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어 간다. 내년에 무슨 ‘황금돼지 해’라고들 한다. 해가 바뀌고, 꿈을 다시 꾸어도 우리 사회는 그렇게 쉽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도자들의 의식은 더욱 변화를 모르쇠로 일관할 게 명약관화하다.
새해에도 가짜가 진짜를 어김없이 우롱할 것이다. 이 글의 제목만 보면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사회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허무맹랑하고 사람을 속이는 그런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짜를 진짜로 하면 우리나라처럼 소비자 의식이 높은 나라에서는 당장 쇠고랑 찰 일이다.
궤휼시사정직(詭譎時思正直). 이 말은 "간사스럽게 속일 때는, 바르고 곧은 것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무슨 이런 말이 다 있을까? 속이려면 속이면 될 일이지 무슨 곧은 마음 운운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보인다.
이 말은 조선시대 여주 이씨가(李氏家)의 옥동공가훈(玉洞公家訓)에 나오는 말이다.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한 어버이의 뜻이다. 이율배반적인 단어를 나열해 올바른 길로 안내해주는 기묘한 말솜씨이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세계엔 속임수(trickery)와 진실(truth)이 서로 얽혀 짜인 천으로 몸뚱이를 칭칭 감고 활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진실과 허위가 공존하지 않는 구석이 없다.
올해 들어 이른바 모 방송사의 모 기자의 X 파일이 세상에 화제를 낳았었다. 일류기업이라는 S그룹이 4류 라고 말했던 정치를 두려워하고, 혹은 정치를 기업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아니면, 대한민국 전체를 S공화국 또는 S제국이라도 만들어 버릴 듯이 전천후 돈 로비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듯 하더니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이 같이 세상은 고금동서를 가릴 것 없이 속임수와 허위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돈 없고 선량한 일반 국민, 아니 서민들만이 속임수가 적고 허위와 가식이 적은지도 모른다.
권모술수와 임기웅변의 정치, 일확천금을 중시하는 인간 경시의 경제활동, 양면성, 가치혼돈, 이중사고, 야뉴스의 얼굴, 조지 오웰식 사회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가장 경계해야 할 말들이 항상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다. 가짜와 진짜가 한데 얽히고 섞여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분간하지 힘들 정도의 세상이다.
그래서 진실보다는 허위가, 사랑보다는 증오가, 협조보다는 배타와 비협조가, 그리고 창조보다는 파괴가 넘실대는 현대사회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또, 논리와 합리보다는 비리와 불합리, 상식보다는 몰상식과 비상식들이 이른바 출세가도를 달리는 가장 좋은 도구인양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착각의 시너지 효과라고나 할까?
오늘날 돈과 출세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자기 자신을 자신도 모르게 그 아수라판으로 몰고 가는지도 모른다. 일시에 막대한 돈을 거머쥐기 위해, 어렵고 힘든 일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치부하듯이 살아가는 돈 많고 공부 꽤나 한 사람들의 세상이 오늘을 지배해 가고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닌 성 싶다.
악의에 가득찬 사기를 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돈과 권력을 거머쥔 소위 "높은 양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말해 선비 같은 학자, 성인 같은 군자,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고 여기는 기업가, 돈과 권력을 그래도 좀 멀리하는 정치가, 인륜을 지켜내려고 온갖 힘을 다하는 사회사업가, 총명한 학생, 군인다운 군인,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자, 소박하고 진솔한 농민, 이 모든 사람들이 사실 우리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엔 관심 밖이다. 돈, 권력, 명예를 쫒는 사람들만이 언론의 관심사 인 듯 한국 언론들은 우리 사회를 잘못 안내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선량한 국민들은 이런 틈바구니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다. 어쩌면 고육지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육지책이란 말이 나왔으니 한번 짚어보자. 오월춘추(吳越春秋)를 통해 알아본다.
요리(要籬)는 오왕(吳王)에게 진언을 했다.
"대왕은 위나라의 경기(慶忌)를 두려워하고 계십니다만, 제가 그를 죽여 보겠습니다. 모쪼록 제 처자를 시장에서 잔악한 극형에 처하시고 제 오른 손을 잘라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제 아무리 영리하고 기세등등한 경기라 할지라도 저를 신용하게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요리는 국사범(國事犯)으로 꾸며져 국외로 추방당했다. 곧장 오왕은 요리의 처자를 시장에서 화형에 처했다. 제후에게 망명한 요리는 그 사실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러자 원죄(寃罪 : 원통할 대로 원통한 죄)는 천하에 널리 알려지고, 마침내 그는 위나라로 가서 경기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경기는 요리의 계략을 고스란히 믿게 됐다. 3개월이 지난 후 경기는 잘 훈련된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 정벌에 나서게 됐다. 일행이 장강(長江)의 중류에 이르자, 체력이 떨어진 요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형국이 됐다.
바람의 기세로 손에 들고 있던 창이 경기의 관에 걸린다. 그대로 그 바람의 기세를 이용해 요리는 경기를 찔러 죽였다."
이는 내 몸을 상하게 해서 거짓을 진짜로 보이게 하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일환이다. 고육계 혹은 고육지계와도 같은 말이다. 위의 예가 오늘날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고육책을 사용한 예가 종종 있었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이와 같은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전에 손해란 없다" 는 식의 사고만 있을 것 같다. 특히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손해도, 이익도 건별(件別)로만 따져서는 안 된다. 건수는 많이 있다.
그렇게 많은 경우의 수나 건수를 전체적으로 보는 혜안(a keen and total insight)이 부족한 것이 오늘날이다. 사기와 허위, 가식이 진실을 우롱하는 사회라는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진정(眞情) 가짜를 진정 진짜로 속이는 듯 하 되, 정직(正直)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궤휼시사정직이 바로 이런 뜻이다. 정직이 없는 속임수는 곧바로 속임수 그 자체이므로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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