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3월 15일자 1면기사 제목의 ‘괴뢰 고위층 재가 대기 중’기사로 동아일보에 1개월간 정간 처분이 내렸다. 정간처분을 받은 사연은 동지 1면기사에 기재된 한미 석유 협정의 초안인 ‘이대통령의 귀경을 기다려 최종적인 재가를 받으려한다’라는 기사의 제목의 맨 위에 즉 고위층이라는 글자위에 (괴뢰)라는 두 글자가 인쇄됨에 따라 대통령을 괴뢰 취급한 것이 아니냐는 이유였다.
당국은 동아일보의 정간처분 발표를 통해 ‘국토가 양단된 현시점에 국가의 원수를 괴뢰라고 표시하여 국민들에게 배포하였음은 그 고의성과 수의 다소를 막론하고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반민족적 중대 과오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에 동아일보에 1개월간 발간 정지 처분을 취한다고 발표했다.
동아일보의 3월 15일자 1면 기사에 ‘한미 유류 협정에 관한 보도에서 조판공의 과실로 그 제목 ’고위층 재가 대기 중‘의 서두에 타 기사제목에 사용하기 위해 동시에 채자하였던 <괴뢰>란 글자가 부당하게 첨가됨으로써 야기된 것으로 이를 도중에 발견한 동아일보는 즉시 연판을 수정하여 재인쇄하고 오식 인쇄되었던 것은 휴지화하였으나 이미 가두에 60부, 일선 지방에 3백 15부가 발송되었으므로 전량 회수가 어려워 결국 발간 정지처분을 받았다.
이어 4월 16일 정부는 법무부장관과 공보실의 공동 담화문을 통해 이대통령이 직접 자신에게 관계된 사안임에 관대 조치를 지시 본 사건에 관한 형사상의 수사를 종결하고 발간 정지 처분을 해제, 1개월 만에 복간 되었다.
1955년 2월 18일 민족의 선구자며 정계의 지도자인 전 부통령 인촌 김성수 선생이 향년 65세로 서거, 국민장(7일)으로 거행 되었다.
1955년 6월 21일 북한 야크기가 여의도에 안착, 인민군 전투복 차림의 두 장교(이운용 대위 이인선 소위)가 자유 대한민국에 귀순 했다.
귀순동기-1953년 9월 21일 최초로 노금석 대위가 미그기로 탈출, 자유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평양 방송은 ‘반동분자 노금석은 서울에 도착하자 즉시 현장에서 처형당했다’는 방송을 들었으나 서울 방송을 통하여 노금석 대위는 남한에서 대환영을 받았고 미국에 유학까지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귀순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신판 로빈슨 크루소 14년 만에 귀국
1955년 7월 5일 일제 징용에 끌려갔던 조병기씨가 14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1942년 충북 단양군 가곡면 덕천리에서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남양군도까지 끌려 갔다가 일제의 폐전과 더불어 깊은 산골에 숨어 원주민인 베레레우도 사람들과 접촉도 없이 동물을 주식으로 토굴생활을 14년간이나 계속하다가 현지 미군에게 발견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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