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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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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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66> 최두석 “대꽃 8”

 
   
  ^^^▲ 양귀비, 너는 누구의 붉은 피울음이냐
ⓒ 우리꽃 자생화^^^
 
 

이루어진 지 스무 해쯤 되어 보이는 대숲에는 삼십대의 상인도 오십대의 품팔이도 들어가 섰습니다. 철 모르는 어린이도 섞였습니다. 대숲이 술렁거리더니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걱이는 행진의 걸음마다에 외마디 외침이 폭발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귓속으로 파고드는 이 소리는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소리가 부딪친 전방 바리케이트에서는 돌연 총포가 난사되었습니다. 이에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어요.

한 송이 피면
또 한 송이 거품 뿜으며 피고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우르르우르르 무리져 피는
피다가 모두 죽는
대꽃

대나무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나무는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대나무에 꽃이 피면 그 대나무가 곧 말라죽고 마니까요. 왜? 황토빛 대꽃을 피우기 위해 대나무는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영양과 모든 수분을 그 꽃에 소비하니까요.

내가 자란 마을에는 마을 곳곳에 대나무밭이 마치 섬처럼 띄엄 띄엄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대꽃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 해, 보리밭에 유난히 깜부기가 많이 피어나고,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그해 초여름, 우리 마을에 있는 그 대나무밭에서 황토빛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늘 배가 고팠던 우리들은 그 대꽃을 따 먹었습니다. 대꽃은 약간 비릿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났습니다. 하지만 맛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대나무 잎사귀가 마르기 시작하면서 결국엔 대나무 뿌리마저 깡그리 말라죽고 맙니다.

시인은 그러한 대꽃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대나무로 유명한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시인은 아마도 대꽃을 통해서 4.19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광주민주화운동을 역설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대꽃은 대나무 하나가 먼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그 대밭에 있는 대나무들이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이 꽃을 피웁니다. 먼저 대꽃을 피운 대나무가 마악 말라 죽어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니 꽃을 피우면 제가 죽는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대나무들은 잇따라 황토빛 대꽃을 피워냅니다.

대나무는 뿌리로 번식하는 식물입니다. 그런데 왜 대꽃을 피울까요. 무슨 한많은 사연이 그리도 많아 씨앗도 되지 못하는 그 대꽃을 피울까요. 내가 어릴 적에는 유난히 가뭄이 들고, 흉년이 지는 해에, 하필이면 그 대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대나무도 서러운 민초들의 삶이 너무도 불쌍하게 보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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