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市場을 알긴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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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시장정책'에 시장은 없다

시장과의 싸움은 어떤 정권에서나 가장 힘든 숙제다. 그런데 역대 정권 중 노무현 정권처럼 큰소리를 친 사례를 보지 못했다. 득의만만하고 확신에 찬 약속은 도가 지나쳐 때로는 협박에 가까운 경고처럼 들렸다.

정권 실세들도 스스로 발한 이 위협적 경고에 자못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기에 국민은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정권 초기, 대통령이 잔뜩 힘을 얹은 목소리로 부동산 전쟁에서 승리를 다짐했을 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박수를 보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명분의 정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여덟 번에 걸쳐 온갖 장비를 동원해도 부동산 시장은 더 날카로운 반격의 발톱을 세웠다. 노무현 정권은 너무 용을 쓴 나머지 먹이를 쫓다가 빈사상태에 이른 사냥꾼 꼴이 됐다.

이 지경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도덕적 시장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기회 있을 때마다 천명해 온 '친시장, 친기업정책'의 '시장'은 윤리적 행위자들이 행동하는 순도 100%의 시장이며, '기업'은 사익보다 공익 기여적인 주체들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이상형으로 설정했던 그런 시장이다. 박정희 정권의 성장 시장이 괴물로 각인된 현 정권 사람들에게는 도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스터 키였다. 이 원대한 작업에 주택 시장쯤은 눈에 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위적 경제 개입 불가, 부도덕한 행위자 처벌이라는 두 가지 원칙은 그렇게 세워졌다. 정권 초기, 신용카드 부실로 금융위기가 발생해도 꿈쩍하지 않았고, 환율 급락으로 수출 기업이 비명을 질러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개입 철회'를 친시장 정책과 혼동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처벌과 규제에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능숙했다. 토지 소유자와 고가주택 소유자가 도덕적 시장의 적으로 분류돼 시장 교란의 죄목이 씌워졌다. 부도덕의 대명사인 재벌 기업들은 출자총액제한, 지배구조개선 등 현 정권이 발동한 준엄한 규제책에 시달려 투자 의욕을 접어야 했다.

오죽했으면, 재벌 기업들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비상금을 금고에 넣어 두어야 했겠는가. 현 정권에서 경제수석은 '부동산수석'이고, 사회수석은 '세금수석'이며,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을 감시하는 '의금부'다. 이 '정의로운 규제'는 매우 강력하고도 부정적인 시장효과를 낳아 개입 불가 원칙을 스스로 위반했다는 사실을 현 정권이 인정할 리 없다.

이백만 수석이 물러가면서 정책 실패의 주범으로 '부도덕한 자'들을 지목한 심리가 이것이며, 이해찬 전 총리가 '정책은 제대로 잡혔는데, 홍보가 안 돼 문제'라고 지적한 심리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시장에는 부도덕한 자가 너무 많아 문제라는 이런 인식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적 경학(經學)과 맥이 닿는다.

조선의 집권 세력에게 시장은 '부역과 납세 의무를 방기한 자, 살인자와 약탈자, 도적이 모여드는 장소'였고, 사리와 물욕을 추구하도록 백성들을 부추겨 결국은 전야(田野)를 황폐화하는 계기였다. 시장은 부도덕한 것 자체였다. 그런데 조선의 도덕정치에도 매우 투철한 생산 개념이 존재했다는 점이 현 정권과 다르다. 억상책(抑商策)을 통해 백성을 생산의 요체인 농업으로 돌려보낸다는 원리였으니까 말이다.

현 정권이 주장하는 '친시장, 친기업' 정책에는 생산과 투자는 물론 시장 촉진 개념도 없다. 그러기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인도와 중국으로 탈출했고, 800조원에 달하는 시중 자금이 아파트에 달려들었다. 투자처가 없는 터에, 세금 폭탄을 무릅쓰고라도 내 집을 향해 유격전을 감행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시장이고, 집단 심리임을 이들만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헌법 같은 부동산 정책' 운운하면서도 왜 앞 다투어 이들이 먼저 강남에 달려들었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파산한 도덕주의자들이 발하는 도덕적 훈화를 귀담아 들을 도덕적 시민은 이제 사라졌다. 문제는 지난 4년 동안 시장의 활력을 거세하는 데에 공헌했던 '친시장 정책'을 앞으로 일 년 더 고집스럽게 해나갈 것이라는 그 막막한 예감, '너희가 감히 시장을 아느냐?'는 정의로운 질책에 말문이 막혀 가슴이라도 두드려야 할 상황을 어쨌든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다.

독자투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송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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