그늘을 묘사한 작품이다.

국내에서 시도되는 <스캔들-조선남녀상일지사>는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영화로는 5번째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사실상 최초로 리메이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성에 대한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이 현대물이 아닌 국내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시대였다고 일컬어지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조선남녀상열지사-어떤 작품이 될 것인가? 

 
   
  ▲ '배용준, 전도연, 이미숙 주연의 <스캔들> 크랭크 인' 기사 중에서
ⓒ 네이버-씨네서울
 
 

<스캔들..>은 일단 원작의 갈등구조를 거의 유사하게 가져온다. 조선 최고의 바람둥이 조원은, 사대부의 아내이지만 도도하고 농염한 매력을 품고 있는 사촌 조씨 부인에게 위험한 게임을 제안받는다. 조씨부인의 남편이 후첩으로 들어기로 한 소옥, 그리고 당대의 열녀로 인정받은 과부 숙부인, 두 여자를 조원이 유혹하는데 성공하면, 조씨 부인이 그 댓가로 조원에게 '원 나잇 스탠드'를 제공하기로 하는 것이다.

영화가 기대를 모으는 원인은, 화려한 배우들 보다 이재용이라는 감독의 연출력이다. 이미 그는 <정사>, <순애보>등의 영화를 통하여 자칫 단조롭거나 진부하게 흐를수 있는 이야기를, 우아하고 절제된 영상미로 풀어내는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장편 영화에서는 일관되게 멜로라는 장르에 도전해온 이재용은, 지극히 절제된 대사와 제한된 공간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감독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에서는 많은 대사나 상황 자체보다, 음악과 조명의 활용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부각시키는 기법이 자주 쓰인다.종종 그의 작품에서는 서정적인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자족적인 헤피엔딩이나 도덕적인 장광설보다는 인물들간의 갈등 과정만을 보여주고 열린 결말을 채택하는 방식을 즐긴다. <정사>에서 이미 진부한 치정극의 결말을 뒤집어버리는 파격을 보여준 그가, 인물들간의 미묘한 애증관계가 돋보이는 <위험한 관계>를 동양적으로 해석하는데 관심을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유교적인 문화에서 성은 육체의 욕구만을 강조하는 동물적인 개념으로 쓰여졌다. 21세기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도 성 담론에 대한 후진성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영화는 여기에서 조선시대라는 좀더 막힌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상류 계층의 가식과 허위를 풍자한다.

사랑의 세레나데 대신 한시를 읊어대고, 영어와 외제차대신 문무와 시서화에 능한 것으로 무장한 극중 인물들은 얼핏 시대만 바꾼 '양아치'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되살펴보면, 조선시대라는 모습으로 무장한 우리 사회의 상식적 보수성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특이한 캐릭터들이다.

영화는 화려한 스타시스템을 내세우지만. 다소 이색적이다. 영화<정사>나 드라마<고독> 등으로 이제는 매력적인 중년 여인으로 거듭난 이미숙이 조씨 부인역을 맡은 것이나, 국내 영화계에서 여배우로는 드물게 확고한 톱스타로 자리잡은 전도연의 숙부인 캐스팅은 무난해 보이지만, 정작 극의 핵심인 바람둥이 조원역에 현대적인 이미지의 배용준을 선택한 것은 의외였다.

브라운관의 백마탄 왕자 이미지로 각인된 배용준의 사극 선택은 눈에 띈다. 안경너머로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던 <호텔리어>의 신동혁이나,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할 것 같던 <겨울연가>의 로맨티스 강준상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상투를 틀고, 수염붙이고, 생면부지의 여자를 '꼬시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바람둥이 선비의 캐릭터는 지극히 낯설다.

스티븐 프리어즈나 밀로스 포먼이 감독한 <위험한 관계>의 전작들에서 작품의 퀄리티를 좌우한 것은, 결국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존 말코비치와 콜린 퍼스의 연기 공력의 차이였다. 도시적이고 달콤한 핸섬가이의 모습을 반복해온 것이 배용준이 가진 이미지의 한계였다. 배용준이 스크린, 그것도 사극에서의 바람둥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이질감을 스스로의 연기력으로 좁혀나갈수 있느냐가 이야기의 매력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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